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
'버킷리스트'라는 용어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어 준 영화 '버킷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 꽤나 여러 번 반복해서 감상한 영화이지만, 저에게는 '미해결'의 느낌을 주는 영화이기도 해요.
'당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죽음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버킷리스트'는 '좌우명'만큼이나 종종 사용하게 되는 단어예요. 해온 일, 하려는 일,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까지.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누군가에게 때로는 동기(動機)로, 때로는 이유로, 때로는 목표로 역할해주는 변화무쌍한 단어라고 느끼거든요.
누군가는 자신이
'해온 일'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였어요' 말해요.
'하려는 일'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거든요' 말해요.
'하고 있는 일'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랍니다' 말해요.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예요' 말하지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죽음 인터뷰를 진행하며 '버킷리스트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버킷리스트로 무엇을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들도 종종 듣고는 해요. 사람들과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며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 때로는 부담으로, 때로는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실 이 영화가 저에게 미해결의 느낌을 주는 이유도 이와 맥락이 닮아있습니다.
중세시대 버킷(bucket, 양동이) 위에 올라가 진행된 사형 방식에서 생겨난 단어, 버킷리스트(bucket list). 사실 저도 '최재연의 버킷리스트' 제목을 적고.. 한참동안 내용으로 어떤 것들을 채워갈지 막막해하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기도 따라 하기도 했었어요. 어떤 날은 '도대체 버킷리스트가 뭐길래' 괜한 반항심에 '버킷리스트 적는 게 버킷리스트여서 적기 시작한 버킷리스트'라며 적기 시작한 버킷리스트도 있었답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의 상상을 제한시키는 제 생각을 발견했어요.
지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즐겁게, 열심히 적더라도..
언젠가 바뀔 수도, 바꿀 수도 있는 거겠지?
처음부터 다시 적을 수도 있는 거겠지?
끝내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럼 지금 적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솔직한 생각을 고백하는 것이 다소 부끄럽지만 꽤나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지요? 저는 아무래도 영화에서 제안하는 한 가지의 활동, 묻고 있는 두 가지의 질문에 스스로 '분명한 답을 할 수 없다' 생각했기에 '미해결'의 느낌을 받고 있다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생각해보기를 제안하고 있고, 핵심으로 '인생의 행복을 찾았나요?', '당신의 삶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했나요?' 두 개의 질문을 하고 있다 느끼거든요.
365일로 약속된 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언제, 어떤 계기로 시청하더라도 최소 세 가지(때론 그 이상)의 질문을 생각해보도록 독려해주는 작품이기에. 저에게는 행동의 의미를 찾아 헤매다 '무엇이든 아무렴 어때? 그럴 수 있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것, 지금 적어두고 싶은 소원이라는 것. 그 자체에서부터 의미는 시작되는 거지' 방황 속 배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기에. 비록 저를 고민스럽게 만들더라도 만나면 반갑고, 마주하면 유쾌하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아끼고 생각하는 작품이랍니다.
미해결의 느낌은 여전하지만 언젠가 느낄 '해결의 느낌'을 찾아가는 지금, 연속된 '지금'이라는 과정을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방향으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껴요. 앞으로도 하루만큼씩 평온하고, 자유롭고, 용기있게 성장해가기를 다짐해봅니다.
당신은 인생의 행복을 찾았나요?
당신의 삶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했나요?
당신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괜찮아요. 무엇이든 아무렴 어때요? '무엇을 적어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요! 그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것, '지금' 적어두고 싶은 소원이라는 것. 그 자체에서부터 의미는 시작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