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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_0416

퍼플아티스트의 답문



  안녕하세요, 20210130_0416 님 :)

  오늘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어요?




  2020년, 죽음학교의 정부지원사업 서류를 준비할 때 즈음이었습니다. 코로나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반년 가까이 준비한 서류였지만 어딘가 확실하지 않다는 마음에 막막하고 답답해서 경의선 숲길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공덕에서 신촌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서강대(경의중앙선)에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맞은편에 부부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어요. 아이는 저의 무릎 정도 오는 작은 키였지요. 그 거리를 함께 걷던 누가 보더라도 참 행복해보이는 가족이었어요. 점점 그 가족과 가까워졌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한쪽씩 잡고 "슈웅~" 소리내며 그내 태워주는 찰나의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제가 이 순간을 이토록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아이의 미소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마스크를 꼈지만 아이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네를 타며 웃던 아이의 미소는 정말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은 듯 했지요. 순수함을 상징하는 그 어떤 이미지보다 순수한.. 정말 지금 이 순간이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는 듯한 미소였어요. 그렇게 그 가족과 지나친 뒤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근처 벤치에 앉아 한참을 울다가 '내가 도대체 왜 우는 건지' 다이어리를 펼쳐 가만히 적어보기 시작했어요. 정말 갑작스럽게 터진 눈물이었거든요. 


'아이의 미소가 너무 예뻐서'

'티끌 하나 없는 듯 한 그 미소가 너무도 예뻐서'


아이의 그 순수한 미소가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눈물과 생각을 계속 흘려보내던 중, '아이가 저 예쁜 미소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 한 결의 바람이 마음속에 불어왔습니다.


'아이가 계속 저렇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죽으려하지 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 개의 바람은 열 개의 바람이 되었고, 그 바람들은 다시 이 질문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아이가 저렇게 계속 웃을 수 있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아이가 힘들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당신의 암호를 듣자마자 '설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질문했지요. "혹시 4월 16일인가요?" 사건이 있던 해에는 찾느라 관심두지 못했다며 한탄 섞인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던 당신.


"탓만 하기에는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세상을 욕하기에는 나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오늘도 노란색 팔찌를 차는 당신의 동기(動機)는 제가 공원길에서 만난 아이를 생각하며 결심했던 마음과 닮아있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상황과 시간들 앞에서 삶을 말하며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를. 차라리 죽음을 말하며 삶을 떠올리기는 바랐습니다. 아이에게 '죽음이 떠오를 때 죽음을 말할 수 있는 문화', '죽음을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편하고 다채롭게 죽음을 소통할 있는 문화. 물론 '문화'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낼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미처 해내지 못하더라도 괜찮으니 최대한 많은 씨앗을 심어놓고, 틔워놓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탓만 수는 없는 나이. 지금 있는 문화와 앞으로 생겨날 문화에 책임 의식을 가져갈 만한 나이임을 느꼈던 순간이었지요.




  '삶과 죽음에 관하여' 살롱을 개최(2020년)했을 때 사전 질문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당시 저는 이 질문을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요?'와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나누어 고민했습니다. 그 중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으로 3가지를 생각했지요.


기억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입니다. 죽음을 위로하고자 따뜻한 말을 건네기 위해서도, 따뜻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도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잊는다면 위로를 건넬 그 무엇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테니까요. '기록'과 '공유'는 시간을 잊고, 세대를 이기 위한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존중을 바탕하여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기록과 공유는 그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 간에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기억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해가는 역할도 있고요!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아낌 없이 건네야 하는 것에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위로.


노란 팔찌를 보며 그만 빼고 다니라는 말을 들어도 노란 팔찌, 노란 리본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행동은 분명 그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있음을.. 당신을 보며 제가 느꼈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고, 행동해주시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온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죽음을 그리는, 퍼플아티스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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