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세상에, 나는 정말 눈치가 없었습니다.

♬이랑 | 환란의 세대

by 로제


예술은 보고 싶은 이야기를 대리 실현해주는 정치적 올바름의 이상향 피조물이 아니다. 예술은 끝없이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밀려오는 해일이어야 한다. 무지와 통념을 뒤흔드는 지진이어야 한다.

-서정민갑, '눈치 없는 평론가'



노래는 광장과 공연장에만 깃들지 않는다.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 곁을 지나치지 못하고 주저앉는 노래, 묵묵히 버티다 외면당하고 사라지고 녹아버리기도 하는 노래 없이 음악은 절대 진실해지지 못한다.

-99p


예술은 자꾸만 개인으로 갈라지고 침잠하는 세상에 정지신호를 보내고, 연결의 감각을 회복시켜야 한다. 다른 존재와 내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찾아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121p



삶은 계속 변하고 세상도 계속 변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안목은 그 변화를 기쁘게 수용하고 아우르는 태도다. 세상의 수많은 존재마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치와 노력을 고르게 찾아내고 존중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니 취향과 자유를 방패로 쓰지 말고 다른 표현과 이야기를 두루 사랑하는 안목을 키워보면 어떨까.

-211p



내가 좋아하면 그걸로 된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완성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선호와 취향이라는 잣대로 윤리와 가치에 대한 사유를 덮어버리는 세상이라니. 훗날 역사는 오늘을 모두가 나르시시스트가 된 시대라고 기록할지 모른다.

-216p



음악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한때 나는 음악 관련 직종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고, 음악 평론가 역시 고려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음악 평론가의 길을 모색한 건 그 이유가 너무도 단순해 부끄럽지만,

모 사이트에서 '음악 평론가 대부분은 이전에 뮤지션을 꿈꿨던 사람'이라는 글을 보고 나서다.

나는 뮤지션이 가장 되고 싶었으니, 생계 등의 문제로 정 되기가 어렵다면

조금은 아쉽지만 평론가라도 되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평론가 되는 법' 비스무리한 검색을 하면서 자료를 찾아봐도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지 않았고(거의 10년 전 일이다),

아무리 찾아봐야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큼 안갯속에 묻힌 '음악 평론가'에 대한 신비감이 커져만 갔다.

음악 평론을 하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며, 어떤 학위가 도움이 되며,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당연히 뮤지션보다는 많이 벌 거라 생각했다. '지식' 노동자니까.?) 궁금했다.


그러니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음악과 세상 전반에 대해 20여 년 음악평론에 몸담은 '대중음악의견가'가 풀어낸 글이라니,

게다가 제목도 '눈치 없는 평론가'라니,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겠고

미스터리하기만 했던 음악 평론가의 베일이 벗겨지는 걸 이제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에 가슴이 뛰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계속해서 느꼈던 건, '시원함'이었다.

비단 평론가에 대한 궁금증뿐만이 아니라 음악 애호가로서 품어온 의문들을 해소해 주고,

생각을 더 확장시켜주는 데서 오는 시원함과

나의 좁디좁은 예술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데서 오는 시원함이었다.


음악 평론가의 진짜 현실, 음악과 뮤지션의 삶이 다른 데서 오는 실망, 예술이 아닌 콘텐츠가 되어 버린 음악,

개인주의가 심화된 시대 예술의 역할, 민중가요가 올드하게 느껴지는 이유...


그 밖에도 나열하지 못한 현시대의 예술-노동-세상에 대해 어렴풋이 품어온 질문이나

포기했던 사유들을 콕콕 짚어내며 조심스러운 듯하면서도 진솔하게, 담담하게 자신의 관점을 풀어내는 글을 읽으며 왜 저자가 '대중'음악의견가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예술과 시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 나는 예술만 좋아했지 시대는 얼마나 제대로 보려 한 것일까?

반대로, 시대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예술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눈치 없는 평론가'가 쓴 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예술과 세상에 정말 눈치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눈이 감겨 있었으니, 눈치를 볼 새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저자는 내게 '눈치 없는 평론가'라기보다는, 눈을 띄워 준 사람이다.


>>>

♬이랑 | 환란의 세대


keyword
팔로워 8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우리가 하는 게임의 총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