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세 할머니가 오늘 나에게 한 말 -
-할머니, 내 말 들려?
-응 들려. 니 말은 잘 들리는데 몸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것다.
94세 되신 외할머니는 한 시간째 몸을 떨고, 10분에 한 번씩 숨을 몰아 쉰다.
오늘은 한가하고 싶었던 손녀 둘이 할머니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
자식이 다섯이고 손주가 열 하나인 할머니 옆에 지금 두 손녀가 있다.
-바쁜데 와서 어쩌냐. 너희 둘이 옆에 있을 때 딱 죽으면 좋겠는데, 목숨이 왜 이렇게 질기냐.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말하면서도, 두 손녀는 할머니 말씀에 그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는 몇 년째 몸이 여기저기 아프셔서 병원에 다니셨다.
수술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으셔서 물리치료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셨다.
자식들은 말했다. 그 나이가 되면 다 아픈 거라고.
손자 손녀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모두 각자의 삶이 바빠서 뭘 더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의 첫 손녀였던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오랫동안 받았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쫓아와 주셨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백 번 넘게 들려주셨다.
돈을 아끼고 좋아하던 할머니였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 아들들에게 받은 용돈을 선뜻 나누어 주셨다.
침대 위 할머니의 몸은 옆에 앉은 사람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떨린다.
숨은 여전히 10분에 한 번씩, 한 번에 몰아쉰다.
큰일이 날까 두려워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더니, 할머니의 나이를 듣고 크게 동요가 없다.
모시고 와야 할 것 같으면 모셔 오라는 애매한 말을 한다.
지난 두 번의 소동이 있어서인지
할머니는 너희 둘이면 족하니 이미 70이 넘은 자식들에게 전화하지 말라 신다.
두 손녀는 잠잠히 할머니 말을 듣는다.
-애들은 어쩌고 왔어?
-이제 다 커서 지들끼리 있어도 괜찮아.
숨을 천천히 쉬어봐, 할머니.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슴을 쓸어드린다.
할머니의 작은 발을 꼭꼭 주무른다.
할머니는 4남매를 홀로 키우셨고
일하는 딸을 대신해서 손녀를 키워 주셨고,
손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 증손자와 놀아 주셨다.
증손자는 증조할머니와 새우깡을 나눠 먹고,
장조림 비빔밥을 얻어먹었고,
좋아하는 촛불 끄기 놀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했다.
-엄마한테 잘해라이.
숨 쉬는 것도 힘이 든 이 순간에 엄마 얘기라니.
나와 엄마와 할머니는 삼각형을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할머니가 좋고 엄마가 귀찮은데,
엄마는 나를 좋아하고 할머니를 귀찮아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란 걸 어느 날 깨달았다.
사춘기의 정점에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에게 심하게 말대답을 하고, 미친 것처럼 큰 소리로 대들었던 그날,
할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혼내셨다.
"네 엄마 속상하게 하면 너도 미워!"
다행히 할머니의 떨림은 잦아들었고
또 한 고비를 넘긴 두 손녀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석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는 소화가 안 된다며 매실차를 드시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셨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식구들이 있는 집에서,
당신 방에서 ,
홀로,
고요히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할머니가 보고 싶다.
딸을 사랑하기에 손녀를 더 사랑하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조건 있는 사랑.
엄마한테 잘해라.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핸드폰을 든다.
-엄마! 뭐 하고 있었어? 별일 없지?
-응 그럼. 나는 잘 있지. 애들 별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