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제적이래"

- 제적이라는 단어가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갔다 -

by 재인

‘엄마, 나 제적이래.’


된장찌개를 먹다가 나는 숟가락질을 멈췄다.


지난 1년은 내가 처음 갖는 휴식기였다.
결혼하고 맞벌이하며 큰아이를 키웠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들처럼 학원에 보냈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보냈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이제는 성인이니,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된장찌개를 먹다가 아이에게서 들은 단어가 ‘제적’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무슨 소리야?’

머릿속 생각이 반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멈췄고, 한쪽은 엄청나게 빨리 돌아갔다.


학교에서 잘렸다는 소리인가. 다시 수능을 봐야 하나. 얘가 무슨 잘못을 했나.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백 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좌뇌와 우뇌가 있기는 있나 보다. 이런 순간, 생각이 둘로 갈라지다니.


‘문자가 왔어. 제적이라고. 내가 휴학 신청을 잘못했나 봐.’


아이는 대학의 효용에 대해 무심했던 평소 태도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었다.
1학기를 마치고 대학생활에 흥미를 못 느껴 군대에 먼저 다녀오겠다고 했고, 나와 남편은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듯 내버려 두었다. 휴학 신청은 온라인으로 하면 된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2학기는 카투사 발표를 기다리며, 다른 특수병으로 가는 방법들을 알아보고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다.


‘엄마가 학교에 전화해 볼게.’


대학생은 성인인데,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라는 평소 신념은 그 순간 집어치웠다.
나의 신념은 힘이 없어서, 자식 일이 걸리면 고민 없이 버려진다. 자식이 걸린 일이면 거짓말도 하고 새치기도 했다. 죄송하다는 말도 도와 달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무릎도 꿇으라면 꿇었겠지.


나는 대학 행정실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제적이라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좁아진 어깨로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하는데, 그 순간 내가 제적당할 뻔했던 나의 대학교 4학년 2학기의 어느 날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행정실에서 나를 찾아왔었던.


30년 만에 그날이 떠올랐지만, 잠시 접어두고 직원과 대화를 이어갔다.


‘네, 어머니. 제적이 맞지만 재입학은 언제든 가능합니다.’


30년 전, 내 대학교 행정실 직원과 달리 아이 학교의 직원은 친절했다.
휴학 신청이 제대로 안 되어 이런 경우가 더러 있고, 학과장과 면담 후 재입학이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일단 큰일은 피했다는 생각에 안도했고, 나는 나도 제적당할 뻔했던 적이 있었음이 천천히 떠올랐다.


‘너는 어떻게 학생이 등록금도 안 내고 학교에 다니니?’


대학 4학년의 나는 행정실에 우두커니 서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아빠의 병간호로 정신이 없던 엄마가 등록금 내는 걸 깜빡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우리 학교 선배일 듯한 행정실 직원 언니의 질책하는 눈빛과 다른 사람들의 힐끔거림이 느껴졌다.


'고지서 다시 줄 테니까 내일까지 은행에 등록금 내.’


집에 돌아와 엄마가 운영하는 슈퍼로 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엄마는 깜빡했다며 슈퍼의 돈통을 열어 지폐를 모두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엄마가 물건 값을 주려고 따로 챙겨 놓은 봉투 속 돈도 꺼내고, 헌금하려고 성경책 속에 꽂아 두었던 한 번도 접히지 않은 만 원짜리 몇 장도 꺼냈다.


‘아이고, 십만 원이 모자라네.’


그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많이 울었던 것 같고 소리도 냈던 것 같다. 바닥에 주저앉았던 것도 같고, 엄마에게 원망의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랬던 것 같다.


병원에 오가느라 정신이 없던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슬프기도 해서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울고 있던 내 팔을 누가 살짝 잡았다.


‘학생, 이거 보태서 등록금 내.’


처음 보는 아저씨였다.
담배를 사러 온 듯했다.

아저씨는 만 원짜리 열 장을 건넸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어정쩡하게 그 돈을 받아 은행으로 갔다. 그 후에 엄마와 그 아저씨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돈은 갚았는지 모른다. 그 일은 엄마와 다시 말해 본 적이 없다.


두 달 후 아빠는 돌아가셨고, 나는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1학기는 마친 상태인데, 다시 1학기로 재입학을 해도 되나요?’


재입학이 가능하다는 말에 안도했지만, 아이가 1학년 1학기는 마친 상태라 2학기에 재입학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다시 문의를 했고, 직원은 아이의 학과와 이름을 물어보더니 성적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지금 이 시점에 성적 조회는 왜 하는지 의아한 채로 잠시 기다렸다.


‘어머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올 F여서 다시 다 들으면 될 것 같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올 F라는 말은 농담 속에나 있는 말인 줄 알았다.

전화를 끊고 아이와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자리에 앉은 채 3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나는 30년을 오갔고—무언가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안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한참을 울었다.


며칠이 지나 마음과 머리가 정리되자 여러 마음 중에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시시한 마음이 들었던 아이의 학교에 감사하고,

30년 전 그 아저씨에게도 감사하고,

친절한 행정실 직원에게도 감사하다.

잘 키워 주시고 학교도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하다.

어른이 되어 가는 큰 아이를 응원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나를 토닥인다.


수고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