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의 겨울 (1) - 속초의 서점들

문우당 서림, 동아 서점, 완벽한 날들

by 카밀라

기숙사 방을 나선 후 엘리베이터와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이 때문에 괜스레 조마조마했건만 예상보다 30분은 더 빨리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물 한 병을 사고 속초를 가는 버스가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확인하러 밖으로 나갔다. 출발까지는 20여분이 남은지라 버스 문은 닫혀있었다. 할머니 한분이 아직 버스 문이 열리려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버스 앞 스톨에 앉아계셨다. 바람도 많이 불고 추운데 왜 바깥에 앉아계시나 했더니 바람이 불지 않는 따뜻한 대합실에는 앉을 만한 의자가 없어서였다. 터미널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울렁거리는 몇십 분을 참고 휴게소도 한 번 들리고서 두 시간 만에 작은 눈발이 날리는 속초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 버스가 속초 안으로 들어왔는데, 솔솔 설탕가루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방해되지 않고 가볍게 사뿐히 앉아 금세 사라지는 눈송이였다. 그전날 대설 주의보가 있어서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이 정도로 말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눈발을 보니 괜히 겨울 강원도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시외버스터미널과 거리가 있다고 말하기도 우스울 정도로 코앞인 이번 숙소는 독립서점과 게스트하우스가 합쳐진 <완벽한 날들>이다. 1층 북카페에 친절한 스태프분께 옷가지가 담긴 짐가방을 맡겨놓고 가볍게 출발했다.


계획은 문우당 서림과 동아까지 걸어가는 것이었지만, 눈도 오고 바람도 같은 기온일 때 서울의 것보다 훨씬 더 살을 에이는 것 같았다. 멀지 않은 바다가 바람을 차게 했던 것이다. 걸어야 했던 방향도 틀려 시외버스터미널로 도로 돌아오게 된 김에 버스를 타고 서점까지 이동했다.


속초 농협 정류장에 내려서 서점 가는 길에 만난 무려 세 마리 강아지들


책과 사람의 공간, 문우당서림


문우당 뒤쪽 길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동아서점

속초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인터넷에서 누군가 여름휴가를 속초에서 보내고 올린 낙산사 사진 때문이었다. 바다를 면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강렬한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쾌적하게 반짝이는 절의 모습이 여행 입맛을 돋웠다. 개강을 하고 열심히 챙겨봤던 알쓸신잡 3에 나온 김영하 작가의 속초 서점 나들이가 다시 한번 내가 속초에 꼭 가야 한다는 다짐을 내 안에 못 박게 했다. 특히 김진애 박사가 작가로부터 선물 받은 <속초에서의 겨울>을 나도 속초에서 사서 속초에서 읽고 오고 싶었다. 두고두고 몇 달을 벼르고 벼르던 일을 드디어 맞닥뜨릴 수 있는 날이었다.


두 서점 모두 오래도록 지역에서 자라난 서점인지라 규모도 크고 도서 큐레이팅도 정말 좋았다. 아동 서적부터 수험서, 외국어 서적, 여행, 별별 종류의 잡지들이 다 마련되어 있다. 두 서점 모두 공간 인테리어도 좋았는데, 문우당은 함께 온 사람들이, 동아서점은 혼자나 아이가 있기 좋은 분위기라고 느꼈다.


항상 광화문이나 학교 안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사겠다고 미리 계획한 책을 바로 드림으로 최대한 할인된 가격에 사는 것만이 내 책 구매방식이다. 그런데 아무 계획 없이 서점에 와 느긋이 책을 고르는 여행이라니. 이것만 해도 만족도는 100인 여행이었다. 온갖 잡지도 슬금슬금 펼쳐보고 판대 위에 올려진 책들의 표지와 서점 측의 추천 문구도 구경했다. 느리게 둘러보고 고르는 일이 이제껏 해오던 방식과는 질적으로 아주 다른 북 쇼핑이었다. 문우당 서림에서는 프리즘 오브 영화잡지 <아가씨> 편을, 동아서점에서는 <속초에서의 겨울>(드디어!), <북한 여행 회화>를 샀다.


프리즘 오브 잡지는 처음 보는 잡지였다. <아가씨> 외에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인생>, <캐럴>, <HER> 등 내가 재밌게 본 영화들을 한 호에 한 영화씩 다루는 잡지였다. 한 권만 사려고 했기 때문에 무얼 고를지 한참 고민했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를 둔 작가가 쓴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과 같이 두 국적의 부모를 두었는데 속초에서 나고 자란 여성 그리고 속초를 방문한 프랑스인 남성 작가, 두 인물을 통해 작가로서의 성찰을 표현한 소설이다. 속초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속초의 명물이나 유명 관광장소, 속초의 겨울을 작가의 감성대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 여행 회화>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온다 프레스'라는 강원도 태생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다. 북한을 자유로이 여행할 언젠가를 상상하며 미리 익혀 놓을 수 있는 여행 회화를 재밌는 상황을 통해 다루는 책이다. 지난여름 유럽여행을 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남한의 관계 개선에 관심을 가져줬었다. 그중 로빈의 성당에서 만난 한 독일 할아버지는 내 나이라면 충분히 머지않아 북한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책을 보자마자 그 기억이 어렴풋이 마음에 남아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강 전에 다 읽어야지.


문우당 종이봉투와 예쁘고 유용한 스티커들

문우당에서는 예쁜 종이가방에 스티커도 많이 챙겨주셨고, 동아서점에선 <속초에서의 겨울>을 포장을 부탁드렸더니 이렇게 깔끔하게 해 주셨다.


동아서점 근처의 카페 <커피벨트>에서. 관광지화된 카페가 아닌 조용하고 편안한 카페에서 서점에서 산 책을 읽고 싶은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카페다. 커피도 맛있다.



내가 머문 숙소이자 위 두 서점과 비교하면 아주 신생 독립서점인 <완벽한 날들>. 숙소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나는 여성전용으로 운영되는 6인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가정집이었던 2층을 스테이로 바꾼 곳이다.

창문에 붙여진 글귀. 서점 이름의 모티브가 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중


테라스도 있고(봄여름 가을에 가면 좋을 듯) 화장실 두 개를 6인 도미토리와 1인실이 함께 쓰는 격이라 붐빌 일이 적다. 다 합해서 3방, 총 9인이 묵는 곳이어서 시끄럽지 않을 텐데 분위기 자체가 서로 배려해 조용히 각자의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 더 편히 머물 수 있었다. 침대마다 전기매트가 있어 따뜻하게 잘 수 있었고 바닥도 깨끗했다.


공용부엌.
1층 카페에서 코코아를 받고 숙소로 올라와 마셨다.


숙소 자체에 책도 몇 권 마련되어 있지만 바로 아래 서점도 둘러보기 좋은 곳이어서 새 책을 사고 여행 동안 읽는 걸 목표로 해도 좋을 듯하다.


서점에서는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2박 3일 동안 코코아, 바닐라라테, 허브티를 마셨고 모두 만족했다. 시외버스 표를 끊고 한두 시간 정도 붕떴다면 여기서 차를 마시고 책 한 권을 사읽으면서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체크아웃 티로 사장님이 주신 허브티.


난 이미 책은 3권을 샀고 더 손이 무거워지는 건 곤란했던 참이라 완벽한 날들에서 책을 사진 않았다. 대신 원고지가 그려진 메모지와 동해바다를 표현한 독특한 달력 포스터를 샀다.


완벽한 날들은 내가 느끼기엔 세 서점 중 가장 예쁜 굿즈를 파는 곳이었다. 다른 문구 스튜디오에서 들여온 것도 눈길을 끌지만, 완벽한 날들 로고가 하나하나 다 들어간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들이 문구 성애자들을 욕심나게 만들 것이다. 문구 같은 데 일절 돈 쓸 줄 모르는 나도 모르는 나도 손이 가버렸으니 말이다. 달력 포스터는 새 학기 1년 동안 쭉 지낼 내 새 기숙사 방에 붙여놓을 참이다.


속초 서점 투어는 이제 여행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로 자리매김하리라 생각될 만큼 충분히 감성적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