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나 준비 하나도 못했는데 어떡해요. 맞다! 언니 몸은 좀 괜찮아요? 이번에도 경기도로 시험 볼 거죠? 나중에 나랑 또 2차 준비해요”
지금은 또렷이 기억나는 동생의 질문 폭격이 그때는 그냥 흘러가는 연기처럼 뭉개졌다.
다리에 피가 싹-식으며 힘이 빠져 옆에 있던 냉장고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겨우 정신 차리고 “정말? 나 몰랐는데.. 몸은 좀 나았어. 공고 보고 또 연락할게”
하필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시기였다. 이제 간신히 아팠던 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중이었는데, 이제 막 퇴원한 아빠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바쁜 날들이었는데.. 추시라니.
긴 해외여행을 마치고 이제 막 짐을 풀어 빨래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이제야 돌아온 일상이 낯설기 그지없던 날들, 와중에 한순간도 시험을 잊은 적은 없다. 잊을 수가 없다. 밀어둔 수험서들을 차마 펼쳐보지는 못하고 오며 가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제 좀 추슬렀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이번 달은 이대로 좀 흘러가게 두고 다음 달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볼까, 성치 않은 몸으로 급하게 시작했다가 다시 아프면 안 되는데. 책꽂이의 책을 꺼내지 못한 이유는 수백 개도 넘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지금은 아닌 거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추가 임용고시 (원래는 1년에 한 번 매 해 11~12월에 치러지는 시험이지만 6월에 추가로 시험을 보게 됨)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은 기간은 두 달 남짓. 십여 년 넘게 이 공부를 붙잡고 있었지만, 고시라는 게 시험 바로 전날까지도 일정한 루틴으로 매일매일 해도 붙을까 말까 한데.. 루틴은커녕 글자 한자도 보지 않았으니.
원서접수는 4월 말. ‘우선 접수는 해놓자. 접수하고 안 가도 되니까. 그럼 경기도교육청에 들어가서’
그때 ‘서울특별시 교육청 공고문 보러 가기’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계속 경기도를 지원했던 건 15년 전 임용을 준비하던 때는 서울 선발인원이 많아도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고 어떤 해에는 0명이 나온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발인원이 많은 경기도에 항상 지원했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마음을 비우고 로망을 실현하듯 서울시교육청에 들어가 원서를 접수하고야 말았다.
합격 이후 각 교육청 교사상을 들어보니 서울이 나와 잘 맞는 결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 이렇게 이왕 온 거 아는 거 다 쓰고 가자!!'
그리고 어느새 1차 시험장에 앉아있는 나.
너무 큰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그래, 이렇게 이왕 온 거 아는 거 다 쓰고 가자!’ 정말 말 그대로 힘을 빼고 술술 쓴 것이다.
준비할 때 가장 자신 없었던 1교시 논술시간.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을 다 동원해서 합격하고자 하는 욕심 가득 쓰려했던 이전의 마음은 내려놓고, 문제에 나온 질문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대답하듯 분량만 잘 채워 제출했다. 나중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1차 합격을 아슬하게라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논술 만점’ 덕분이었다.
지금도 다양한 글쓰기를 할 때,
욕심이 나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그때를 생각해 본다.
힘 빼고, 간단하게.
1차 시험을 치르고 임용고시 관련 카페와 학원에서 시험 해설을 하며 답을 맞히고 서로 다른 답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2차 시험 스터디를 모집하는 글의 알림도 임용고시카페에 계속 울려댄다. 하지만 나와 아무 상관도 없지.
그렇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지냈지만 발표날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날 시계를 계속 보다가 컴퓨터를 켰다. 에이, 하고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몇 점이나 나왔나 보자 하고 들어간 컴퓨터 화면에는 15년 가까이 꿈에 그리지만 볼 수 없었던 ‘합격’이라는 비현실적인 글자가 떠 있었다.
‘이상하다…’
로그아웃을 하고 다시 로그인하여 수험번호를 여러 번 확인하며 키보드를 눌렀다.
심장이 손가락으로 옮겨왔는지 손가락이 덜덜 마음대로 움직여 그 짧은 수험번호 하나 치는데 시간이 걸렸다. ‘합격’이 맞았다. 점수를 보다가 논술점수가 만점임에 절로 “헙”소리를 내며 입을 막았다. 짜릿해지며 30초 정도 설레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넓지도 않은 집을 빙글빙글 돌며 생각하고 있는 나.
아니 생각을 한 게 아니고 비현실적인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나에게 물어보는 아주 긴 5분이었다.
그리고는 현실적인 파도들이 하나씩 밀려왔다.
내 총점수를 커트라인과 비교해 보니 1차 합격자 중 내 뒤에 몇 명 없는 후달달 떨리는 상황.
그리고 모두가 1차 시험을 보고 바로 2차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스터디 모집글들을 살펴보며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문의한 모든 스터디에서 “죄송해요, 인원이 다 찼어요.” 거절당했다.
그 순간 ‘한 번은 준비가 안되어있었어도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해서 행운이 찾아올 수 있었겠지만, 두 번이나 그냥 행운이 올 수 있을까?’.
동시에 ‘아! 이렇게 스터디도 없고, 준비도 없이는 어차피 떨어질 텐데..’ 겁쟁이가 쓱 얼굴을 들어 나와 마주했다. 그렇게 겁쟁이가 점점 커지며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졌다.
그 겁쟁이는 말하고 있었다.
“아무 준비 없이 이렇게 2차 시험 치르면 트라우마 와서 다시 시험 못 볼 수도 있어~ 그래, 이건 그냥 떨어진 거야”
그리고는 어느 위장약 광고에서 약을 먹고 배를 쓸어내리며 편안해진 미소를 짓는 아저씨의 표정을 하도록 시키고 있다. 애써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차피 떨어질 텐데..' 겁쟁이 나의 모습을 마주하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 궁금했다.
젊은 시절을 바친 임용고시에서 ‘합격’의 글자를 함께 보고 싶어 했던 엄마, 아빠, 동생의 표정이.
결혼하고 나의 예전꿈에 대해 항상 듣고 지원해 주던 신랑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이 얼마나 컸는지 뒷일은 생각 않고 전화기를 들어 ‘내 동생’을 눌렀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