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 상 -
“우리 부모님 한번 만날 생각 있어?”
“없어.”
부모님이라는 단어에 뒷목이 곧게 선다.
우리의 연애는
각자의 가족과 얽히지 않는다는
약속 위에 서 있었다.
“궁금하신가 봐.
평생 혼자 지낼 것 같은 놈이 여자가 있다고 하니까.
그냥 밥이나 먹자는데,
싫다면 할 수 없고.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민수는 선을 넘었고,
나는 그 선 뒤로 물러섰다.
우린 둘 다 그 사실을 알았다.
주말마다 민수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은
잠을 푹 자고 싶어서였다.
평일엔 지쳐 잠이 왔지만,
주말에는 오히려 잠들기 힘들었다.
전남편과 아들이 근처에 살고,
남동생도 옆 단지에 있다.
그런데 집에 혼자 있으면
냉동창고에 들어온 것처럼 서늘했다.
그래서 6개월째
주말마다 내 집과 그의 집을 오갔다.
그래,
시작은 늘 밥이었다.
토요일인데도 톨게이트는 한산했다.
군산에서 1박 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편안히 지내기로 했다.
군산의 골목엔 바람이 지나간다.
골목을 몇 번 걸으면 내 생각도
정리되어 지나갈 것 같았다.
회사 일도,
민수와의 관계도
분리수거가 필요했다.
조용히 먹고 이야기하고 쉬기에
군산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호텔 체크인 전에 한일옥에 들렀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뭇국을 주문했다.
탕이 나오기 전,
밑반찬을 보며 흐뭇해하던 그때
누군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섰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이고, 이런 데서 너를 다 보는구나.
우린 바람 쐬러 왔지.”
어머니라니...
‘어머님’이라는 말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바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예의 바른 말투로 어른을 맞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합석을 하고,
겸상을 하고,
질문폭탄을 받는다.
그저 그런 질문들은
내 정수리를 피해 흩어졌지만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은
내 정수리로 떨어졌다.
“아니요.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공기가 급히 식었다.
자리는 금방 무너졌다.
예전에도 식탁에서 끝났던 기억이 올라왔다.
식탁 위에 아직 김이 오르고 있었다.
“이게 이혼할 일이야?”
“그럼 뭐가 이혼할 일이야?”
“우리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다른 집처럼 용돈을 달랬냐, 같이 살자 했냐!
가끔 들러서 밥 해 주시고,
옷 사주시고 화장품 사주시고!”
‘사주고’를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베란다 창문을 깰 것처럼 당당했다.
그날은.
회사에서 유난히 힘들었던 날이었다.
어머님이 장을 봐서 밥을 해주러 오셨다가
늦어져 주무시고 가시겠다고 한 날.
그날 나는 회사 일이 많았고,
임신 막달이라 몸이 무거웠다.
밥이고 뭐고,
집에 가서 1.5배가 된 몸을 눕히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 집 베란다가 환해진 것을 발견한 순간,
온몸이 떨렸다.
이미 어머님의 세컨하우스가 된 그 집에
들어가기가 주저됐다.
문을 열자
안방문과 옷장 문이 모두 열려 있고,
내 속옷은 바닥에 모두 꺼내져 흩어져 있다.
“얘!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얼마나 힘드니.
너 애 낳기 전에 집안 좀 정리해 주려고 왔다.”
나는 말없이 싱크대 앞으로 간다.
여러 번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머님께서는 항상 가볍게 듣고
사양하신다.
식탁 위에는 식재료가 산처럼 쌓여 있다.
낙지, 소고기, 관자, 새우.
새우 랩을 벗기다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난다.
흐르는 물에 새우를 씻으며
피를 함께 흘려보낸다.
“아이고, 새우는 소금물에 씻어야지.”
손을 씻어도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와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진다.
스티로폼 접시 위 새우처럼
등이 둥글게 말린다.
눈을 감자 어둠이 밀려오고 눈물이 흐른다.
눈을 뜨니
하얀 침구 위로
붉은 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번지는 모양이 낯설게 또렷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안방에 널브러진 내 속옷들과
어머님이 사 오신 아기 옷들을
먹먹하게 쳐다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다시 차를 타고
친정으로 간다.
친정집에서는
몸은 눕힐 수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서 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일요일 저녁,
'가자' 하고 나를 일으켜
차에 태워 데려다준다.
주차장에 내려주고 열쇠를 쥐여준 뒤
돌아선다.
내 손을 잡고 어디든 가서 당당하던
아빠가,
시집보낸 딸의 손은 다시 잡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몇 년 후 나는 이혼을 했다.
아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제 주말에
아이와 둘이 저녁을 먹는다.
무를 오래 끓여 국을 낸다.
해산물은 넣지 않는다.
아이에게 밥을 덜어 주고
나는 맞은편에 앉는다.
군산에서 미처 다 먹지 못한 맑은 국물을
이제야 내 식탁에서 마주한다.
식탁 위에는 필요한 것만 있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씻는다.
옷장은 닫혀 있다.
불은 내가 끈다.
집은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