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벨 소리. 늙어가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자식이라면 지나치게 이르거나 늦은 시각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의 불길함을 알 것이다. 다행히 TV가 고장 나서 전화하신 거라 대신 인터넷으로 고장 접수를 해드렸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을 하나밖에 두지 못하셨다. 그런 이유로 나는 딸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다. 집안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나에게로 수렴되는데 한밤중이라도 수도 배관이 막히면 배관공을 부르고, 캣맘인 엄마를 대신에 길고양이 사료를 주문하고, 매일 새벽 운동을 가시는 아버지의 밑창 닳은 등산화를 바꿔드리는 소소한 자식 노릇이 그렇다. 집을 매매하는 제법 신경 써야 하는 일까지도 내가 거든다.
혼자인 적 없는 당신이 모를 수 있는 혼자라서 좋은 것과 좋지 않은 지극히 하찮고 지극히 시시한 몇 가지를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좋았던 건 늘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옷을 물려줄 동생이 없어 두세 살 윗 치수로 넉넉하게 산 옷은 소매가 나달 나달 할 때쯤에야 내 몸에 맞게 되는 건 안 좋았다. 친척들이 사 오는 종합과자 선물세트나 우리 동네 불란서 제과 시나몬 빵 같은 것들을 형제들에게 뺏길 걱정 없이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좋았다. 우리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수도 검침원 집 사남매가 별뽀빠이를 서로 더 차지하려고 다투는 걸 문지방에 걸터앉아 지켜본 날은 별뽀빠이가 더 맛있어 보여 시나몬 빵과 바꾸어 먹기도 했지만. 혼자라서 안 좋은 것은 종이인형이나 소꿉놀이 같은 역할 놀이를 할 때였다. 영화도 극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 시시한 것처럼 혼자서 서사를 만들고 스포일러를 유출하는 혼자 놀이는 금세 지루해졌다. 가장 끔찍하게 안 좋았던 건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놀고 간 후 어질러진 마론 인형들을 치우며 적막한 방에 혼자 '남겨진' 그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하며 하나 둘 서로의 동무를 빼가는 놀이가 너무 싫었던 건 혹시라도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사람이 내가 될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어쩌다 나와 같은 '혼자'를 만나면 무조건적인 동지애를 느낀다. 대학교 시절 동창 녀석이 무녀독남인 것을 알고 드문 '혼자'를 만난 반가움에 녀석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밥을 다 먹은 녀석에게 과일까지 깎아 주며 혼자로서의 연대감을 공유하고 싶어 녀석에게 물었다.
- 친구들이 왔다 갈 때 걔네들이 가고 나서 혼자 남겨지는 그런 느낌 난 되게 싫었거든 너도 그랬어?
- 글쎄.. 나는 별로 그런 거 모르겠던데....
녀석은 우걱우걱 사과를 씹어 먹느라 바빴다. (정말 녀석은 몰랐을까?) 서른 중반 무렵 포털 커뮤니티에 '무남독녀, 무녀독남 모임'을 검색한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런 모임은 검색되지 않았다.(만약에 있었다면 언니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그 후 혼자인 혼자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데 나만 이상한 건가 싶어서 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씩씩한 혼자가 되야겠다고 다짐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경제적 독립을 한 후 오랫동안 혼자를 잊고 산 시절도 있었다. 여름휴가 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뜨거움이 차올라 지리산 단독 종주를 했다. 지리산 종주 7박 8일의 시간은 나의 모든 패러다임을 갈아 엎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전영혁 25시의 데이트를 우러르던 카페 죽순이가 마운틴교 광신도가 되어 얼떨결에 클라이밍 아카데미까지 졸업했다. 졸업 후 토요일 팀 야영, 일요일 등반, 수요일 집회라는 마운틴교 루틴이 내 일상이 됐다. (집회는 산에서 얼굴 못 보는 팀원들을 산 밑에서 만나 친목을 도모하는 형이하학적인 모임이다. 이름과 달리 별거 없는) 윤정언니처럼 엘 케피탄에 오르며 속이 미슥거리도록 깡통식을 먹고 포타렛지에 한번 자보겠다며 산사람들 무리 속에 묻혀 혼자를 모르고 살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다가 혹은 직장 동료들이 우연히 내가 외동인 걸 알게 됐을 때 듣는 말이 있다. 칭찬인지 모를 애매한 말이라 그냥 나도 애매하게 웃기만 한다.
- 아~ 몰랐어요. 혼자인 티 전혀 안 나요. 형제 많은 데서 자란 사람 같아요.
혼자인 사람들은 혼자라서 저밖에 모를 것 같은데 겪어보니 적어도 너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뭐 이런 의미일 것이다. 혼자 자라서 혼자밖에 모를 거란 오해는 너무 선명해서 믿음처럼 다가온다. 아프리카는 덥고 검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는 덥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검다는 믿음처럼 혼자에 대한 믿음은 추상적이고 아득하다. 혼자는 이기적인지 아닌지 혼자인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다.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들의 DNA 이중 나선형 구조 어딘가에는 불안이란 독특한 염색체는 있을 것 같다. 혼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은 반듯하게 드러낼 수 없어 내밀하다. 꿈속의 나는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당신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우는 꿈을 간혹 꾼다. 꿈속에서도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울고 진짜로도 그렇게 울다가 깬다. 혼자들의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더욱더 유일한 존재이다. 어느 부모 자식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싶지만 혼자들에게 부모의 부재는 혼자 이를 악물고 견디는 이별이고 주먹을 꽉 쥐고 버텨야 하는 아픔이다. 혼자들은 곁을 비워 줘야 하는 채비가 늘 서툴고 부족하다. 오늘은 허연 달이 떴다. 죽음에 대해 부려선 안 될 억지라도 부리고 싶은 나는 달에게 어머니,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오래오래 어루만지고 살고 싶다며 마지막 글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