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Day 19 만시야 - 레온 16km

by ㅇㅁ

나의 까미노 여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은 레온에 도착하는 날로 17km 정도 걸으면 되기 때문에 오전 중에 도착할 것 같았다. 천천히 쉬엄쉬엄 가야지 했는데도 일찍 눈이 떠지고 동이 트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출발하였다. 레온은 생장에서 450km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그 많은 길을 걸어왔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 체력과 속도가 붙어서 충분히 800km를 다 걸을 수 있을 텐데.. 이제 막이 내린다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나에게 허락된 여정은 여기까지 였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오게 될 거고, 다음 여정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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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터 오르는 하늘을 보며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긴 것 같았지만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이른 아침 도시를 지나 레온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도로와 붙어있는 길이 많아 조심해야 했다. 도로를 걷는 길이라고 해서 오늘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날이 맑고 쾌적해서인지 걷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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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과 들판을 지나 레온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쉼 없이 걸어서 레온에 도착해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약간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기타를 맨 할머니의 가방이 보인다. 시작할 때부터 종종 보였던 할머니셨는데, 비슷하게 도착하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할머니지만 복장은 나보다 더 멋쟁이셨다. 보헤미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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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언덕을 올라가니 저 너머로 도시가 보였다. 고지가 코앞에 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 길을 내려가는데 미와를 만났다. 어제 같은 방을 썼는데, 같이 출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만나다니. 오늘 함께 입성하게 되는 유일한 친구였다.

미와는 사실 생장에서 처음 출발할 때도 같은 알베르게를 썼던 친구였다. 그때는 눈인사만 하는 사이였지만, 이젠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미와는 삼 일 후엔 멕시코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스트로가까지만 걷는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쯤에 다시 돌아와서 남은 길을 걷는다고 했다. 뭔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나만 중도하차하는 게 아닌 꼭 다 걸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위로.


함께 걸어가는데 미와는 왜 이 길을 걷기로 했냐고 물어봤다. 나는 몇 번이고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하는 생각을 미리 해왔던 거 같지만 그냥 너무 걷고 싶었다고 답을 했다. 더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그게 그리 중요치도 않았다.

미와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오고 싶었다고 했다. 미와는 무척 털털하고 편안한 친구 같다. 서핑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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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으로 들어서는 길 성곽을 지나 사자상을 보니 레온이구나 싶었다. 계속 레온 성당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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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소도시들을 많이 거쳐왔는데, 나의 경우엔 레온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아직 상쾌한 아침의 느낌이 남아있는 시각에 도착해서 도시는 가을 아침처럼 상쾌했다. 거리에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다. 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은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꾸며진 거리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쾌적한 길을 따라 걸으니 성당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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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대성당과는 또 다른 느낌의 성당이었다. 내부도 좀 더 클래식하고 일관되고 정돈된 느낌이었던 레온 성당이 개인적으로 부르고스 성당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아직 예약한 숙소가 문을 열지 않아 이 앞에 카페에서 미와와 아침식사를 했다. 참 여유롭고,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이 거리에서 많은 순례자들을 다시 조우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도 반가웠다.

나는 여기서 마지막 여정이라고 하니 작별의 포옹을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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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미리 예약하였다. 레온은 알베르게도 많지만 일반 호스텔이나 도미토리 숙박 시설이 많아서 인터넷으로 마음에 드는 호스텔을 전날 미리 예약했다.

오늘 한국인 두 아주머니 분들도 이 곳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두 아주머니 분들은 나보다 하루 차이 정도 나는 거리로 벌어져서 부르고스 이 후로 한 번도 만나질 못했는데, 열심히 오셔서 따라잡으셨다.

그리고 레온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하신 모양이다. 나는 이분들과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두 분께 어설프지만 요리를 해드릴 참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록스타일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방에 문을 열어놓으니 창밖으로 아베마리아 아코디언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순례자를 벗어나 관광객 모드로 지낼 생각을 하니 나름의 설렘과 편안함이 밀려왔다. 아쉬움을 잊어버리고,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뭉그적 거리고 있으니 아주머니 두 분이 숙소에 도착하셨다. 우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실컷 떨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내 얼굴이 많이 밝아졌단다. 처음에 보았을 텐 어둡고 힘들어 보였는데, 지금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인다고..

이곳이 잘 맞나 보다고 하셨다. 까무잡잡하게 타긴 했지만. 건강해졌고, 피부도 좋아졌다. 피부가 굉장히 건조한 편인데, 공기가 좋은 곳에 있어서인지 물 때문인지 머릿결과 피부가 많이 좋아진 듯 했다.


오늘과 내일 마지막 여정을 외롭지 않게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