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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r 09. 2022

모두가 집주인이 될 수 있다면

춥고 더운 우리 집


수희님

안녕하세요. 35만 명이 역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대선 투표날 아침입니다. 이제는 숫자에도 무감각해져서 30만 명이 넘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도 않아요. 지인들이 하나둘씩 오미크론 감염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분이랄까요. 며칠 전 사전 투표를 했어요. 노인들에게 더 나은 삶, 청년들에게 더 나은 삶, 여성들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한다는 정치인들의 공약을 훑는 기분은 마치 한강의 폭보다도 넓어 보이는 약속의 강을 당장 부러질 것 같은 썩은 나룻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건너가는 것 같았어요. 그냥 막막하고 막연한 심정이요. 도장을 찍을 후보를 결정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어려웠어요, 누가 더 일을 잘할 것 같은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가 뻥을 많이 치는지, 누가 더 사기꾼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정말 이상한 선거잖아요. 내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고 후보 중 몇 명은 막상 대통령이 되면 내가 그런 약속을 했다고? 이 따위 말을 할 것만 같은 거예요. 어리석은 판단으로 그런 사람에게  내 표가 가면 어떡하나 싶어요. 그래서 다른 건 좀 제쳐두고 딸아이를 위한 공약을 위주로 살펴봤어요, 청년을 위한 정책 그중에서도 청년들이 마음 편하게 살아갈 집에 대한 정책을요.




한동안 이 집으로 이사를 하고는 제일 좋았던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어요. 아침이면 이 작은 집 베란다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서  아....... 사람들은 이런 햇빛을 햇살이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단어로 말하는 거겠지, 햇살.....이라고 발음하면 양지바른 곳에 엎드려 있는 고양이가 생각나는, 그런 고양이의 둥그런 등에 가만히 손을 대 보면 38도쯤 되는... 따뜻하고 노곤한 봄날의 아침.  


내가 용케도 완전히 주저앉아 버리지는 않았구나.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구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남편의 도움도 없이, 심지어 은행의 도움도 전혀 없이  25평의 이 작은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구나. 그러기까지 20년이 걸렸구나. 너무 좋았죠. 더 이상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고  얼마 없는 통장의 돈을 만지작 거리며 부동산 사장님들의 차에 올라타서 셋집을 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엇보다 남의  집을 빌려 살면서 느낀 집 없는 서러움이 끝났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세간 살이 하나 없이 텅 빈 이 집이 좋아서 큰 대자로 누워서 엉엉 울었어요, 막 이사를 한 그때는 그런 시기였어요. 계약서에 도장을 꽉 찍은 이 집이 7층이라는 것도 동남향이라는 것도 다 하늘이 내게 준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별거 아닌 사실들에 그때그때 감동하면서 이 작은 집에 행운이 깃들어 있음을, 그걸 알아채는 재미를 알아가던 때였어요.  


철이 없을 때는   없던 사실은 집이라는 것이 참으로 난감한 존재라는 거였어요. 집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어느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기기도 하는,  것인  같지만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실체가 있지만  없기도  ,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야속하게도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덩어리라는 거였어요. 살아온 모든 날들을 거슬러 보면 내게도 부유하던 시절이 있긴 있었어요. 먹고 싶다는   먹여주고 사고 싶다는  사주던 시절이었어요. 비록 셋방 살이었지만   칸을 썼고 2층에 사는 주인집을 빼고는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이 제일 컸었던 성수동 . 연탄을 쌓아두던 지하실이 칠흑같이 어두웠고  엄마는 무서움에 떨면서 항상 나나 동생을 데리고 연탄을 가지러 갔던, 사람이 들어서면 쥐들이 후다닥 도망치던 , 가장 넓었던 우리  옆으로  개의 셋방이  있던 . 자라의 목을 비틀어 피를  마시던 아저씨와 케이크를 자르는 플라스틱 빵칼을 다듬는 부업을 하는 아줌마가 살던 성수동 . 딸기잼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눠주던 엄마와 가끔 양복 안주머니에서 돈다발을 주던 아빠와 살던 . 살림집 건너편에 있던 아버지의 공장에 불이 났던 밤에 보았던 엄마의 눈물. 납품할 원단이 치솟는 불길에 모두 탔던 밤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얼굴은 절망보다는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에 가까운 얼굴이었던 기억이 나요. 아빠는 당신의 사업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었던  같아요. 하지만 아빠의 바람과는 다르게 사회적 여건은 빠르게 변해갔어요. 섬유 사업은 사양 사업이 되어 버렸고 아버지에게 납품을 받는 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엄마가  장만을 하려고 모은 돈을  번이나 가지고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망한 사람이 되었고요. 그때부터 우리 식구는 누가 봐도 가난한 사람들이 되었던  같아요. 고등학교 때인가 이사를 하려고 엄마랑 집을 보러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짜증을 냈어요.  아빠를 설득하지 못했나.  쌈짓돈을 내주었는가.   하나를 마련 못해  고생을 하는가.






매섭게 추운 퇴근길. 강남역에서 발한 지하철이 강변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요. 다들 경기도의 변두리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려요. 유난히  바람이 몰아치는 강변역 지하철 역사 아래 정류장에  있으면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진 구두 속에서 발가락들이 얼어요. 감각이 없어진  개의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주면서 생각했었어요. 강변역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집으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집이 없을까. 한강변을 따라 경기도 쪽으로 가면 신동아 아파트 , 현대 아파트, 워커힐 아파트를 지나게 돼요, 아파트의  켜진 창문들을 하나씩 하나씩 눈에 으며 생각했죠. 저기사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곳에 살았을까, 운동장만큼 넓은 거실에서 강변도로의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는 밤의 한강을 바라볼 때의 마음은 어떨까. 청승을 떨다 보면 어느새 허름한 원룸이 모여있는 단지의 외딴 방에 도착해요. 혼자서 엄마를 기다리다 잠이  어린 딸은 제때 챙겨 먹지 못해서인지 점점 마르고 있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얼굴을 쓰다듬으면 봄이 되면서 동그랗게  버짐이 만져져요. 나는 딸을 보면서 엄마를 생각해요. 평생  당신 집을  번도 갖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 엄마가 돌아가신 해에  남동생이 집을 샀고 2  후에 나도  집을 장만했어요. 동생과 나는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우리가 전전하며 살던 . 바퀴 벌레가 수시로 출몰하던 , 곰팡이 냄새가 옷에 배어 드라이클리닝을 하느라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었던 지하 . 현관문을 분해해서 밖으로 꺼내야 살림이 들어가던 . 하수구 냄새가 지독해서 두통으로 저절로 잠이 깨던 . 그런 방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방들에 누군가가 살아요. 요즘  방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엄청나게 많은 아파트를 지어서 들어가고 싶은 사람 누구나 들어가서 살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도  되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게 정말 말도  되는 건가요?



수희님


나는 방과 집에 대한 애착이 심한가 봐요. 집을 병적으로 쓸고 닦는 이유도 한때의 결핍으로 생긴  놈의 집착 때문이겠죠. 집에 대해서는  말도 무궁무진하게  많고 집에 관한 이야기만큼 궁금한 것도 없어요. 그래서인지 집에 대해  책을 자주 읽어요. 제목에 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이면 저절로 시선이 머물고 무조건 읽게 돼요. 집에 대해  책이 좋은 진짜 이유는요. 어찌 됐건  마지막에는 집을 갖게 되는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춥고 더운 , 뱀이 나오는 , 우물에 지렁이가 우글대던 집을 전전하던 공선옥 작가님이 담양에 있는 대나무 밭을 사고 거기에 집을 지은 것처럼요. 나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요. 그런 이야기를 읽는 건 더 좋아요. 너도 나도 집을 자랑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아니, 집이라는  누구나 갖고 있어서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  좋으려나요?  



와우! 지금은 투표율이 70프로 가까이 되네요.


2022.3.9

엉뚱한 생각에 빠진 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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