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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한 편의 영화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I  각본 : 우베르토 파솔리니  I  개봉일 : 2013



  "만약 존 메이가 지금 당신의 집에 방문한다면 봉투에 어떤 물건을 담아갈 것 같아요?" 죽음 인터뷰를 진행하며 종종 건네던 질문인데요, 이 영화가 바로 그 질문이 생겨난 근원지랍니다.




  섬세함을 넘어 집착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균형있고, 깔끔한 화면 구성. 조용하고, 담백한 분위기. '모두에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소개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울림 있을만한 영화'라고 소개할 수 있는 영화 '스틸 라이프' 입니다.


영화에 관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맥스무비에서 진행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단독 인터뷰를 읽었어요. 영국에는 구청마다 고독사 담당 공무원이 있는데, 런던의 장례식 담당 공무원 인터뷰에서 '스틸 라이프' 영화의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그리고 6개월 간 고독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공서 직원들의 사무실 생활, 가택 방문, 장례 절차 등  업무 전반을 함께하며 영화를 준비했다고 하네요.


'스틸라이프'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 장면은  메이가 추도문을 작성하기 위해 시신 수습이 완료된 집의 둘러보며 '삶의 특징적 요소로 추측되는 물건 3개'를 봉투에 담는 장면이에요. 구청으로 돌아온 존 메이는 이 물건들을 책상에 가지런히 펼쳐두고 고인의 추도문을 써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퍼플아티스트가 당신에게, 누군가에게 건네는 대다수의 질문들은 '제 자신에게' 먼저 건네고 답을 찾아 헤매인 질문들이랍니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만약 존 메이가 지금 저의 집, 저의 방에 방문한다면..


-보라색 필기류(펜, 색연필, 사인펜, 형광펜 등)만 모아져있는 스탠리 큐브릭 굿즈 컵에서 보라색 필기구 자루

-죽음을 키워드로 한 책(글, 그림책)만 모아져있는 무리에서 한 권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는 '죽음 한 장' 엽서 시리즈 상자에서 엽서 한 장


구청으로 돌아온 존 메이는 '보라색 필기구 한 자루, 책 한 권, 엽서 한 장'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두고 저의 삶을 추측해갈 것 같아요. 쓰던 글을 멈추고 잠시 상상해보았을 뿐인데 금새 '이것에는 이런 의미가 있고, 저것도 중요하고, 여기에는 이런 추억이 있다' 존 메이에게 설명하고 싶고, 직접 말하고 싶은 욕구가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삶은 제가 붙여주는 의미,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전에는 다른 누군가가 절대 알 수 없는 저만의 의미들로 채워져있는 듯 해요.


'내가 붙여주의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어떤 의미들은 저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되어지기를 애타게 기다리듯' 느껴지고, 어떤 의미들은 딱히 급할 것 없이 '표현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여유로운 태도로 느껴지고, 한편에는 '표현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의미들이 느껴져 재미있었어요.




  생활 공간에서 표현되는 '나'. 현재 일상에서 규칙적인 부분, 불규칙적인 부분.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추모하는 나만의 방식. 나의 장례식. 나의 장례식에 찾아와 줄 사람,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 죽음 이후의 '나'


사람의 일생에 '삶과 죽음'이 '이야기의 과정과 맺음'으로서 어떻게 엮어지고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스틸라이프' 였어요. 차분하고 차근한 영화의 호흡에 나의 호흡을 맞춰가다보면 내가 써내려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 내가 붙여주고 있는 나의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보실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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