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삶의 디폴트를 위한 방법 : 나만의 19호실
슬기로운 육아생활 적응기
안정적인 삶의 디폴트를 위한 방법
육아는 꾸준히 사랑받는 고단한 두께의 스테디셀러 도서
나만의 19호실
아기가 태어난 지 300일이 되었다. 만 9개월, 작은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빨리 기어갈 수도 있고
잡고 서는 것도 능통하다. 다리에 힘이 어느 정도 생겨 손을 떼고도 짧게 몇 초 정도 버틸 수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아이의 발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300일이 지나는 동안 사계절을 아기와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해당 계절이 가지고 있는 냄새와 에너지와 분위기 같은 것들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지금 많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옷차림과 무의식 중에 내가 내뱉는 짧은 말들과 (예를 들면 오늘 날씨 좋네, 아구구 추워, 비 오네) 나의 표정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만 9개월은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슬기로운 육아생활 적응기
모든 일이 그렇듯 적응기가 온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여유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내 일상에 '쉬다'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날이 왔다. 사실 육아에 적응했다 라는 말은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도 자주 썼다.
'아 이제 적응한 것 같아' 적응되는 패턴과 아이와 맞춰가는 시간들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너무 섣불리 해버렸다. 아기가 태어난 지 고작 한 달이 됐는데 적응을 했다니, 그건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나오는 헛소리 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수 없이 많이 달라지는 아기의 패턴과 성향에 의심만 깊어지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오는 한숨과 두려움과 고단함이 쭉 함께했다.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내 삶에 터걱터걱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책 한 페이지 여유롭게 읽을 수 없고,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었다. 내 밥을 챙겨 먹기는커녕 아직도 아기 이유식 먹이고 나면 하루가 반나절은 지나가 버린다. 아기가 점점 크면서 더 수월해지겠지 라고 생각했던 육아는 더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지고, 아이는 엄마의 손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육아는 내 이야기가 아니었던 불과 1년 전, 시간에서 사라지는 내 친구들을 보면서 저렇게 까지 힘이 들고 여유가 없을 일인가. 나는 달라야지 나는 절대적으로 저렇게 하지 않아야지 생각했던 내 안일한 생각들은 오류로 증명됐다. 마치 검정 화면에 흰색 글씨로 뭐라고 뭐라고 써져 있는 컴퓨터 화면처럼 한참을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죄 없는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는 컴알못 처럼 나도 어떨 땐 칭얼거리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이게 무슨 오류인가 생각하면서 아이를 한참 보고 있기도 한다.
육아엔 적응기가 없다. 안정적인 삶의 디폴트를 위해 아기가 깨어 있는 낮에는 온 힘을 다해 그리고 재량 것 하얗게 불태우는 삶이 이어질 뿐이다. 장담컨대 앞으로 이십 년 간은 쭉. 그러다 보면 이게 원래 내 삶이었지 하면서 지금 생활에 반강제적으로 적응해갈뿐이다.
아기가 있는 삶의 디폴트 값을 새로 설정하다.
아기가 있는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 출산 전과 출산 후 나를 채워주는 정신적인 풍족함이 훨씬 깊어지고, 삶이 안정적이다. 육아는 스테디셀러 책과 비슷하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샐러 책의 제목만 읽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아 저책 좋다더라.' '저 책은 꾸준히 사람들 한테 읽히는 것 같아.'처럼 주변에서 들은 '아기 낳으면 삶이 완전히 달라져' '지금 이 생활도 이제 끝이니까 마음껏 자유로워라 미리' '그래도 아기 낳으면 정말 좋아' 같은 말들이 대충 그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출산 후 본격적으로 읽고 있는 그렇게나 유명하고 몇십 년, 길게는 몇 세기에 걸쳐 사랑받는 스테디샐러 책을 펼쳐본 나는 읽기 전에 내가 짐작한 내용이 아닌 것에 놀라고, 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알게 되는 새로운 정의와 사실들에 놀란다. 내가 생각했던 스토리가 아닌,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스토리가 담긴 그 책을 완독 하기에는 너무 두꺼운 뒷 페이지들과 하루에 한 장을 넘기기 힘든 내 현실에 책장을 뒤적거리다 이내 덮어버린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데? 이게 왜 스테디셀러지?' 이 책을 다 읽으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생각만 해도 참 고단하네.
아이가 생기면 내 삶을 구성하고 있던 시간과 날짜들은 모두 재설정해야 한다. 아이를 중심으로 흔히 말하는 육퇴를 하기 전 까지는 디폴트 값을 새로 입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이 삐걱거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또 브레이크가 걸리기 쉽다. 그리고 아기가 잠든 시간부터인 '육퇴'이후에는 다시 나를 위한 디폴트 값을 또 만들어야 한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 소설집 <19호실로 가다>를 보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 여자에겐 감정적으로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본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만의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돈을 벌고 쓰던 때와는 다르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겪는 수많은 현실의 억압, 자유의 부재, 그리고 본인 스스로의 상실을 겪으면서 사막 같은 일상을 살게 된다. 남편에게 본인이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고 말을 하지만 되려 남편은 어떤 자유를 원하는 것이냐며 본인 역시 매일 출퇴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 반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처럼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2층 방에 '엄마의 방'이라는 아내의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지만 이내 아이들이 드나들며 그곳 역시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낡은 싸구려 호텔 19호실에 본인의 방을 갖게 된 아내는 가끔 그 방에 혼자 머물며 낡은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래 앉아 있는다. 그곳에서는 아이의 엄마도, 한 남자의 아내도 아닌 오로지 본인의 모습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출산을 하게 되면 나의 시간과 공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충분히 더 많이 내어주어야 하고 내 마음대로 값을 설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출산 후 모든 여자의 공통 디폴트 값이다.
나만의 19호실
육퇴 후 나의 19호실을 찾기 시작했다. 넓지 않은 우리 집에서 나의 공간이라,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서재라는 이름의 방이 있었다. 내 책상, 그리고 뒤에는 좋아하는 서적들이 있고 남편은 없지만 나에겐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난 후 아기의 장난감을 보관하는 장소, 아기 옷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인 이 작은 공간에 그래도 내가 마음을 기댈 곳이 있었으니 바로 책상이다. 책상 위에는 아기의 물건이 없다. 내가 사용하던 연필, 샤프 그리고 스탠드 같은 것들이 있고 하루를 기록하는 다이어리, 좋아하는 책 몇 권이 있다. 아기를 놓기 전 해 지난 달력이 앞에 놓여 있다. 이 곳은 나의 19호실이다. 책상에 앉으면 시선 가는 곳에 제일 먼저 신혼여행지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운 내 사진이 보인다. 그 시선 밑으로는 결혼식을 하기 전 친구들과 찍었던 자유롭다 못해 망나니 같은 내 모습이 보관된 사진이 있다. 두 번의 시선 옮김으로도 마음에 안정이 온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나의 밤을 시작한다. 작은 방안에 있는 더 작은 구석에서 힘들어간 어깨를 내려놓고 아이와 남편에게서 떨어져 나와 혼자 고독할 수 있는 이 작은 책상 나의 19호실에서.
이렇게 시간에 따라 삶의 디폴트 값을 변경해가며 나는 몇 페이지 넘길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오랫동안 사랑받는다는 저 두꺼운 스테디샐러 책을 껴안고 오늘도 슬기로운 육아생활에 적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