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 곳은 책상 앞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느라 심신이 고달팠지만 그럭저럭 즐겁게 지내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겪는 사건 사고가 글감이 된다. 요즘은 그런 면에서 수확이 좋은 날들이다.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 핀잔을 들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지 말라고. 굳이 힘든 일을 찾아다니는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찬구의 말에 수긍하지만 이 나이가 돼도 여전히 배우고 느낄 것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즐겁다. 얼마 전 출근했다가 도넛만 잔뜩 사 가지고 왔던 도넛 가게를 끝으로 알바와 영영 이별을 할 거였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뒤로는 한가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알바 앱을 연다. 온라인 쇼핑몰에 진열된 물건들이 나를 유혹하듯 많은 알바들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젊은 사람을 구하는 광고들뿐이다 나이를 선택해서 재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이용하면 그나마 일일이 열어보는 수고를 덜할 수 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습관처럼 알바를 검색한다. 새롭게 올라오는 일자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오랫동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새로운 일자리에 점점 밀려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버린 광고를 보면 아직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올린 짧은 광고 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이런 광고라면 누구라도 일하기 싫겠다 싶은 광고들이 많다. 구인 광고에서 고용주의 성격과 일에 대한 가치관이 드러난다면 나의 억지스러운 짐작일까. 며칠 전에는 참을성 많은 사람?! 당분간 해외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 을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봤다. 참을성이 있고 없고의 기준은 모호하고 당분간의 의미도 3개월인지 6개월인지 알 수가 없다. 왜 그런 사족을 달았는지 짐작하고도 남지만 정말 참을성 있는 사람만 지원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광고를 발견했다. 그 구인 광고가 한눈에 들어온 이유는 마트의 이름 때문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과연 그럴 것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상가에 위치한 마트였다. 처음 마트의 구인 광고를 보았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섣부른 확신이 느껴졌다. 아 이건 내가 찾던 일이로구나. 이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일이다. 오고 가는 시간과 교통비가 절약되고 무엇보다 지난 3년간 눈에 익어서 그런지 친근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마트는 이름만 마트일 뿐 규모는 구명 가게 수준이다. 어떤 품목은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보다 훨씬 비싸다. 여간해서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가 힘들어 보였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는 손님으로 붐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바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계산이 깔렸다. 특히 내가 일하고자 하는 시간은 밤늦은 마감시간이라서 더욱 한가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솔직히 나도 아주 급한 식재료가 아니면 안 가는 편이었다. 간혹 두부나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자질구레한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종종 들르곤 했었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말도 시원하게 하는 젊은 사장은 마트에 매일 출근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서 운영했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모님! 잘하실 것 같아요.
주말 동안 마감만 해주시면 돼요
하고 말했는데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낯설고 이상했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참 허물없이 대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의 첫인상을 잘 믿지 않는다. 경험상 그들은 하루 이틀이면 얼굴이 바뀐다. 그래도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자신이 진열해야 할 물건이 들어오는 날 외엔 젊은 사장이 거의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껄끄러운 고용주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이건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꿀알바? 사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 풀릴지 뻔히 알겠다는 얼굴로 실실 웃으며 팔짱을 끼고 앞으로 닥칠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제 아무리 잔머리를 쓴다고 한들 세상 사람들이 나만큼 못하지 않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다. 아무튼 내가 하게 된 일은 주로 물건을 가져오면 계산을 해주고 물건이 비어있는 자리에 물건을 채운다. 담배를 팔고 사야 할 물건을 찾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마지막에 돈 계산을 하고 셔터를 내린 후 문을 닫는 일이다. 포스를 능숙하게 다루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일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고된 일은 음료 냉장고에 수시로 생기는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었는데 매장과 창고의 거리가 조금 멀고 하필 창고가 비스듬한 계단 밑에 자리 잡고 있어서 층고가 낮은 편이었다. 키가 쓸데없이 큰 편인 나는 기어 들어가서 물건을 찾아 가지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다시 기어 나와야 한다. 무거운 페트병 몇 개를 안고 기어서 나와 냉장고를 채운 다음 다시 기어들어가는 식이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구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또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매일 여기저기 발행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시간을 보내면 허리부터 어깨. 손목까지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노동을 하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흘린 땀 하고도 조금 다른 몸과 마음의 개운함이 있었다. 아직은 내가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확인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유쾌하다.이런 식이면 잘 적응하겠구나. 일주일에 이틀, 8시간의 노동이 내 삶의 활력을 선물해 줄 수도 있겠다. 긍정의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려는 순간 늘 그렇듯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카카오톡이다. 젊은 사장님은 마트에 출근하지 않는 대신 하루 종일 cctv로 마트 안의 여기저기를 관찰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의 행보는 분명히 예상보다 지나친 구석이 있었다. 손님의 계산 줄이 평소보다 조금만 길어져도 득달같이 카톡이 온다. 심지어 계산을 하는 중에 울리는 카톡 때문에 오히려 계산에 방해가 된다. 사장은 오히려 자신이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성격이 급해서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휴대폰을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왜 계산 줄이 길죠?
포스 계산에 문제가 있나요?
잠시 화장실이라도 가면 잠깐을 못 참고
이모님 어디세요?
참으로 난감하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은 11시 30분이다. 셔터 내리는 시간을 감안해서 29분에 포스기의 전원을 끄고 셔터를 내렸다. 바로 그 순간 카톡이 왔다. 포스기계를 정확하게 30분에 꺼야 하는데 29분에 전원이 꺼졌다면서 1분 빠르게 전원 버튼을 누른 이유를 물었다. 빌어먹을!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럴 거면 니가 출근을 해라 )
이런 식이면 도대체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깍듯하게 대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더럽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질문거리가 별로 없는데도 자꾸만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미흡한 점이 보이면 잘 설명해주면 되고 알려주고 싶은 게 많으면 하루쯤 나와서 알려주면 그만인 일을 왜 이렇게 휴대폰으로 사람을 괴롭히는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뭐라도 물어봐 줘야 하나? 싶어 진다. 궁금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일부러 질문거리를 찾아서 물어봤다. 질문을 받고는 신이나 죽겠다는 목소리로 여태 그것도 모르셨냐며 혼을 내기 시작한다. 그건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나는 카카오톡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일을 하는 주말 이틀뿐만 아니라 일을 하지 않는 평일 날까지 카톡이 왔다. 가만 보니 생각날 때마다 지시 사항을 보내는 것 같았다. 최저임금이 이토록 무서웠다. 집 앞 마트를 선택한 건 크나큰 실수라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의 인내심과 나약함을 자책하다가 주말이 되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근을 하는 식이었다. 그날따라 진열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만큼 창고에서 가져와야 할 물건이 많았다.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동안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질까 봐 마음이 급했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신경이 쓰였지만 조금 있으면 득달같이 도착할 메시지 때문에 더욱 예민해졌다. 결국 좁은 창고를 기어 나오다가 방심하고 허리를 펴는 순간 머리 위에 있던 전기 배선함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눈앞에 별이 보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출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봤는데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지만 피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아팠다. 그동안 창고를 오고 가면서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감과 동시에 할 말이 없으시냐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창고에서의 위험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모서리에 스펀지 같은걸 붙여 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심플하고 황당하다. 물론 다친 데는 없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염려의 말은 없었다.
사람이 다치려면 뭘 해도 다치니까요.
각자가 알아서 조심해야죠.
아 그렇구나. 나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구나. 너는 직원의 안전은 어찌 됐든 상관없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또 정리하게 되는구나. 지금이 바로 끝없이 울려대는 카톡 지옥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또 걷잡을 수없이 마트가 싫어졌다. 지체할 것 없이 정리! 정리가 빠른 건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지지부진 차일피일 미룰수록 정리라는 건 어려워진다. 글을 써놓고 읽고 또다시 읽고 고치고 읽고 마지막 발행 버튼을 누르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뒤로 미루는 버릇이 있지만 이런 일은 정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동시에 삭제 버튼을 누른다. 두 번의 알바 경험으로 노동의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는 버리고 다시 지난한 발행인의 삶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있다. 발행의 고단함이 엄습하면 또다시 한눈을 팔게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얌전히 발행자의 삶에 순응할 것이다. 여느 때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발행한 글에 공감을 누르는 발행인의 일상이다. 다행히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최저시급은 멀어졌지만 대신 나에겐 자유가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발행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