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픽션에세이
7년 전, 제주맥주 합류하기 전.
나는 왜 일하는가? 를 고민하던 시절에 쓴 글. 오늘 직원들과 클하 출동을 앞두고 이 글이 다시 생각났다.
우리는 왜, 직장생활이 괴로울까
나 역시 생계형 노동자로 먹고사니즘과 마음의 괴로움 속에서 어찌해야할지몰라 방황했다.
우리는, 나는. 무엇이 견딜 수 없는 걸까?
분명 좋은 직장과 좋은 동료, 좋은 상사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말이다.
'직장생활'의 무엇이 나를, 우리를, 괴롭히는지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렇게 가상의 사직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픽션 에세이 '사직서'가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고, 그로부터 1년 6개월 뒤 제주맥주에 합류했다.
이 글들은 경영진/리더 타이틀을 만들어가는 권진주라는 사람의 나침반이 되기도 했다.
나랑 일하는 직원들이 나로 인해 괴롭고 행복하지 않다는 걸(ㅠㅠ엉엉) 알게 되고, 나 역시도 고통스러울 때- 예전에 써둔 이 단편소설같은 사직서들 덕택에 직원들이 괴롭워하는 지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사람들의 #사직서 를 모아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 인간제주맥주 라는 이상한 별명 덕에(ㅠㅠ) ‘걔 요즘 사직서 쓴다더라’ 는 이상한 소문 나고 경영에 영향 갈까봐- 꾸욱 참았다.
요즘 회사에 좋은 소식도 많고 편안한 시절이라(♥♥Yeah!!!!) 슬쩍 한 편 공개 #제주맥주사랑해
유언장 써보듯, 사직서 써보기.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가 명확해진다.
본 글은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임을 밝힙니다. 누군가에게는 픽션, 누군가에게는 논픽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29에서 39, 그리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긴 세월이라 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이 변했고, 파괴되었습니다. 작은 전쟁을 치른 것 같네요.
실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고, 늘 새로운 일을 꿈꾸고 있었으니까요. 작가, 감독, 바텐더, 자영업자 등. 그래서 출근길이 괴롭기도 했습니다. 음… 10년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2004년, 4월 16일. 출근한 지 10일째 되던 그 날입니다. 굉음을 내며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다 왈칵 울음을 쏟았거든요. 빽빽하게 들어선 지하철 안의 사람들. 칸칸마다 빼곡하게 겹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전 그 광경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곧,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해 졌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회의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안답니다. 회의는, ‘회’장님의 ‘의’중을 파악하는 자리죠. 회사원의 능력? 처음에는 업무 성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능’숙하게 세‘력’을 만드는 일이더군요. 참. 업무 성과가 중요할 때도 있죠. 임원의 ‘성’공을 보장하는 ‘과’업일 때. 다른 말로 얘기하자면, 저는 좀 더 유연해졌고, 사회에 익숙해졌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배운 셈이죠. 돈도 벌고, 경험도 쌓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는 생각도 간혹 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잃었습니다. 네. 잊은 게 아니라, 잃었습니다. 내 몸의 감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상실 상태.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와이프 앞에서 제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이 겁니다. “뭐라고?”,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 “왜 다른 이야기를 하니?” “그래서 결론이 뭐야” 회사의 언어에 지배 당한 거죠. 권력 있는 자 앞에서는 그에 준할 만한 경청을, 그렇지 않은 자 앞에서는 듣는 흉내를.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습관적으로 판단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겁니다. 이해하기 위해 듣지 않고, 판단하기 위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언어를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컴퓨터와 보고서의 언어에 편안함을 느낀 적 없으신 가요? 저는 이따금 그 논리적 아름다움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얼마나 단순, 명료한지. 전후, 상하 관계가 명확한 언어 구조에 매료되곤 한답니다.
네. 저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조직化된 가짜사람 입니다.
그래서 2014년 4월 16일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사람 언어, 다시 배우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