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을 걷는 준비.
여행에 대한 갈망은 늘 많았지만 20대 때는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갈 수 있진 않았다
핑계가 많았다.. 돈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없거나 용기가 없어서.
그러다 30대가 훌쩍 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갈망하게 되는 어떤 시도는 늘 여행이 되는 거 같았다
지난해 말 빠이 여행을 갔다 온 지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회사 계약이 만료되었고, 그간 메여있던 여러 가지 일들에 손과 마음을 놓게 되자 또 다시 여행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저마다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니 나에게만 특별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로 인해 깊이 상한 마음으로 마음속에 늘 물이 가득 고여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여행으로 나를 찾는다던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순례자의 길에 종교적인 목적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여행지를 꿈꾸게 되듯이.. 끝없이 펼쳐진 밀밭 가운데 놓여있는 길 사진이 몇 개월 동안 항공권 사이트를 갈팡질팡하며 길을 걷는 나를 꿈꾸게 하였다.
걷다 보면 나를 슬프게 만드는 많은 일들에 좀 더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다 결국 비행기표를 샀다. 회사를 그만뒀지만 시간을 온전히 다 쓸 순 없는 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끌어모아 허락된 시간이 24일. 왔다 갔다 비행기 시간과 차 시간을 빼면 순례자의 길만을 걷는 데는 20일이 주어졌다. 순례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보통 프랑스길을 제일 많이 가고,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걷는데 34일 정도 걸린다. 완전히 다 걸을 수 있는 타이밍까지 기다려볼까 싶기도 했지만, 나에겐 완주의 의미보다 무작정 걷는다는 것에 의미가 더 컸기에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걷자 생각하고 일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뒤로 미루다 가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갈 수 있을 때 어떻게든 해보자는..
반은 설레었고 반은 두려웠다. 영어를 못해서 두려웠고, 체력적으로 버티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소심하고 새로운 곳에 나가면 더욱 어리버리 해지는 내 성격도 문제였다. 영어도 몸 상태도 단시간에 준비한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었지만 떠나기 2주 전부터 매일 6~8km 정도는 걷는 연습을 했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인터넷 서칭을 많이 했다. 매일 하루 20~30km를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데 상상이 잘 안됐다. 안 해봤으니까.
상상 속에서는 기대되면서도 어느새 떠날 날짜가 다가올수록 여러 가지 준비와 두려움에 피곤함이 밀려오곤 했고, 그냥 무난하게 패키지여행을 갈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두려움과 다소 피곤한 준비들을 마치고 결국 떠났고 아주 무사하고 감사하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용기가 가장 필요했다.
사실 무작정 떠난 것은 마음뿐이고, 사전에 준비할게 많았다. 난 물건 하나를 사도 엄청 고민을 하는 편인데, 트래킹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어서 사야 할 게 많았다. 또 여름이라 여름용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고심해야 했다. 최대한 가방 무게를 줄여서 준비해야 하기에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을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준비가 부족하면 거기 가서 사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왠지 다 싸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갈 곳은 까미노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 증폭.
막상 사진을 보니 짐이 적다. 여름이니까 부피는 크지않았다. 이 중에도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었다. 배낭은 자기 몸무게에 십 분의 일정도로 준비하라고 하는데.. 배낭 무게 자체가 나에겐 무거웠다.. 조금 초과했을까..몸에 잘 맞고 길들여진 배낭과 등산화가 제일 중요했던 거 같다. 등산스틱과 모자도 굉장히 유용했고,
뜨거운 햇빛을 차단해 주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질 때 입을 수 있는 바람 잘 통하는 긴팔 긴바지도 필요했다. 발에 물집이 잡히거나 무릎, 발목이 붓는 경우가 다반사니 대비할 파스나 약품, 보호대 같은 것도 중요하다. 모기와 베드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퇴치제와 스포츠 타월, 여름용 침낭 등도 챙기는 것이 좋다. 대부분 거기 가서도 구입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잘 알아두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순례길에 들어서고 나오기까지의 여정이었다.
프랑스길(총 800km)을 시작하려면 프랑스 남부 생장으로 가야 한다. 보통 파리로 들어가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생장까지 이동하는데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어디서 뭘 타야 하는지 가는 법을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고민해도 되지 않을 부분인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싸고 낭비되지 않는 일정을 위해 검색을 자주해야 했다. 파리 왕복 항공 티켓, 파리에서 바욘 가는 열차 예매 (몽파르나스역), 돌아오는 유럽 내 비행기표 예매(마드리드-파리)등 을 준비해야 했다. 걷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막상 걸어야 하는 순례길 구간들에 대한 정보와 마을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그날 다음날의 일정과 마을과 숙소를 고민하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일단 까미노에 들어서면 그 후부턴 무작정 걸으면 되는 거다.라는 마음이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는 생장에서부터 레온까지 걸었다. 총 450km 정도 되는 거리다. 레온부터 산티아고까지 남은길은 언제 걸을 수 있을까 싶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언젠가 분명 또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녀왔던 기억을 더듬으며 소심하고 어설펐던 여행기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