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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ug 15. 2022

워킹맘, 취향을 잊어가는것 : 육아체크인

내가 무슨 노래를 좋아했더라?


흠흠흠 ~ ♪♪♪

가사를 흥얼거리며 시간을 리드미컬 하게 보냈던 때가 언제였더라?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대중적인 가요보다는 숨어있는 노래를 찾아 나만 알고 있는 노래인 것처럼  갖고 싶어 하길 원했고, 그것을 타인에게 소개해 주는 것도 즐겨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된 후 생각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은 일상 수순을 밟으면서 음악을 시간 내어 듣기보다는 라디오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듣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침 출근길 라디오 20-30분, 퇴근길 라디오 20-30분 정도면 내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정해져 있는데 라디오에도 요즘 웬만한 녹음 방송이 아니고서야 음악을 많이 틀기보다는 이야기와 소통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음악 듣기가 여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들었었는지 잊어버렸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했고 한 곡에 꽂혀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듣곤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취향을 잊어가는 것 : cocomelon, baby joy joy, D billions


취향을 잊는 건 감탄할 기회가 적다는 것과 같다. 어떤 사물과 사람에 대해서 감탄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 깊이 그것을 저장하고 흡수해 오랫동안 좋은 기운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정신이 그리고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에게는 오랫동안 한 대상에 대해서 감탄을 한 만큼의 여유가 사실 그렇게 흔하지 않다. 비단 이것은 취향의 문제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건의 중심이 아이에게 있다 보니 아이의 취향과 관심사에는 누구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는 자꾸만 기억이 흐려진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 혹은 어쩌다 발견한 노래 한곡이 좋아서 그 곡이 한 달의, 그 해 1년의 주제곡이었을 때도 있었을 만큼 음악에 대해서 감각 있게 이야기를 하고 즐겼던 것 같은데 자꾸 잊게 된다.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을 설치하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발견해준 나의 음악적 취향에 놀란적도 있다. 메인 제일 첫 화면에 뜬 알록달록하게 감각 있는 아이콘들, 그것들은 모두 유아 콘텐츠들이었다.

cocomelon, baby joy joy, D billions 등 나의 아이가 유튜브 검색을 하면서 자주 본 영상들이 곧 나의 취향이 되어 있었다. 스크롤을 조금 내리니 대중가수도 있었지만 어떤 기준으로 이들이 떴는지 알 수는 없다.




여름밤 탓 :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나의 음악적 취향이 되살아 난다


육아 퇴근 무렵이었다. 아기를 재우고 그날따라 육아 시간이 고단했는지 잠시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앞에 내다 놓은 쓰레기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어폰과 핸드폰을 챙겼다. 음악 플랫폼에서 노래 검색을 하는데 플레이리스트에 온통 핑크퐁과 상어 가족 노래뿐이다. 취향이 사라졌다기보다 상황에 흡수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소싯적 나는 한 여름에 슈가볼이라는 가수의 ‘여름밤 탓’을 듣지 않으면 여름을 보내는 게 아닌 것 같은 때가 있었다. 끈적끈적한 여름 바람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밤 산책을 하던 기분이 새록새록 생각날 때쯤 정신 차려 보니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다. 지금 나의 현실 세계에서는 꼭 그 노래를 듣지 않아도 여름은 무탈하게 지나간다. 이어폰을 꽂고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그리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걸어가는데 어떤 가수를 좋아했는지 생각나지 않아 검색창에 ‘인디’라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단어를 검색해본다. 인기순으로 정리된 플레이리스트가 곧게 나열되고 스크롤을 올려가며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을 체크해서 다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아 … 내가 이 가수를 좋아했구나! 아! 이 노래를 내가 좋아했었지!’

찾았다!


잊어버리는 것에 저항하고 싶었던 내 감각에 다시 단비를 내려주는 느낌이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상쾌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는 또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위주로 덮어지면서 사라지겠지만 나의 음악적 취향을 찾았으니 그 기분에 소소한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그거면 됐지 뭐 더 바랄게 있나?'




육아 체크인 : 체크아웃은?


젊은 날의 회상이나 나이 듦에 대한 공감에 대한 이야기는 육아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즐길 수 있는 콘텐츠와 공간들이 무분별한 시대에 아기를 놓고 키운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우리 세대가 육아맘, 육아 대디의 중심이 되고 TV 콘텐츠의 주요 소비자가 주로 3040세대라는 점을 보면 육아, 워킹맘, 추억 소환 관련 콘텐츠들이 왜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중 나는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with 이효리, 비)에서 많은 위로와 공감을 했다. 3040 육아맘이라면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매일 리즈를 갱신하고 최고의 브랜드였던 이효리, 그 대체 불가함이 정말 멋졌었다. 예능을 촬영하면서 본인들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너무 예뻤고 소중한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사뭇 나 그리고 우리와도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마지막 방송에 시청자들의 추억 소환 포스트잇을 보면 다들 공감할 수 있을 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육아도 흘러가는 젊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당장은 알 수 없지만 5년, 10년이 지나면 그때 참 예뻤다고, 우리의 리즈시절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내가 아기를 키우는 가장 젊은, 그리고 아름다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육아 체크인!








<놀면 뭐하니, 싹쓰리> 마지막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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