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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Dec 24. 2020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슬기로운 조리원생활(2)

아름답지 않은 출산의 진실 그리고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날

출산을 하게 되면 여자는 예민해진다.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나는 그렇다고 하겠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고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며 아이를 향한 사랑 그리고 여러곳에서 오는 불안한 마음과 직장 복귀에 대한 생각이 벌써 부터 들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생성되는게 느껴질 정도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마음 보다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이기적인 마음을 보기도 했다.


조리원에서도 편하게 잠을 자본적이 별로 없다. 늘 수유콜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우울감 때문에 정말 눈물 젖은 밥을 먹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할게 너무 많다고 느꼈다. 수유와 유축 단순하지만 이 반복적인 것들이 나는 버거웠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뭐라할 수 없었다. 임신과 출산은 나의 선택이었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 것도 내가 먼저 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리원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건 가장 아날로그 문물인 라디오였다. TV도 재미가 없고, 마사지를 받는 것 외에는 딱히 이 곳에서 즐거운 생활은 별로 없었는데 마사지를 받는 중 케어해주시는 분이 틀어놓은 라디오가 재미있어 나도 라디오를 즐겨 듣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조리원동기는 전혀 만들수가 없었고 오직 마스크를 쓰고 경계하며 본인 아기를 보는데만 바빴다. 조리원 프로그램도 모두 취소 되고, 수유실과 개인방만 왔다 갔다할 뿐이었다.


마침 금요일이라 꽤 라디오에서 오래된 가수의 금요일 밤 노래가 나왔다. 옛날사람이라 옛날노래가 어찌나 반가운지 흥얼 흥얼 거리며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전신 거울 앞에서 댄스가 아닌 율동을 해본다. 볼륨을 하나 더 올렸다.


맘, 이 맘! 부풀어 오르는 이 맘! right alright! It's friday night!


흥이나고 기분이 풀린다. 그래 나는 이렇게 밝은 사람이었지! 스스로 원래의 내 본캐를 찾았다. 남은 조리원 일주일을 잘 보내고 가야 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야근하는 남편도 평소 같지 않게 카톡이 자주 온다. 최근 산후우울증 눈물사건 이후로 서로 더 조심하게 잘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이 곳에 있는 산모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같은 이유로 기뻐하고, 비슷한 이유로 불안해 하면서... 누군가는 이기적인 마음이 먼저 앞서 아이가 태어났지만 본인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하고, 또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에 하나 부터 열 까지 신경써 가며 누가 봐도 좋은 엄마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고, 또 다른 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매일 보고 싶어 새벽 수유도 서슴치 않는...

각자의 걱정과 기대들로 그리고 시간 구분 없이 우는 것 밖에 할 줄모르는 아기가 있는 산후조리원에는 밤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밥을 잘 차려먹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남편의 퇴근도 늘 저녁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신혼초를 제외하고는 남편의 밥을 차린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에서 차려주는 밥이 정말 맛있었다. 고맙고 감사했다.

매일 나오는 미역국이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반찬은 저염식이었고, 모두 건강식이었다. 산모들이 출산 후 바로 몇 키로씩 찐 살을 기어코 빼고가겠다는 다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밥을 많이 남기는지 밥양은 알아서 적게 나왔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그리고 2시간 마다 나오는 간식과 야식까지 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아이에게 먹일  모유를 생산하는 규칙적인 유축생활과 훈련소 같은 수유 시스템은 조리원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야만 생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모두 1-2주 사이에 산후조리원에 완벽 적응 또는 기분좋은 사육에 길들어져 간다. 아기를 향한 나의 마음도 좋은 쪽으로 점점 길들어지겠지. 


수유실에서 아이를 보기 보다 엄마들을 관찰했다. 엄마들의 성향이 다 달라서 오히려 아기 보다 엄마들을 관찰하는 쪽에 재미가 생긴다.


아기에게 사랑을 쏟아 부우면서 큰 목소리로 태명을 부르며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 엄마가 있는 반면, 

수더분하게 조용히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토닥여 주는 엄마도 있다. 또 나처럼 아직은 아기에게 아이야 라고 부르는 게 어색한 엄마도 간혹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아기의 귀에 대고 겨우 들릴 듯한 모기만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어색한 수유 자세와 목이 잘릴 것 같은 근육통 때문에 아기를 안고 있으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스트레칭을 하는 나같은 엄마... 아니, 나.


궁금했다. 아기가 생기면 정말 너무 사랑스러울까, 모성애는 뭘까? 그런 감정이 바로 생길까? 조리원생활을 하는 동안 그런 비슷한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 조차 거짓으로 느껴지는데 모성애가 어떤 마음인지 느낄리가 당연히 없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아기는 8개월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까 말까한 모성애의 간지러운 감정이 느껴진다. 벚꽃비 내리는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나서 코로나19로 바깥 출입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삭막하고 건조한 지금 계절에 아이가 태어난지 막 260여일을 지나고 나서야 '아... 이 마음이 그런걸까?' 하고 안심하게 된다.



세상 처음 느껴보는 색다른 통증에 내 머리를 쥐어 뜯고 간호사는 위에서 갈비뼈가 부서져라 배를 누르고 이러다가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다 터져 죽어버리는건 아닌지 잠시 끔찍한 생각을 하다 또 그럴 겨를도 없이 쥐어짜는 고통에 몸부림 치다 '아기 힘들어요 힘주세요!' 하는 말을 몇 번 듣다보면 응애애애애 - 하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기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전신의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 대충 걸쳐놓은 빨래 처럼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나는 힘이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같은 몸짓으로 힘없는 내 밑바닥을 다 보여주고 나면 갓 태어난 아기를 캥거루케어라며 내 가슴위에 올려준다.


- 뭔가 냄새가 날 것 같았는데, 무색무취 아무냄새도 안나고 그저 울고 있네?

- 우는 소리가 왜 이렇게 작지? TV에선 엄청 크게 들렸는데

- 너무 사랑스러워 펑펑 울줄 알았는데 왜 눈물이 안나지

- 근데 왜 이렇게 못생겼지...?

- 내 아이 맞는거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른 출산의 과정은 아름답지 않게 지나갔고,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예쁘게 포장된 출산 그 후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힘들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출산 과정뿐만 아니라 육아의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면부족으로 '이러다 또 죽는거 아니야?' 하면서 아기를 케어 하고, 매일 쪽잠에 무서울 정도로 잘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한 쪽 눈을 감고 일어나 머리를 대충 묶고, 돌덩이 처럼 굳은 어깨와 목 통증을 매일 느껴가며 수유를 했다. 이렇게 '아기만 보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건가? 이게 엄마라는건가?'를 수만번 되새기며 최대한의 절망까지 갔다가 오는 신생아 시기가 지났다.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 역시 엄마로 새로 태어난다는걸 조금만 인지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게 당연하니 너무 불안해 하지 말라고 그때의 나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내 이름 보다는 어쩌면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날이 많을 것 같아 내가 사라지는건 아닌지 걱정했던 한숨에게도 사라지는게 아니라 더 새로운 강력한 부캐가 생긴거라고 나를 안아주고 싶다. 지금은 부캐의 시대니까!


여전히 육아는 쉽지 않지만 어느 순간 아기와 마음과 합이 맞을 때가 있다. 나는 그게 지금 8개월이다. 

'이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많이 의지하고 있구나, 내 마음이 어떠해도 나를 보고 웃어주는구나, 정말 너는 나를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구나' 이 마음의 안심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런 간지러운 마음이 모성애일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는 지금 단잠에 빠졌다. 어둠속에 빛나는 빨간 새벽 불빛은 코로나19로 상황은 아쉽지만 연말 분위기를 애써 느껴보라며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다. 오늘도 나름대로 성장하느라 애썼다. 엄마야. 수고했다.


돌아갈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절대적으로 흘러가는 지금. 아기와 나의 사랑스러운 고군분투의 흔적들을 놓치지 말고 잘 담아두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슬기로운 조리원생활 그리고 그 후.


#부캐의시대가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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