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2014), 어떤 길에 들어도 괜찮다.

살아가는 것이 곧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이라면

by 카밀라

*영화 서사의 특성상 큰 영향은 없겠으나 내용 스포가 있습니다.



<와일드>는 2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꼭 방학 안에 봐야지 했던 영화 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셰릴 스트레이드 본인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는데, 그 경험이 혼자서 무려 4000Km가 넘는 PCT를 하이킹하는 것이니 한창 여행후유증에 취해있을 나에게 필요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단순히 여성 여행자의 여행이야기라고만 예상했으나, 더 많은 생각거리들을 남기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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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내 인생의 중심은 언제나 엄마야.", 모든 딸들이 잊고 사는 것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그마저도 예상보다 더 빨리 악화된 셰릴의 엄마, 바비. 병실에 누워 무기력해 있는 그녀에게 죽을 일 없다고 다그치며 셰릴이 말했다. 주정뱅이인 아빠에 의한 가정폭력과 가난으로 점철될 뻔한 유년시절 속에서, 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은 그 시절을 버티고 셰릴을 성장케한 가장 큰 원동력이다.


엄마와 너무 일찍, 그리고 정말 허무하게 헤어져야만 했던 셰릴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제 겨우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야속한 병 앞에서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위해 괜찮은 척하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엄마가 떠나간 후 셰릴은 세상과 엄마, 그리고 본인에 대한 분노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모시킨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들과 자고, 마약에 손을 대고, 어떤 충고나 조언도 우습게만 들린다.


점점 파국을 치달아가던 셰릴의 방황은 끝내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누구와의 결과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임신으로 도달한다. 절벽 끝까지 밀려난 자신을 깨닫고, 눈 내리는 차 안에서 셰릴이 절친한 친구에게 말한다. 다시 엄마가 자랑스러워 하던 딸로 돌아갈 것이라고. 세상의 모든 사랑을 잃고 울부짖었던 셰릴은 사랑의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다짐한다.



<와일드>는 바비의 '모성'을 애써 대단하게 그리려 하지 않는다. 단지 바비의 자신감 넘치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통해 셰릴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을지를 흘려줄 뿐이다. 그러면서도 대화 주제나 처한 상황만 다르지, 어떤 모녀나 생에 몇 번씩이고 겪어봤을 상황들을 통해 과장도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추려내 보여준다. 둘 사이의 언쟁거리나, 생각차이, 그리고 아름답기는커녕 괴로울 정도로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까지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모든 이의 경험이 일치하지 않으니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를 비롯해 꽤 많은 딸들의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분명 엄마와 큰 연관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엄마보다 더 잘 사는 여자가 되어야지, 엄마의 반만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엄마같은 사람만 사랑해야지, 엄마만큼은 꼭 행복하게 만들어야지 등 무수히 많은 종류의 목표들을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있으리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공통의 신체적, 혹은 사회적 경험을 무수하게 겪게 되고 시대는 달라도 고민과 감정의 맥은 통하게 되어있다. 일상 속에서 가까이에서 공감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아 답답해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세월을 함께 보내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기준과 목표에 그들은 견고한 한 축이 되어있지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이 거대한 인생의 전제를 새까맣게 잊고 산다. 어느 에세이의 제목처럼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데 그걸 깨닫기는 쉽지 않다. 마지막에서야 얼마나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고 후회하지만. 셰릴 역시 다르지 않다. 당신이 누군가의 딸이라면, 충분히 셰릴의 방황과 결정이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자꾸만 마음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보고싶고 그에게 미안해질 것이며 곧 자신의 추억에 먹먹해지리라 생각된다.



reese-witherspoon-stars-in-jean-marc-valles-film-wild-credi.jpg 출처 : Montreal Gazette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겠어", 도전을 앞에 둔 당신에게


셰릴이 다시 예전의 삶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PCT하이킹이다.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4000KM가 넘는 이 구간은 눈보라가 쌓인 산 한복판과 물 한 방울 찾기도 어려운 사막도 지나면서 들짐승과 뱀이 있는 야생을 텐트로 버텨야하는 극한의 코스다. PCT코스 자체에 대한 가이드 정보가 지금보다 훨씬 적고 접하기 어려웠을 95년도에, 셰릴은 우연히 발견한 책 한권을 통해 모험을 시작한다.


셰릴의 도전은 당연히 수월하지 않았다. 물탱크도 소용없는 사막, 길도 안 보이는 눈밭, 산짐승과 독사일지도 모를 뱀까지 마주치는 야생은 결코 만만치 않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별 문제도 아닐 수 있다. 남성이 태반인 PCT참가자들과 제대로된 보호장치가 하나도 없는 야생에서 '여성'이라는 셰릴의 특수성이 셰릴의 여정을 더욱 쉽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정치적인 메세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 하이커, 크게는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여성들 모두가 겪을 수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막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수상한 기운에 남편이 있다고 거짓말해야 하고, 여자 부랑자라는 것이 흥미롭다며 웬 찌라시 기자는 셰릴의 사진을 멋대로 찍고 일방적으로 인터뷰하고 떠나버린다. 사막 한 복판에서 성적 위협을 대놓고 가하는 남성에게 셰릴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도록 하며 그가 가버리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다양한 사건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 하나 있다. 한 포인트에서 젊은 남성 하이커들에게는 냉담하면서 셰릴에게는 끊임없이 친절을 가장한 플러팅을 던져대는 한 직원이 있었다. 셰릴의 닉네임을 PCT의 여왕으로 지었다던 남자애들은 커피 리필하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직원을 보고 "리필하러 가시죠, 여왕님" 이라고 장난친다. 여성이니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에서 나온 장난들이다. 이에 셰릴은 말한다. "웃기지 말아요. 여왕은 직접 리필하러 안가요." 이 대사에는 정말 감탄했다. 긴 말 필요없이, 이 한 줄이 현실의 한 편을 암시함을 아는 사람들은 잘 느꼈으리라.


셰릴이 여정에서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여성이 세상에 나와서 또는 전례가 전무한 곳에 혼자 뛰어들 때 겪을여러 위협을 잘 함축하고 있다. 그 적나라함은 우리 마음을 잠시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 안에서도 셰릴은 의연하게 잘 대처하고 다음 단계를 향해 간다. 끝없이 야생과, 타인과, 그리고 용서하기 어려운 자기자신과 싸우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에는 위협을 받을지언정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도, 한 남성 도전자는 가지 말라던 눈밭 앞에서도 셰릴은 물러서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schermafbeelding-2015-05-11-om-15-53-46.jpg?w=640&amp;h=269 출처 : refractionsfilm.wordpress.com


황무지나 다름없는 모험에 뛰어든 것은 물론, 기어코 다음, 또 그 다음을 찾아가고 결국엔 도전에 성공한 셰릴의 서사는 더 큰 시그널을 우리에게 보낸다. 목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은, 결국 내 발을 멈추게 해진 않더라고. 그러니 못이 되느니, 아니 아파하며 돌아가느니 망치가 되라고.



"아무것도 하지않고 흘려보낸 시간은 얼마나 야성적인가", 고요 속을 울리는 치유의 과정


사실 혼자 여행하면서 자아를 찾을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지난 두달간 여행하면서 눈 앞에 있는 일이나 구경거리에 집중하는 데에 시간이 다 소요되기도 하고, 고요한 곳에 혼자 있으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혹은 떠올릴 필요가 없는 생각들만 머릿속에 울릴 때도 많다. 그 소리더러 꺼지라고 싸우는 게 명상시간의 대다수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셰릴 역시 길고 외로운 여정에서 머릿속에 나타나는 것들과 싸워야했다. 대개는 엄마에게 저지른 용서안될 자신의 행적들로, 묵묵히 숲을 헤쳐 걸어가거나 텐트에서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등에 셰릴을 쫓아다닌다. 셰릴이 바비가 죽고 나서 상담을 거부하고 나설 때 바비가 나타나는 장면 등은 셰릴이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이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한 과정으로 트라우마와 관련된 단편적인 사건들이 불연속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겪는 것이 있다고 한다. 없는 듯이 잊고 지냈던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내면서 끊긴 기억을 이어붙이고 있는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해내는 것이다. <와일드>의 오프닝은 셰릴의 PCT하이킹을 시작하는 첫 순간으로 열린다. 하이킹 과정은 순차적으로 보여지지만, 셰릴의 과거 사건들에 대한 플롯은 듬성듬성, 그리고 전혀 순서없이 보여진다. 이러한 편집은 플롯의 배열이 단순히 셰릴 행동의 개연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킹에서 셰릴이 통과하는 치유의 과정임을 보여주려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떠오르는 과거를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그것에 괴로워하지만 결국은 과거의 자신도, 현재에 후회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신도 셰릴은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한 소년의 노래를 들은 후 끝내 보고싶다는 고백을 터뜨리며 무너지는 장면은 결국 셰릴이 극복의 문턱을 넘어섰음을 상징한다. 비로소 자신을 용서했기에 보고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셰릴과 같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모두가 잊고 싶은 것을 묻혀두면서 상처를 대충 싸매놓고 살 것이다. 그런 방식이 때로는 속죄가 때로는 치료가 된다고 생각되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마주보는 것만큼 상처를 고치는 게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너무나 어려워 섣불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만.


wild4.jpg 출처 : 네이버 영화


목적지 신들의 다리에 도착해서 셰릴의 구원은 완성된다. 셰릴은 더 이상 또 걸어도 되지 않을 길들을 놓아주고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 인생 안에서 걸어온 길을 넘어 또 새로운 어딘가를 걷기 위해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야성적이었는지"를 인정하면서.





추천한다면


wild8.jpg 출처 : 네이버영화

지옥의 문턱까지 가서야 비로소 삶을 구해내기 시도하고 끝내 성공하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므로 널리디 널린 서사에서 얼마나 인물의 감정의 변화와 행동의 개연성을 잘 연출하는지가 정말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전작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에서 했던 것만큼 해냈다고 생각한다.(그러고 보니 그 영화도...?)안 봐도 참 탄탄할 두께와 명성을 지닌 셰릴의 원작, 원작에 빠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해서 스스로 감독을 찾아다닌 리즈 위더스푼의 열정으로도 "믿고 볼 수" 있는 영화인 것같다.


먼 곳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 또는 그냥 추억할 누군가가 있는 사람부터, 사는 것이 결국 이 길 저 길 다 가보는 것이기에 어려운 길은 있을 수 있지만 틀린 길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혹은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까지 모두에게 <와일드>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