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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Dec 21. 2020

지안에게 - 두 번째 편지

이제 우리 어디로 가?


지안아, 너는 요즘 어떤 기분으로 지내니. 


정식 발령을 받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었지. 이 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니. 


시절이 평소 같기만 했다면 어디든 여행도 다녀오고 마음껏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수도 있었겠지. 네가 나를 보러 올라와 며칠 머물다 갈 수도 있었을 거야. 1989년에 태어난 너는, 네 세대가 무엇을 시도하든 가장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마는 세대인 것 같다고 말하곤 했었지. 어쩐지 네가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을 것만 같아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구나. 


이제야 직장이 정해지고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한 달이 주어졌는데, 그 좋은 시간이 전염병 때문에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래도 그 푸념 속엔 큰 안도와 기쁨이 있을 거란 걸 알아. 조금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아니, 우리가 운 좋게 피해 가고 있는 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언가 아쉽다는 표현조차 조심스러운 이 시국에, 결국 너는 오랜 노력 끝에 무언가를 해냈어. 네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던 나쁜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틴 결과 단단하고 반짝이는 미래를 손에 쥐게 된 거야. 정말로 축하해.                  


물론 네가 가장 바라던 직업은 아니란 걸 알지만, 때로는 가장 높은 곳보다 한 층 아래에 자리를 잡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언제부터 네가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는지 이제야 제대로 숫자를 세어가며 돌아본다. 


네가 뜬금없이 연고도 없는 충남의 어딘가에 지원했던 해에, 부산과 서울에서 각자 출발한 엄마와 나는 그 도시의 기차역에서 만나 너를 기다렸어. 낯선 도시에서 만난 엄마가 얼마나 반갑던지, 역에서 엄마를 보자마자 얼싸안으면서 기뻐하는 나를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빤히 쳐다보더라. 그날 나는 새로 산 지 얼마 안 되는 회색 폴라 니트를 입고 있었어. 새 옷을 입은 기념으로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 사진은 고장 난 옛날 핸드폰에 사장되어 지금은 볼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 


거긴 좀 춥고 휑했어. 도시이긴 하지만 그저 조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엄마는 내 바지가 너무 얇다며 겨울엔 겨울 바지를 입고 다니라고 나무랐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캐리어를 끌면서, 엄마에게 이제 우리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어. 우리 모두가 처음 가본 도시이니, 말 그대로 어디로 가야 할지 엄마의 생각을 묻는 말일 뿐이었는데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슬픈 말이라고 하면서 웃었어. 


이제 우리 어디로 가? 그러고 보니 그 말은 참 슬픈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은 참 슬픈 말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엄마와 나는 깔깔 웃었다. 우리는 슬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은 농담이 될 수 있었어.   


오랜 시간이 지나 같은 계절을 맞이한 지금, 그 말이 이렇게 되돌아와 입안을 맴돌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우리. 어디로. 가. ? 

지안아, 이제 나는 어디로 가지?

 


나는 정말로 짐작이 힘들다. 스물다섯부터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네가 전공한 과목을 겨우 5명 뽑은 해에 7명 안에 들어가고도 끝내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하고 말았을 때, 네가 어떤 심정으로 그날을 견뎠는지.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가서 부정하고 싶었을 그 하루를 어떻게 버텼을지 말이야.   


이상하더구나. 시험이 또다시 한 달 앞으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당일이 되어 네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또 필기에서 합격한 뒤 시범수업을 준비하던 그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네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어.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 말이야. 그때 너는 겨우 6살이었고 아빠의 암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어. 사실 악화랄 것도 없었지. 이미 마지막까지 진행된 뒤에나 발견되었으니, 아빠의 남은 날들은 확실하게 결정된 죽음 앞에서 육체의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낼 뿐 달리 무언가를 연장해볼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어. 눈앞에 죽음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한 달쯤 뒤에 그 구멍으로 하나의 몸과 영혼이 저절로 빨려 들어갈 거라는 거지. 그것은 예정된 일이었어. 


아빠는 방 안에 놓인 작은 밥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아. 너는 아빠가 거기 있으니까, 그냥 어쩌다 아빠의 머리를 만졌겠지. 무언가 묻어 있었을 수도 있고, 그냥 놀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 몸이 아파 어린 딸마저 귀찮았던 아빠는 저리 좀 가라고 너에게 짜증을 냈어. 영문을 몰랐던 너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에게 가 안겼던 것 같아. 아빠는 네가 자꾸만 와서 귀찮게 한다고 엄마에게 다시 짜증을 냈어. 


그토록 선명한 불행이 낯설었던 나는 그때 너를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못했어. 오히려 나는 그런 장면을 봐야만 하는 나 자신을 누군가 와서 안아주길 바라고만 있었어.      


그런 날이 있었다. 너에게 그날의 기억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바로 그런 날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아 영영 함구되어버리고 만 그날들이 떠올랐어.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이젠 정말로 다 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시간, 이 지긋지긋한 고시 공부도 드디어 끝나는 거라고 기대했던 바로 그 시간에, 네가 절대로 언급하지 않아 너의 감정이나 생각을 아직도 알 수 없는 네 어린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을 지나갔던 거야.    


나는 네가 최종적으로 합격해 좋은 선생님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어. 


너는 아마 훌륭하게 해냈을 거야. 앞으로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가능성을 품은 지원자들 중 한 명이었을 거야. 그랬을 네가 합격한 5명에 속하지 못하고 불합격한 2명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아침, 나는 직장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쏟았다. 사람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들어와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그냥 울어버렸어.      


결승테이프 바로 앞에서 또 한 번 출발선으로 떠밀린 네가 어떻게 다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나는 네가 존경스러우면서도 산다는 것이 참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을 얻는 세상이라니. 친구도 멀리하고 연애도 미루고 수험서 외에는 책도 읽지 않은 채 홀로 책상에 앉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사람만이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니. 평생 먹고살 단 하나의 직업을 보장받는다는 건 그렇게나 어렵고도 아득한 일이더구나.     



차선책을 선택해 결국 취업에 성공한 너를 축하하면서 시작한 편지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들로 채워져 버렸는지. 지안아, 요즘 나는 살아온 날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전하지도 못할 편지를 너에게 써. 


우리의 생이, 그 생을 살아간 당사자인 우리에 의해 해석되지 못한 채 끝나버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야. 43년을 살았던 아빠의 삶이 그랬지. 당황하는 순간 고통 속에서 끝나버렸지. (어쩌면 내가 타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기록되거나 해석되지 못한 삶도 삶이었다 말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앉아 그간 살아온 날들의 모양을 뚜렷이 그려보려 너에게 편지를 쓰는 데 내 남은 생을 모조리 바친다 해도, 결국 삶의 많은 부분은 미처 해석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겠지. 


그렇지만 나는 단 하루라도 좋으니 가느다란 기억의 줄기를 어떻게든 붙잡아보고 싶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과거라도 붙잡아 되새기고 있어야만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우리 어디로 가지? 

언젠가 내가 그 답을 찾게 된 날에 이 편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 


건강하게 지내렴. 

또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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