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거윅, 선명히 각인된 이름으로

<LADY BIRD>, 이전과 이후

by 카밀라

1학년 때 한 교양수업에서 1백명 가까운 학생들을 앞에 두고, 강단에 선 교수는 물었다. "이 영화는 누구의 영화인가요?" 교수가 등진 스크린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포스터가 열댓개 떠 올라 있었다. 모두들 쉽게 떠오르는 감독의 이름을 단번에 답했다. "쉽게 답하네요." 포인터를 한 번 꾹 눌러 화면을 바꾼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누구의 영화인가요?" 당시 개봉한지 두어달 지난 영화였던 <아가씨>의 포스터였다. 이 역시 같은 감독의 영화다. 그런데 어쩐지, 이전의 질문에서와 다르게 학생들의 대답이 시원찮다. 끄응, 하는 앓는 소리만 제각기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짐작컨대, 다들 머릿속으로 박찬욱? 아니, 김민희나 김태리의 영화라고 해야하지 않나?, 라는 식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뮤즈에게는, 재현을 맡은 사람에게는 창작자로서의 역할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배우가 맡은 oo은 상상도 안된다"라는 말은 왜 나오나? 잊고 있던 이 고민을 내게 다시 던져 준 인물은 그레타 거윅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질문이 쓸모 없는 것이 되게만들었다. 뮤즈와 창작자의 경계 자체를 지워버리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뛰어난 예술가로서.



처음 그레타 거윅의 이름을 본 것은 <프란시스 하>였다. 한국의 관객에게 가장 처음 그레타 거윅을 알린 영화였다. 이전의 영화들은 단역에 그쳤거나, 한국에 개봉하지 않았다. <프란시스 하>는 이후에 개봉한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와 더불어, 그녀가 노아 바움백 감독과 함께 한 영화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그녀만이 가진 배우로서의 색깔과 특성을 단박에 이해시켰다. 두 영화 모두 내가 몹시 사랑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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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그레타 거윅이 소개되던 방식은 흔히 이러했다.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가 한국 관객에게도 성공적인 반응을 얻은 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아 영>도 개봉을 했었는데, 이 세 영화는 함께 묶여서 "노아 바움백의 3부작 시리즈"로 홍보되고는 했다. 여기서 그레타 거윅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지만(과연? 팬들만 알지도 모른다) 앞의 두 영화는 그레타 거윅이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각본도 집필한 영화란 것이 당시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여러 홍보에서 그레타 거윅의 이름은 그녀가 단지 감독의 "뮤즈"(그레타 거윅은 이런 호칭을 싫어했다)인 것처럼, 페르소나일 뿐인 것처럼 사용되었다. 각본을 집필한 것을 몰랐더라도, 꽤 많은 이들의 인식에 작품을 위해 무언가 창조하는 일에는 그녀의 지분은 없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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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영화는 물론 이 외에 출연한 영화에서도 분명 제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캐릭터임에도, 그녀는 그레타 거윅으로 그 인물을 새로 만들었다. 프란시스(프란시스 하)든, 브룩(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이든, 매기(매기스 플랜)든 그레타 거윅은 그 인물이 되었고 그 인물들은 관객에게 그레타 거윅으로 남았다. 연기를 위해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매체로 인물을 창조하면서 재현해낸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두 영화를 비롯해 그녀의 영화를 몇 번이나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종종 그녀의 이름을 잊었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 당황했던 적이 여럿 있을 정도다. 헷갈릴만큼 흔한 이름도 아니고, 각각의 영화에서 그녀보다 더 돋보이는 인물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고 좋아했으면서 왜 자꾸 이름을 잊었을까? 웃긴 것은 그녀의 이름은 잊었어도 감독인 노아 바움벡의 이름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름에 대한 기억은 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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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의 20세기> 등과 같은 영화로 몇 번 더 우리를 찾아 온 후, 그레타 거윅은 새로운 위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밀었다. 아무도 가릴 수 없는 위치에 서서 연출자의 이름으로, 감독 그레타 거윅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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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 있느라 개봉하고도 한참 뒤에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동안 그녀가 출연하고 쓴 영화들이 모두 결국 이걸 내기까지의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더 많은 얘기를 터뜨릴 아주 또렷한 첫 총성을 울렸다고 느꼈다.


새크라멘토라는 그레타 거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 레이디 버드의 배경이다. 영화의 엔딩씬에서는 주인공 레이디버드가 자신의 엄마가 자동차를 타고 달렸던 동네를 운전면허증을 딴 뒤 처음으로 달리는 데, 엄마의 모습과 레이디버드의 모습이 번갈아 제시된다. 자신은 다르게 살 것이라며, 지겨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면서도 결국 엄마와 같은 길에서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영원한 사랑과 연결을 느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은 보편적인 딸들의 향수와 엄마를 향한 묵은 애증을 자극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소녀시절의 추억과 고민들이 이제서야 그녀에 의해서 영화가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레타 거윅의 이름을 까먹지도, 헷갈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레이디버드>를 본 이후 그러리라 확신한다. 당당히 그녀만의 이름이 홍보 문구에 내세워지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이 <레이디버드>를 선택하게끔 입지를 다져왔다. 그리고 <레이디 버드>를 본 후에 또 한 번 그녀의 이름만으로 영화를 각인시키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그레타 거윅이 차기작 <작은 아씨들>을 연출 중인데, 레이디 버드 역을 맡았던 시얼샤 로넌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거윅의 감성으로 해석된 <작은 아씨들>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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