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 면접기
일 년에 한 번쯤 몸을 쓰는 단순한 노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보통 한번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편인데 평생 해보지 못한 단순노동에 뛰어든다는 것은 상당히 생뚱맞은 일이라서 대부분 실현 단계까지 가지 못한다.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래서인지 실전에 뛰어들기까지 의례적으로 일사천리였다. 사람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는 어플을 깔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던킨도너츠, 나이 40세까지, 경력 상관없음. 근무시간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구인광고의 내용 중 딱 하나 나이 제한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건 무난했다. 지루할 때쯤 끝나는 짧은 근무시간도 마음에 들고 주말에는 쉴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보통은 이 단계에서 고민이 시작되지만 무엇에 홀린 듯 전화번호를 누르고 바로 다음날 면접 시간이 정해졌다. 심지어 무슨 생각인지 느닷없이 그 일자리가 절실 해져서 나이를 속이기까지 했다. 무려 십이 년씩이나.
지금의 내 직업은 애매하다. 책을 세상에 내놓기 전이니까 작가라고 할 수도 없고 책을 쓰고는 있기 때문에 예비 작가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 다행히도 요즘 직업을 묻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글쓰기는 남들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타고난 재주가 아닌 노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하루에 몇 번씩 뇌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순노동을 향한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최대한 갖춰 입은 듯한 인상을 주면서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한 옷과 메이크업을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하는 심정이 됐다. 여자의 외모라는 것에는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입 주변의 팔자주름 같은 거. 평소에 철저히 관리한다고 해도 웬만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들이다. 하물며 부지런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면 나와는 백 미터도 넘게 떨어진 남의 일일 뿐이었다. 어쩌겠는가? 지금은 운명을 믿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안될 일은 안된다는 사실을 겪을 만큼 겪어봤다. 반대로 내쪽에서 시큰둥하더라도 그쪽에서 달려드는 경우에는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리는 경험도 해볼 만큼 해봤다. 마음속에 가벼움을 장착하고 면접을 보러 나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만든 지금의 상황을 슬며시 즐기기 시작했다.
고민 없이 옷을 챙겨 입고 평소와 다름없는 노 메이크업에 예의상 입술에만 포인트를 주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던킨도너츠는 단 음식이 당길 때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동네의 중심가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이까지 속이며 나를 보인다는 사실이 떨렸지만 적당한 긴장감 또한 오랜만이라 싫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다행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을 약속했던 사람입니다
하고 말한 순간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나이가 들어 보여서 놀란 건가? 솔직히 말할 걸 순간 후회가 됐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난데없이 도넛 가게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요식업에서 한 획을 그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글 나부랭이를 끄적이고 여기저기 발행을 하다가 문득, 그 끝없는 의미와 무의미를 오가는 지루한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딱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싶은 기분에서 나온 충동이다. 머리로 뭔가를 생각하는 일 말고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정직한 대가를 받는 단순한 노동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계획에 없던 면접을 보고 뭐가 급했는지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로 트인 사람이 사장이라면 이 사람과 오래 일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와 동갑인 남자 사장님은 귀에 위아래로 두 개의 피어싱을 한 오십 세 살의 자수성가한 남자였다. 대학생 딸을 키우는 공통점으로 면접은 어릴 적 동네 친구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나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근황을 얘기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고맙게도 그 자리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출근을 하기로 한 날까지는 삼일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삼일 동안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일을 하기 위한 기본 준비물인 보건증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 시점에서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한번 꺾이는 순간이 왔다.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왔다. 보건소에 방문하고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한 검사를 받는 모든 일련의 행위가 한없이 귀찮아진 것이다. 특히 항문 검사. 면봉을 자신의 항문에다 넣었다가 빼는 짓은 정말 고민스러웠다. 왜 보건증이 필요한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남득이 된다고 누구나 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건 하는 사람도 못할 짓이고 면봉을 받아서 검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하지만 눈을 딱 감았다. 출근 약속은 무엇보다 약속이었고 항문 검사 때문에 못하겠으니 다른 사람 구하세요.라는 말은 죽어도 못한다.
상상만으로는 몸서리 쳐지지만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이 세상엔 너무 많다. 내게 항문 검사가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아서 어리둥절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어려운 검사를 의외로 쉽게 해내고는 첫 출근을 했다. 중년의 여자분이 인사를 해오는데 어째 느낌이 싸하다. 이 나이쯤 되고 사회생활이 어언 30년이 넘어가면 사람을 보자마자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래도 확신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분이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상하는 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대부분 틀린 생각이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천천히 하는 게 맞다. 일단 하루 정도 겪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날로 그곳을 정리했다. 퇴근을 하자마자 집으로 걸어가면서 문자를 보냈다.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좋은 직원을 구하시라고.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까 갑자기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동의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어제까지의 의지는 오간데 없고 다시 노트북을 펼치고 싶은 의지가 샘솟는 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피어싱을 한 남자 사장님의 부인은 나에게 일을 가르쳐준 세 시간 동안 무슨 마술을 부렸길래 나로 하여금 다시는 돌아보기 싫은 도넛 매장으로 각인시켰을까.
그 점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걸로 예상하는데 지금 심정으로는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기도 피곤하다.
그 매장을 나오면서 나는 앞으로 도넛 가게의 손님으로만 존재하고 싶으니 나를 손님으로만 대하기 바란다는 의미로 무려 열 개의 도넛을 샀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다. 자신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일을 처음 시작하는 직원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장들도 많다. 사장이라면 직원에게 업무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의 순서가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이 면접의 유일한 갑이라는 착각도 접아야 한다. 직원들도 사장을 평가할 때는 칼 같이 냉정하다는 사실을 잊지 알아야 한다. 나이가 많은 나에게도 이런 식인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는 젊은 청년들에겐 오죽할까.
그나저나 나는 몸으로 하는 노동의 욕망을 완전히 잠재우고 지난한 발행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