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다양성 속에서, 캠든 마켓
유럽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기대되는 여행요소 중 하나는 마켓이다. 런던은 타유럽국가들보다 마켓문화가 크고 다양하게 유지되어 가볼 곳이 아주 많다. 콜롬비안 로드의 플라워 마켓같이 품목을 정하여 파는 마켓부터 4대마켓이라 불리는 포토벨로, 브릭레인, 캠든, 버로우 마켓까지. 이외에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작고 덜 유명할 뿐인 마켓들까지 합세하여, 정말 무수히 많은 마켓이 런던의 삶의 페달로 움직이고 있다.
2주의 일정을 가지고 런던에 갔던 차에 일단 내가 이름을 알아버린 마켓이라면, 모든 곳을 다 보리라는 계획이었다. 특히나 4대 마켓이라는 칭호까지 붙은 곳들에 대해서는 기대가 매우 컸다. 그리고 4곳 중 캠든마켓은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문화를 과감하게 모아 놓은 펑키한 시장이라고 들었다. 아주 많이 어렸을 적에 봤던 아만다 바인즈의 영화 <왓 어 걸 원츠>에서 콜린 퍼스와 아만다가 잠시 일탈을 즐겼던 그 시장같을까? 캠든마켓에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동상이 서있다는데, 혹시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굿즈를 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큰 기대를 안고 캠든 마켓으로 향했다.
사실 여행동안 나는 캠든 마켓을 두세번도 넘게 갔다. ㄱㅎ언니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기도 했고, 버스를 환승하는 김에 들리기도 했고. 하지만 처음 발을 디딘 날만큼 캠든에 대한 느낌과 기억이 선명히 남은 날은 없는 것같다. 처음 간 날은 캠든마켓에 가장 사람이 붐빌 때인 일요일이었다. 오전 중에 숙소를 세인트판크라스 yha로 옮기고 짐을 맡긴 뒤, 숙소에서 한 번에 환승없이 갈 수 있는 캠든마켓을 가기로 계획했다. 캠든마켓은 오픈 및 클로징 타임이 있기는 하나, 요일의 제약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인트판크로스에서 버스를 타고 캠든 로드를 향해가는 데, 이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런던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좀체 깔끔함과는 거리가 먼 간판들과 우중충한 날씨에 더불어 함께 어딘가 위협적이기까지 한 산만한 디스플레이, 하지만 본인들만의 흥이 왜인지 세련되어보이는 느낌도 주는 풍경이 캠든 마켓 앞에 펼쳐져있다.
일단은 맨 처음 내가 찾아다닌 것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동상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예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발표하는 시간에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 공간이 내가 생각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컬러와 참 닮았다고 느꼈다. 어둑하지만 컬러풀하고, 쌀쌀하지만 결코 냉정하지는 않다.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다 금방 동상에 도달했다.
혼잡한 와중에도 관광객들은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에이미를 한 번씩 사진으로 남기고 간다. 그 대열에 합류하여 꼼꼼히 동상을 살펴보았다. 실제의 에이미와 동일한 사이즈같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른다. 한껏 업된 헤어와 높은 펌프스, 미니드레스, 얼굴에는 입술 위 쪽의 점과 아이라인까지 에이미의 트레이드마크들이 표현되어있었다. 뭔가 고집스러우면서도 쓸쓸한 표정까지도. 손목에는 그녀를 기리는 팬들이 남긴 팔찌나 끈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그의 삶을 떠올리며 잠깐동안 기리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인증샷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난 다음, 배가 고파서 유명한 시리얼카페부터 찾았다. 바로 Cereal Killer Cafe였다. 동상 바로 뒤에 있기 때문에 찾으러 갈 것도 없었다. 가게 이름은 영어단어 Cereal과 Serial의 발음이 유사한 것을 유희삼아 만든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도 시리얼 카페는 많지만 가보지는 않았었다. 구글맵 평가도 뛰어난 이 곳은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인지 메뉴얼도(물론 영어) 잘 정리되어있고, 베스트 시리얼로 너무 달지 않게 추천도 잘 해주었다. 씨리얼을 주문하고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서빙도 해주는데, 누가 어떤 시리얼을 시킨 건지 옛날 비디오 테이프를 테이블 위에 놓아둠으로써 확인한다. 서구적 레트로 감성에 집중한 인테리어가 조금 낯설었지만 재미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현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다 먹긴 했는데 너무 달았던 기억이...
시리얼도 먹고 나서는, 그저 캠든 마켓 안을 뱅뱅 돌았다. 사람이 정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던 날이어서, 가방을 꽉 붙잡고 떠밀리듯 여기저기 다녀야했다. 지나다니면서 불교의 향이나 인도풍의 장난감들을 여러종류로 모아서 파는 곳도 만났고, 온통 검정색 옷만 취급하는 옷가게도 만났다. 곳곳에 희한한 컨셉을 한 가게가 있으니 몇 번이든 뱅뱅 맴돌면서 잘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흥정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후드티를 하나 만만한 것을 사고 싶었지만, 너무 특이하거나 너무 무난해서 결국 못샀다...
뭔가 하나 사올 법도 했지만, 여행 초기니까 다 짐이라는 생각에 구경만 재미나게 하고 왔다. 대신 기념품은 뱃속에...!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민족의 음식을 파는 캠든에서 뭔가 새로운 걸 먹어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구글평점이 높은 식당들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 들어가기 조금 민망스러운 곳이고.. 굳이 식당을 들어가지 않아도 먹을 것을 파는 부스가 온천지에 있어 먹을 수 있지만,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어디든 들어가야 되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왠지 터키음식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메뉴판에 케밥만 보고 터키음식을 하는 곳이었던 줄 알았는데,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하네.. 내가 먹은 요리도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했다. 완전 중동요리의 향이 그득했는데...도대체 이게 뭔지 싶어서 메뉴판도 찍어왔는데 까먹었다. 맛있었긴 한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었다. 기억나는 건 진저비어가 너무 너무 맛있었다는 것! 한국에서도 마시고 싶다..
시장이니까 좀 싸게 해먹으려했던 계획과는 달리 좀 비싼 점심식사를 하고 한번 더 캠든마켓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국적인 향취가 진동을 하면서도 관광객과 현지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이라니. 이전의 런던과는 또다르게 시끌벅적했다.
캠든에서만 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꺼내고 방으로 올라가니 한국분들이 꽤 계시는 듯했다. 씻고 1층에 있는 바로 내려가 내일 일정도 생각해보고 쉬었다. 이때 내일 파리로 떠나시는 언니 한 분을 만났다. 언니도 대구 사람이여서 서로 반가워하다가 맥주도 사주셨다. 결혼 전에 하시던 일을 정리하고 온 분이었다. 유쾌하고 밝은 분이어서 즐거웠던 기억만 있다. 남은 잔돈이 필요가 없어졌다며 나한테 다 털어주시기까지.. 이날 숙소 코인락커에 실수를 해서 2파운드를 더 썼다는 것에 조금 찝찝해하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다이어리를 보니 작은것에 연연해하지말자고 되어있네. 정말 맞는 말! 결국 다 돌고 도는 것인데 당장의 작은 흠을 마음에 둘 필요가 없었다. 춥고 조금 힘들었을지라도 언제나 하루의 마무리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