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에 대한 끝없는 고민
무명은 서럽다
대부분의 초보 발행자들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발행하는 일에 몰두할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다. 나도 나의 발행물이 내 손을 떠나 어딘가에 언어로 안착했다는 사실이 언제나 감격스럽다. 발행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들여다보면 흡족한 마음이 든 적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삭제 키에 손가락을 올리게 되지만 반복된 경험과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고 띄엄띄엄 지혜를 터득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발행자가 되는 행운을 얻을 거라고 믿고 있다. 진짜 발행자란 누구일까. 어떤 발행인이 진짜일까. 나는 질리도록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자신의 창작물을 발행하는 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발행한 결과물은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눈곱만큼의 예술성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져 고군분투 창작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한 발행자가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그나마 선택권이 있다는 뜻이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다는 뜻이다. 또 누군가는 그가 발행한 것을 꾸준히 봐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명의 발행자에게 매우 힘이 되는 일이고 다음 발행에 커다란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갈망한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무영의 창작자는 매 순간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자신이 가진 의욕을 잠재우고 항상 이런저런 결핍에 시달린다.
나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내가 이토록 바라는 발행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가?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내가 겨우겨우 세상에 내놓는 결과물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힘든 현실을 자각하는 것과 두려움을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발행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수시로 의심하고 가끔은 자기혐오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럴 때는 내가 발행한 글을 누군가는 좋아한다고 최면을 걸어 스스로를 격려한다. 어쨌든 누군가가 내 글을 좋아한다고 치자.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그것으로 배가 부르지는 않다. 발행을 하면서 저절로 배가 부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다. 도넛을 팔거나 마트에서 캐셔를 하거나 물건을 진열하다가 몸에 상처가 나고 아무 때나 반말을 해대는 손님을 응대할 때면 발행으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줄곧 그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오늘의 노동을 견딘다. 어떤 시인이 젊은 작가 지망생에게 말했다
『글만 쓰는 작가는 되지 마세요』
『소방관이 되거나 경찰이 되거나 선생님이 되거나 화학자가 되거나 전기수리공이 되세요』
무명의 발행자들은 그래서 각자의 글쓰기 외에 밥벌이를 책임지는 직업이 있다. 하지만 짐작하듯이 그 직업에 몰두하기 힘들다. 언제나 글쓰기에 대한 욕구와 당장 돈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직업 사이에서 갈등한다. 내 생업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위 작가 지망생들은 작가의 삶에 대해 몽상을 한다. 동시에 본업을 그만두는 공상을 한다. 매일 공상에 빠져있는 내게 오스카 와일드가 특유의 거들먹거림과 거만함으로 조언을 한다.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이 네 속에서 나오기나 할 것 같냐고.
『하던 일이나 잘해 이 애송이야』
현재로서는 글쓰기 자체가 거의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봄에 출간되는 첫 번째 책도 돈벌이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 집중하는 자유를 원하는 이상 글쓰기 외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글쓰기와 관련 없는 일이 잘되면 놀랍게도 더 읽을만한 글이 써질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닉네임 앞과 뒤에 작가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호칭하면 남들도 자신을 작가로 생각해 준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신을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은 글쓰기가 일이 되는 시점이자. 자신이 쓴 글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다. 누구의 말처럼 돈에 개의치 않고 글을 쓰는 낭만적인 작가는 그 자체로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