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Day 1 생장-론세스바예스 27km

by ㅇㅁ

시차적응이 안되서인지 새벽 세네시부터 깨서 좀처럼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다섯 시가 되서부터 슬슬 준비하려는데, 아직 다들 고요하게 자고 있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코 고는 사람도 없었다. 침낭을 접는 사부작 거리는 소리나 가방 지퍼를 여닫는 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서 부엌 쪽으로 들고 나와서 짐을 챙기고, 어제 저녁 마트에서 사 온 바나나와 토마토를 먹으면서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6시쯤 돼서야 숙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출발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직 밖은 어두웠지만, 오늘은 긴 여정이 될 것 같아서 나와 한국인 두 친구는 제일 먼저 출발했다. 오늘이 가장 힘든 코스라는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피레네 산맥이 어떤 곳일지 설레기도 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길로 향하였다. 다행히 비가 오는 날씨는 아니었다. 피레네 산맥은 비 오거나 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한다고 해서 혹시나 그런일이 생길까 걱정했었는데 출발 무렵 맑은 날씨였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올랐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초록 초록한 산 길 위를 오르는 동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했다. 걷다가 독일인 부부가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한다. 여기선 오며 가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한다.


글을 쓰면서 그때의 사진과 기억들을 돌아보니 유독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래도 첫날이어서 일까.. 아침 공기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고요하게 아침이 열리는 산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담아가고 싶지만 사진으로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첫날부터 지금 순간이 벌써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두 친구들과 출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린 출발은 같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같이 여행을 하자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함께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20대 청년들이라 확실히 나보다 걸음이 빨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점점 나는 뒤로 처졌다. 어차피 오늘 도착하는 론세스바예스는 숙소가 한 곳뿐이어서 먼저 가더라도 거기서 다 만날 터였다.


출발해서 8km 정도 걸으면 오리손 산장이 있다. 론세스바예스 전에 유일한 알베르게다. 하루에 27km를 다 걷기 벅찬 사람들은 오리손 산장에서 묵기도 하는데 산 중턱에 있어서 밤에 별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침대가 많지 않아서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좋다. 오리손까지가 진짜 힘든 구간이었다. 유독 가파른 구간을 겨우겨우 올랐다. 가방도 무겁게 느껴지고, 해도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해서 땀에 흠뻑 적셔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나오는 거냐 아직도 멀은 건가 하는 생각을 수십 번씩.. 가방 무게가 어깨를 짓눌려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쉬기도 하다가.. 다시 걷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오리손을 지나친 건 아닌가 싶을 무렵 드디어 뿅 하고 산장이 나타났다. 알베르게 겸 바가 있고 사람들은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두 친구도 진작에 도착해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난 벌써 녹초가 되었다. 코카콜라 한 잔과 어제 마트에서 산 바게트 방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니 살만했다. 근데.. 아직 반도 안 온 상태였다.


그래도 휴식을 취한 이 후 길부터는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소 떼, 양 떼, 염소 떼 등을 보며 오르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보던 피레네 산맥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진 속의 풍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서울에서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산 사이를 지나는 것 같은 어떤 순간이 있었다. 바람과 구름 사이로 살짝 비치는 햇빛과 초록색만 느껴지는 어떤 순간.. 바람으로 흐르는 땀이 식혀지던 순간.. 팔을 벌리고 지금 순간만을 온전히 느끼고 싶던 어떤 지점이 있었다. 오로지 나와 산 밖에 없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는 왜 그 순간이 그렇게 좋았을까.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느낌이었던가.. 그동안 사람이 너무 지겨웠었던 거 같다..


그 지점을 지나니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너무 불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앞에 걸어가는 나시만 입은 외국인이 덜덜 떨며 걷는 게 안쓰러웠다. 양들 염소들도 바람에 견디기 힘든지 잔뜩 웅크리고 뭉쳐있었다. 바람의 구간이 어서 지나가길.. 후드 모자를 둘러쓰고 힘겹게 지나왔다. 제일 높은 지점을 지나 내려가기 시작하니 나아졌다. 조금씩 산의 느낌이 변해갔는데 국경을 지나가고 있나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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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둘레를 걷고 있나보다 생각되는 어떤 구간에서 우거진 숲길이 있었는데 앞에 열심히 걸어가는 무뚝뚝한 아저씨의 배낭을 보며 안심하며 걸을 수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반짝이는 햇빛이 일렁이며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소리와 숲이 바람과 함께 내는 소리만 들리던 순간이 참 좋았다.

그리곤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갔다. 걷다 걷다 걷다 보니.. 숲길은 점점 어두워지고 언제쯤 론세스바예스가 나오나.. 나올 때가 됐는데.. 하는 순간을 몇 번 지나고,, 오후 두 시 반이 넘는 시각에서야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였다. 알베르게의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커다란 요새 같았다. 이 곳 수용인원이 워낙 많아서 오늘 출발한 모두가 함께 있을 것 같았다. 시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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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내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비는 숙소에 도착해서 씻은 후 빨래를 말릴 무렵 세차게 쏟아졌다. 근데 맙소사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속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속옷 상의를 첫 숙소에 두고 왔다.. 달랑 두 개 가지고 와서 빨 것과 갈아입을 것 두 개만 있는데.. 하아.. 빨래까지 다 하고 나니 몸도 으슬으슬 춥고 무척 피곤하여 깊이 잠들었다. 8시가 지나서야 일어났다. 한국인 친구들은 이미 밥을 먹어버렸고, 모르는 외국인들 틈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알베르게에 체크인 하면서 저녁으로 순례자의 정식 메뉴도 10유로쯤에 미리 신청했었다. 제법 잘 나왔다.


테이블에 다 같이 둘러앉아 수프나 빠에야를 덜어서 먹는데 내 앞에 스페인, 아일랜드 사람이 마주 앉았고 자전거 투어를 하는 이탈리아 아저씨도 옆에 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긴장되었다. 미국인 가족 세명도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미국 홈 드라마에 나올법한 다정하고 유쾌한 가족이었다. 나는 알아듣기는 해도 스피킹은 예스, 노, 땡큐 정도가 전부인 편이라.. 말을 거는데 잘 대응을 못할까 봐 초조했다. 그래도 식사를 같이 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유해졌다. 유쾌한 미국인 아주머니가 내가 스무 살 정도로 보인다고 해서 실제 나이를 말하니 놀래했다. 아직 마음은 스무 살처럼 어릴지언정 실제론 결코 적지 않은 내 나이에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내 옆에 앉은 이탈리아 아저씨가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이 곳에 많이 오는지 궁금했었다고 한다. 그 질문은 순례길 동안 외국인들이 많이 물어봤던 거 같다. 그 아저씨 말에 의하면 어떤 유명한 작가가 여기를 걸어서 알려진 모양이라고 하던데 무척 유명한 스토리라고.. 아마 파울로 코엘료를 말하는 듯했다. 정말 다른 동양인들에 비해 한국인이 많이 오는 편이다. 문득 노스페이스 유행 이유가 한국에 산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분석한 외국인 유머 짤을 본 게 기억났다. 한국에 산이 많아서.. 이려나..


순례자의 정식에는 수프, 파스타, 빠에야, 와인, 치킨과 디저트가 코스로 나왔다. 처음엔 겁을 먹었지만 함께 만찬을 나누는 자리가 재밌었다. 나를 무시하지도 너무 신경 쓰지도 않는 게 좋았다. 난 한국에서도 모임에서는 굉장히 과묵한 편이다. 어쩐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눌림이 있다. 영어 때문에 외국인을 피하는 것은 핑계일지도..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운 일일지도..

그래도 늘 해외에 나오면 돌아가서 영어 공부해야지.. 하면서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실천이 잘 안 된다. 그리고 순례길은 좀 더 특별했던 것도 있었다. 말을 좀 더 잘 했더라면.. 더 깊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쿨하고 멋진 여행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홀로라도 다녀보겠다는 나의 용기는 가상하다고 해주고 싶다.. 외국인들도 배낭에 매달려 가는 듯 비실비실해 보이는 동양 여자아이 (아이는 아니지만 아이 로보이는)가 혼자서 열심히 다니는 게 신기했던 듯. 나에게 많이들 말을 걸어왔다. 그냥 가끔은 따뜻한 인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