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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i aber Einsam Mar 06. 2020


​사각사각사각~

변호사가 되어 내 사건으로 법정 변론기일에 처음 나가는 날이 있었다.

다른 동기들이 10월쯤 첫 경험을 했다면, 난 여러가지 이유로 그 첫 경험이 늦어져서 다음해 봄쯤 법정에 나가게 되었다.


"얘들아, 법정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하니? 할 말 있을 때는 어떡하면 좋니, 손드니?"

법정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친한 동기들에게 물어보는 중이었다.

그 중 한 녀석이 (앞으로 종종 등장할 그는 "배군"이다) 엄숙한 표정으로, 

"누나, 법정 밖에서는 신발 벗어서 손에 들고, 정장 상의를 벗어 들고 노크를 해야 합니다. 예의바르게, 실례합니다 라고 하고 들어가야 해요." 

순간 설마 그럴리가 싶어서 다른 녀석들의 표정을 살폈으나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잠시후 한 녀석이 빙그레 웃는 바람에 그럴리가 없다며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왕왕 거릴 수 있었다.


첫 법정 경험을 보통은 1심 법정에서 하게 되는데, 나는 2심 법정에서 하게 되었다.

책으로만 들었던 어려운 용어들을 중간에 앉은 재판장이 읊고 있는데, 너무나 생소했던 나는 재판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적었다. 연.필.로.

2심 재판정은 보통 1심 재판정보다 엄숙한데, 조용한 재판정에 울리는 어색한 소리 "사각사각사각"

정말 미칠것 같았는데 안적을 수도 없었다. 긴장되는 와중에 기억못할까봐. 그런데 그 와중에 재판장께서 내가 사각사각사각 필기를 마칠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씀을 계속하고 기다렸다가 말씀을 하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움보다는 한마디라도 놓치면 더 큰일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받아적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상만으로도 땀이난다. 다들 조용한 가운데 혼자 바쁜 변호인이 내는 소리 "사각사각사각".


그 때 그 재판장께서는 피고였던 내가 무모하게 요구했던 것들을 많이 받아주셨고, 덕분에 재판이 길어져서 상대는 대표변호사님이 나오셔서 "제발 좀 사건을 끝내달라."고 재판부에와서 여러 번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나는 역시 초짜의 패기로 별의별 주장을 다해서 재판이 길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1심과 같았고 다만 판결문이 엄청 길었다.


첫 판결문이 구구절절 긴 것을 보고는 기염을 토했더니, 동기들은 말했다.

"오랜만에 내 얘기를 경청하는 변호사를 만났군(<--열심히 필기한것을 두고 한말이다). 자, 내가 니 주장이 왜 틀렸는지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 줄께."하는 기분으로 판결문을 쓰셨을 거라고 놀렸다.


그 이후로도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티가 나는 나의 초짜스러운 표정을 보고, 많은 재판장들께서 대부분은 자상하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셔서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마도 "초보운전" 같은 것이 내 얼굴에 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첫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다.

법정을 울리던 나의 어설픈 "사각사각사각"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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