발행이 연재가 되기까지
당신 뭐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과연 뭐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까?
참 다행인 것은 요즘 내게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나이쯤 되는 여자는 직업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세계를 떠돈 지 3년이 넘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회원가입을 안 해도 볼 수 있는 포털사이트와 온갖 카테고리를 다 돌아다녔다. 쇼핑을 할 것도 아니면서 쇼핑 카테고리를 기웃거리며 올봄 유행 패션을 살펴보고 정치 뉴스를 슬쩍 훑어보다가 치미는 울화통을 컵의 삼분의 일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 조각을 씹으며 가라앉히고는 사회면으로 옮겨 간 뒤 세상에 널려 있는 온갖 인간쓰레기와 그들이 배출한 쓰레기 뉴스를 읽다가 이내 지겨워져서 연예 뉴스를 뒤적인 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써놓은 댓글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결국 아이고 의미 없다.로 결론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행위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이도 저도 다 싫증이 났다. 한심한 백수 아줌마의 삶이 이런 식으로 종지부를 찍으면 어떡하지? 당신 뭐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과연 뭐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까? 사람이 꼭 그럴듯한 뭔가를 해야 합니까? 하고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쨌든 노는 것도 지치고 어느 순간 삶이 한없이 무료해지면 자고로 무언가 의미 있는 짓거리를 하고 싶어 진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 내가 장담한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창작하는 창작자가 되어 일확천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 직장인의 월급의 반이라도 벌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거나 블로그 운영을 착실하게 해서 네이버 메인에도 오르고 광고 수익이라도 조금 벌어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어보겠다는 한없이 소박해 보이나 사실은 원대한, 그런 꿈을 꾸게 된다. 유튜버로 대박 난 박막례 할머니처럼 얼글을 다 드러낼 자신은 없으면서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경제적 자유인을 꿈꾼다.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여행지를 사무실 삼아 일을 하고 수익이 통장에 착착 쌓이는 디지털 노매드가 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영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실제로 사이버 세계에는 롤 모델이 널려 있기도 하다. 물론 빛 좋은 개살구도 많지만 원래 동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빛이 좋은 개살구인지 아닌지는 판단하지 않고 믿고 싶기 마련이다.
당신도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면 나처럼 발행 중독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사실 나도 그렇게 의미를 찾아다니다가 별 의미도 없는 글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발행이라는 단어는 대단한 뭔가가 불쑥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카카오톡에 하고 싶은 말을 써서 엔터 키를 누르는 것도 발행이라면 발행이니 사실 별거는 아니다. 블로그에 가벼운 내용을 써서 발행하다가 재미를 붙이면 조금 더 그럴싸한 내용으로 발행을 하고 싶어 진다. 그런 식으로 하나 두 개씩 발행의 경험이 쌓이면 발행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창작한 것을 규칙적으로 세상밖에 내보내는 행위는 일순간에 내 삶에 일정한 규칙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일정한 시간에 매일 하나씩 혹은 이틀에 하나씩. 당신도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면 나처럼 발행 중독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발행은 어느덧 연재라는 그럴듯한 명사로 둔갑하고 운이 좋으면 자신의 발행물에 구독자가 하나 둘 생기기도 한다. 경험상 여기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의외로 해볼 만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크게 부담이 없어서일 것이다. 누가 봐준다는 보장이 없어서 맥은 빠지지만 반대로 보고 있는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는 건 즐기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발행을 즐기다 보니 자신의 결과물이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그동안 운이 없어서 그렇지 뭐든 하면 잘하는 사람이야. 하고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자,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발행할 곳들을 찾아다닌다. 남들이 발행한 것들을 부지런히 염탐하고 내 발행물들과 비교하고 분석한다 이쯤 되면 이제 발행은 돈벌이가 안 되는 자신의 직업이 된다. 이렇게 열심히 발행하다 보면 금방이라도 발행으로 인생이 바뀔 것 같지만 알다시피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생각보다 숨어있는 발행 고수들이 많다. 고수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라고 내 실력에 좌절하기 시작한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게 되지만 나만의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이미 나만의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 된 지 오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남들도 다 생각하는 것들뿐이다. 외로운 발행자의 길로 접어든 지 2년이 넘었다. 나름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기도 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어지간해서 멈추기가 힘이 든다. 조금 더 근사한 발행자 혹은 유식한 말로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끊임없이 무의미한 것을 쏘고 지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행자의 삶을 살고 싶지만 발행자의 발목을 잡는 건 언제나 돈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놀아도 되는 건지 시시때때로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다못해 발행하다가 지치면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고 조금 쉬어줘야만 다음 발행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발행자의 삶은 고난의 삶이다. 끝이 없어서 까마득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 침울하다. 경제적인 보상도 묘연하고 당장 내일치의 발행을 걱정하며 산다. 블로그, 포스트, 인스타 그램, 티스토리, 발행할 곳은 점점 많아져 복사 후 붙여 넣기도 서슴지 않는 발행의 늪. 나는 오늘도 새로운 발행처를 찾아 발품을 판고 염탐을 한다. 하루치의 발행을 겨우 끝내고 나면 비로소 알바를 검색하다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