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금정, 낙산사, 사람들
속초에서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 겪을 수 있었던 일이 있다. 커피를 한 잔 한 후 영금정으로 걸어가는 길이 너무 추웠다. 날씨 앱에 기온이 낮지 않길래 코트 하나만 챙겨 속초로 왔는데 바람이 너무 찼다. 그래서 머플러라도 하나 싼 거 사서 두르고 다니자 싶어 시내를 뒤져 보았다. 한 보세 가게를 들어가서 문의를 했다. 벌써 봄 옷으로 가득 채워진 가게였다. 근데 어찌나 머플러를 치운 걸 사장님이 안타까워하시던지... 그걸 본 동네 주민분이 다른 옷가게를 소개해주시겠다며 나서셨다. 나도 지나쳐온 곳이라 어딘지 알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도 가게 안까지 손을 붙잡고 데려다주셨다. 가는 길에 짧은 구간이지만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걸 무단횡단하시면서 "여기는 촌이라서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유쾌히 말씀하시는 모습이 엄마 친구랑 함께 있는 느낌이 들었다. 데려다주신 것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 가게 사장님께도 잘 부탁한다고,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아닌가! 난 싼 머플러 하나 대충 사러 왔을 뿐인데 너무 큰 대접을 받았다. 가게 사장님도 어떻게 속초를 여행왔냐시며, 멋있다고 말씀하셔서 졸지에 나도 친절하고 넉살 좋은 아가씨 손님처럼 굴어버렸다.
뚜벅이로 여행하면서 좋은 것은 차로 이동하면 지나치기 쉬운 것을 캐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마주 보고 대로변 건너에 사진관이 있었다. 출발 전날 밤에 필름 카메라를 써보고 싶어 동서울 터미널에서 팔진 않는지 검색했지만 못 찾았었는데... 떡하니 속초 길바닥에서 눈에 띄어주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요즘 서울에서는(어쩌면 그냥 번화가에서는?) 찾기 힘든 동네 사진관의 사장님은 두 종류의 일회용 카메라를 소개해주셨다. 더 싼 걸로 하라며, 우리 손자도 그걸로 잘 나오더라며 추천하셨다. 추천하신대로 샀다. 낯선 억양이 섞인 말투로 다른 손님과 사장님은 선금에 대해 잠시 투닥거리다가도 금방 두 사람 다 웃으며 헤어진다. 현금으로 계산을 마친 후 당찬 손짓과 목소리로 야무진(?) 사용설명도 해주셨다.
나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어릴 때 익히 봐왔다. 내 외갓집이 시장 골목에서 옷 수선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갈 시간이 없으니 잊혔지만, 시장 사람들의 성질과 흥은 나에게 아주 친숙한 것이다. 잠깐이었지만 사장 아주머니의 생활을 위한 억척스러움 그리고 자기 물건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에서 오래된 안정을 느꼈다. 끝까지 또 와 이쁜아~라는 말로 확실한 뒤처리까지! 이런 시장 사람 특유의 프로페셔널함을 언제나 존경한다.
이튿날 째질 것 같은 허리와 다리에 숙소를 하루 더 연장했다. 하루 안에 낙산사도 가고 서울도 다시 가려니 생각부터 버거워서였다. 서울에 급한 일도 없고. 그날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러 일찍 일어나 걸어갔으나 구름이 너무 많아 실패.. 해돋이 보려는 마음먹는 게 쉬운 일도 아니건만! 영금정에 서서 바위에 호랑이 같은 파도가 덮치고 부서지는 것을 쳐다보다 내려왔다. 한 개 1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의 어묵으로 아침을 채웠다.
서울에는 눈이 내려 도로가 복잡해진 날, 속초는 오후가 되자 쾌청해 맑았다. 더 늘어난 속초에서의 시간을 두고 낙산사가 마음에서 숙제로 여겨지기 전에 후딱 버스를 타버려야겠다고 생각해 출발했다.
뚜벅이 여행자도 양양에 위치한 낙산사를 속초에서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버스 하나만 시내나 버스터미널에서 하나 잡아 타고 앉아만 있으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낙산사 입구가 있는 곳 '낙산'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속초의 시내버스는 특이한 것이 탈 때 어디까지 가는지 기사님께 얘기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내면 시내, 양양이면 양양. 대답에 따라 기사는 요금을 책정한다. 그러고 나서 카드를 찍으면 된다. 몰랐다가 앞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금방 배워 여기 사람처럼 뻔뻔히 대답하며 버스에 올랐다.
오르는 사람은 나와 한 가족뿐인 길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멋진 이름이다. 너무 많은 것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걸었지만.)을 따라 원통보전으로 갔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불교 신자시고 엄마를 따라 팔공산 동화사도 어릴 적에 꽤 많이 가봤지만 절에서 하는 절은 잘 모른다. 그런 내가 혼자 절에 갔어도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건물 겉 태만 구경하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닫혀 있는 유리 미닫이 문 바깥에서 안에 있는 불상을 쳐다보고 있을 때 옆에 주위를 청소하고 계시던 보살님이 기꺼이 나를 들여 주셨다. 절을 할 줄 모른다는 내 말에 괜찮다며 바깥에서 겉만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며. 올해 낙산사에서 발행한 책도 한 권 나가면서 가져가시라 해주셨다. 덕분에 따뜻한 곳에서 훨씬 가까이에 안을 둘러봤다. 불상과도 눈을 오래 마주쳤다.
나갈 때 건네주신 책은 낙산사의 역사, 건물 설명, 화재 후 재건 과정에 대해 높은 해상도의 낙산사 사진들과 함께 설명했다. 이 책만 있으면 사진 열심히 안 찍어도 되겠다는 딱 철없는 내 수준의 생각을 하며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해수관음상으로 갔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는 보살님들이 달력이나 촛불 등을 파신다. 여기에 떡 한 바가지를 갖다 놓으시고 지나가면서 하나씩 집어 먹게 해 주시는데 그날은 시루떡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떡이라 반가운 마음에 먹었는데 맛도 있어 하나 더 먹고 싶었다. 홍련암에 가서는 바다를 좀 쳐다보고 소원을 빌 수 있는 두꺼비를 쓰다 듬고 왔다. 한 겨울인데도 구경 온 사람이 꽤 있었다. 멀리서 사람이 없는 홍련암을 찍기 위해 한참 섰지만 될 리가 없었다. 유명한 절에 나 하나 좋은 사진 건지겠다고 사람이 안 오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지 하고 돌아섰다. 좀.. 춥기도 했고.
서기 671년에 지어진 후로 2005년에 큰 불에 낙산사는 많이도 다쳤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이뤄진 재건은 많은 시민들과 정부의 관심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제는 나라에서 손꼽힐 만큼 높은 완성도의 복원불사로 평가받는다. 구석구석이 아름다운 곳이다. 절의 모든 것이 아담하다는 인상을 주는 데 반해 그것들을 품는 하늘과 바다는 대범하면서도 포근하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차 없이 여행하더라도 한 번쯤 가보면 좋을 곳이다. 산길이지만 높지 않아 신발도 뾰족 혹은 딱딱 구두만 아니면 갈 만하다.
다시 속초로 돌아와서는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원래는 전통령인가? 김소영 오상진 아나운서 부부도 간 전복뚝배기를 먹고자 했지만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더 찾자니 기력이 없어 바로 오른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뚝배기가 아닌 모둠 생선 구이를 먹었는데 혼자 먹기에 양도 많고 맛있었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생선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밥을 한창 먹고 있을 때 시청에서 온 공무원이 들어와 직원을 쓰는지 묻고는 금방 나갔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의 대화에 따르면, 얼마 전 취업 비자 없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도망을 치다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나 보다. 전날 수산시장에서 서툰 말투로 해산물 튀김을 팔던 여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 곳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찾아오는구나. 이렇게 멀고 구석진 곳까지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했던 그녀의 사정과 냉혹할 뿐인 현실이 안타까웠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방송에서 꽤 비쳐서 그런가? 속초 사람들의 말투는 분명 낯선 것이지만 익숙하기도 해서 높낮이를 곱씹는 맛이 있었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데 아저씨의 한 마디가 생선 뼈와 씨름하는 내 귀에 콕 박혔다. "그런 건 신세가 아니지요." 낯선 단어 하나 없는 평범한 인사말. 그러나 괜히 정드는 음의 결이 있다. 나도 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저렇게 대답해야지,라고 생각하며 깊이 새겼다.
<속초에서의 겨울>에서 화자는 속초의 겨울이 여름휴가철과는 달리, 모든 것이 얼어 있고 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곳이라 표현했다. 정체와 기다림의 항구.
이에 나는 공감하기 어렵다. 물론 내가 걸었던 속초의 겨울은 몹시 조용했다. 어디든 찬 바람이 속속들이 사람들의 옷가지 안으로 파고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그렇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항구는 눈과 바람이 휘날리는 대기 속에서도 차분하게 일상을 영위했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시장 사람들의 목청도, 오후 늦게 찾아온 손님 한 사람도 소홀히 하지 않고 주인이 소담히 끓여 낸 된장찌개도, 따뜻하게 챙겨 입고 엄마와 동화책을 고르는 아이도 봄을 가만히 버림받은 것 마냥 기다린 적이 없다. 달력이 넘어간다고 바뀌는 것은 결국 외부적인 것이다. 날씨와 철을 맞아 한 판 크게 들쑤셔 놓고 떠나버리는 외지 사람들. 진짜 속초를 가진 항구와 사람들은 바뀔 것이 없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던 여름을 잠시 멀리 하는 동안, 다시 돌아올 치열한 계절을 대비하는 내공을 다진다. 다른 계절의 속초에 가 볼 날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