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 잘 있어요 또 올게요.
어제 레온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늘 밤늦게 마드리드로.. 마드리드에서 파리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여정은 좀 천천히 정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무계획으로 와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막상 서울에서 계획을 짤 때 돌아오는 버스 비행기까지 디테일하게 모두 예약을 해두었다. 어리버리한 나에겐 그게 더 좋을 것 같았기에..
오전에는 레온 관광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성당도 들리고, 시내 구경도 하였다. 레온은 신식과 구식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여서 다양한 분위기가 띄었다. 오늘은 점심때 아주머니들과 뷔페에 가기로 했다. 어제 나의 어설픈 요리를 잘 받아주시곤 한 턱 내시겠다고 하셔서 배부르게 점심을 함께했다. 참 감사했다. 밤에 떠날 때 늦은 시간인데도 배웅하러 나와주셨다. 혼자서 떠났다면 마음이 많이 허했을 텐데..
오기 전에 혹여 영화나 드라마틱한 청춘여행을 상상하곤 했는데.. 나름 많은 인연들을 만났지만 마지막엔 나는 한국인 아주머니분들과 고즈넉하게 삶을 나누는 여행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것도 좀 특별한 것 같았다.
오전에 레온 성당 내부 구경도 하고, 덕분에 점심에 맛있게 식사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는 여정도 야간 버스에 비행기 두 번에 파리도 잠시 구경하고 갈 예정이라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시에스타 시간에 공립 알베르게에서 씻고 한숨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들긴 힘들었고, 그곳에서 참새 친구를 다시 만났다. 참새 친구가 여러 의약품이 필요해서 남은 약이나 파스들을 건네줄 수 있었다. 아파서 며칠 레온에서 쉬었다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행운을 빌며..
또한 레온 시내를 오며 가다 세바스찬도 다시 만났다. 나에게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왜인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행운을 빌어 주었다. 세바스찬도 처음 봤을 땐 허여 멀 건한 얼굴이었는데 좀 변한 것 같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가 건강해 보였다.
레온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관광열차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며 레온에서의 시간들도 마무리 지었다. 여덟 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아직 초저녁처럼 밝다. 언어가 된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남겨진 것이 아쉽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깊이가 없어서 그것을 더 깊이 누리진 못했다.
내게 이 길을 걷는 것은.. 인연을 배제한 순전히 나 혼자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간을 충분히 그렇게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여행의 여정을 정리하는 글을 기록하면서 짧게나마 만났던 인연들에 그리움이 남아있음을 나도 모르게 깨달았다.
서울에서 사람들에 치였고 시달렸다고 생각하다 보니 순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길의 아름다움은 그 순간 충만하게 만끽했지만 그리움은 짧게 조우했던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다. 지나고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이 깊게 남는다는 것을..
언제 다시 돌아가 남은 길을 걷게 될지..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아니면 십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마무리 짓고 싶다. 그때는 누군가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누며
막상 그때가 되면 성격상 또 그렇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겐 늘 그런 이상이 있나 보다.
다녀올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그리고 여행기를 쓴다는 게 이렇게 지구력을 요하는 일인 줄 몰랐는데..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