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 Saint-Jean-Pied-De-Port에 도착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는 많이 들어봤어도 까미노란 단어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법을 준비하면서야 알았다. 버킷리스트, 터닝포인트 등으로 떠오르는 곳.. 내 주변엔 이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지금 걷기엔 아마도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쉽게 마음먹을 만한 곳도 아니기 때문이어서일까..
이 곳에 갔다 왔다고 하면 주변 반응은 두 가지였다. 너무 좋겠다고 부러워하거나 어떻게 혼자갔다왔냐고 대견해하거나.. 마냥 부러워하기엔 만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행길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걸을만했다.. 고 할 수 있겠다. 주변의 반응에 으쓱해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온전히 여행길 자체가 참 좋았기 때문에.. 힘들면서도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괜히 버킷리스트가 되는게 아니구나..
나는 사실 부끄럽지만.. 유럽여행이 처음이었다(내 나이 35).. 파리도 처음 가보는 지라 엄청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일정이 너무 촉박하여 도착 당일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멀찍이 에펠탑 야경을 바라본 것으로 일단 파리 여행의 욕구를 잠재웠다. 에펠탑 봤으면 됐지 뭐.. 애써 위로하며.. 일단은 산티아고 길이 우선순위니까..
파리 몽파르나스역 부근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TGV를 타고 바욘까지 4시간 이동했다. 비행기, 버스 등으로도 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욘에서 기차를 한번 더 갈아타고 한 시간 정도 생장으로 가야 했다. 생장은 프랑스 길의 출발지다. 때제베 타고 가는 네 시간.. 두근거림과 약간의 불안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긴 시간 멍을 때리고 있었다. 4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나는 허공을 떠도는 잡생각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다. 내 삶이 잉여가 되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열차표를 사러 매표소에 가니 오른쪽에 버스가 있다고 타는 데로 가라고 해서 영문도 모르는 채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알고 보니 파업 때문에 버스로 사람들을 이동시켜주는 것이었다. 본래 기차 갈아타는 시간이 몇 시간 떠서 바욘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좀 아쉬웠다. 하지만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생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파업이 잦은 듯 했다.
버스에서는 계속 창 밖의 풍경을 두리번거리며 들뜬 마음을 다스렸다. 무척 화창한 날씨로 프랑스의 동화 같은 마을들을 지나가는 동안 한 시간이 한 시간인 줄 못 느끼게 이런저런 심경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 같은 것이 일었다. 너무도 순적하게 여기까지 왔구나 싶으면서도 아 내가 진짜 여기에 왔구나.. 얼떨떨하여서 현실인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버스가 생장 기차역 앞에 내려줘서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머뭇거리던 참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 두 명을 만났다. 두 명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알게 된 모양인데, 같이 마을 중심으로 이동하자고 해서.. 고맙게도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먼저 할 일은 순례자의 여권을 발급받는 것이다.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었겠지만 첫 스타트에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한국인 동반자들이 생겨서 안심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함께 다니고자 하면 함께 다닐 수 있고, 홀로 걷겠다고 생각하면 홀로 걸을 수도 있는 여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부담이 되지 않는 관계들이었다. 나는 사교적이지 않은 편이고. 여기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좀 더 어렸다면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거나 새로운 관계들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여러 관계들에 지쳐있었고 홀로 여러 생각들을 떨구고자 온 것이기에 혼자 다녀도 괜찮았다.
그러나 까미노 길의 사람들은 열려있고, 따뜻했던 거 같다. 그래서 집에 돌아올 때쯤엔 그저 인사뿐이었어도 종종 마주쳤던 그 사람들과의 만남마저도 무척 아쉽게 느껴졌었다. 순례길을 더욱 마음에 간직하고 싶다면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짧은 우정이라도 깊이 누리고 오라고 전해주고 싶다.
여기에 오면 일단 순례자의 여권이라 불리는 크레덴셜을 발급받으러 사무실에 가야 한다. 순례길을 다니는 동안 묵게되는 알베르게 숙소 혹은 Bar에서 세요(도장)을 받게 된다. 거쳐 온 마을들의 지도를 표시하는 것처럼.. 도장으로 순례자임을 증명한다. 순례자의 증서는 산티아고에서 주는데 100km만 걸어도 받을 수 있다.
생장은 번화한 관광 도시였다. 일반 관광객도 많은 것 같고, 순례자들도 많고.. 슬슬 조개껍데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 사무실에서 2유로에 여권을 발급을 받고. 조개껍데기 하나를 기부금으로 내고 하나 받았다. 여정 동안 가방에 메고 다니는 게 관례인듯한데 여기에 소원을 적어 산티아고에 가서 걸어두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순례자 사무실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니 첫 알베르게로 묵을 55번 알베르게가 있었다. 2층 침대가 놓여있는 사진으로만 보던 알베르게 생활을 드디어 체험하게 된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같이 숙소를 쓴 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공용화장실, 샤워실을 쓰는 것도 그다지 불편함은 없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숙연한 느낌으로 스타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베에 짐을 풀고 생장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다. 생장은 굉장히 활기찬 곳이었다. 곳곳에 기념물품 샵이 있었고, 여기저기 둘러볼 곳도 있었다. 여기서 등산스틱을 10유로에 하나 구매했다. 등산 스틱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는데. 나의 경우 무거운 가방과 몸을 지탱해주기에 필수품이 었던 거 같다.
J와 J (버스에 내려서 만난 한국인 두 친구)는 사려 깊고 착실한 친구들이었다. 나보다 여덟 살 정도 어린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었는데, 서로의 시간이 달라 오래 함께 지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함께 출발 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는 각자 알아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메뉴 주문하기를 어려워하며 어설프게 저녁을 함께 먹고, 근처 까르푸(마트)에서 장도 보고, 다음날을 준비하며 하루를 잘 보내었다.
첫날은 제일 힘든 코스라고 불리는 피레네 산맥.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