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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Nov 16. 2021

설거지론 설거지

사랑받고 싶은 남자들에게

설거지론에 대해 설거지를 해야 할 듯합니다. 


웬만하면 무시하고 넘어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밥 잘 먹고, 더러운 그릇을 쌓아둔 것 마냥 찝찝했지요. 이제 보름쯤 지난 일입니다. 몇 달이 넘도록 묵혀온 글 하나를 송고하고,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제목은 ‘성관계 설거지론'. 오마이뉴스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제목과 부제가 바뀌어 게재되었지만, 워낙 성이 민감한 영역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지요. 그런데 며칠 후, 내가 쓴 글의 키워드가 첫 화면에 떡하니 떠있는 게 아니겠어요? ‘설거지론!’  


내 눈을 의심했죠. 내 글이 그렇게 센세이셔널했나?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요? 글 머리를 읽자마자, 이 사태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화제의 ‘설거지론'은 내 글과 맥락이 전혀 달랐습니다. 내가 쓴 글은 부부관계 상담 게시판에서 여성들이 토로하는 고민을 담았는데, 이 ‘설거지론'은 남자들이, 남자들끼리, 남자에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 보내기 전에 구글 검색이라도 해볼 걸. 지금이라도 태그를 수정할 수는 없을까?’ 잠시,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쓸려 갔습니다.    


개인적 푸념으로 끝날 이야기를 굳이 다시 가져와 새 글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박하게도, 내가 쓴 글과 ‘설거지론'이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어느 수준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거지론에 대해 쓴 다른 기사를 읽을수록, 맞닿은 부분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겠습니다. 



‘설거지론과 성에 대한 자세‘ 


기혼남에 대한 조롱, 결혼에 대한 회의와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설거지론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성적인 재미를 다 본 여자’와 결혼 적령기 뒤늦은 연애로 결혼해, 외벌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아내에게 사랑도 못 받으면서 가사 분담은 꾸역꾸역 설거지로 채우는 남자가 이들이 이야기하는 퐁퐁남입니다. 설거지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성들로 보입니다. 맛있는 음식은 다른 사람이 먹고, 기혼 남성은 더러워진 여성을 설거지한다는 비유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지요.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런 류의 독기 서린 이야기를 접하면, 뒤틀린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잠시 막막함을 느낍니다. 바람 많은 곳에 자라는 나무처럼, 마음이 이리 뒤틀리기까지 반복적으로 접했을 어떤 절망의 깊이를 생각합니다. 그 말이 지칭하는 내용보다, 오히려 발화자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주는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설거지론이 딱 그런 경우인데, 발화자가 성을 대하는 자세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요. 


먼저, 성에 대한 자세부터 이야기해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윤택한 성생활은 한 번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생활은 ‘싸고, 닦고, 치우는' 배변 행위도 아니요, 길거리에서 딱지치기하듯, 따먹는 것도 아닙니다. 성생활은 매일매일 설거지를 하고, 집을 청소하듯이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가꿔가야 하는 영역입니다. 배변적 성생활이나, 따먹기식 성생활이 좋다면 그건 물론, 당신 선택이고, 당신 자유지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코칭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건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은 그 이상의 성생활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지금 경험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감각, 더 깊이 있는 교감이 가능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갈구하지요. 


만약 파트너가 성생활에 관심이 없다면, 최대한 분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세요. ‘지금 이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고, 더 윤택한 성생활을 위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알고 싶다’고 열린 방식으로, 하지만 무게감 있게 물어보세요. 성에 대한 갈증은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옆길로 새어 나오는데, 이런 애매모호한 자세가 당신에게도, 파트너에게도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성처럼 민감한 주제일수록, 소통은 확실해야 합니다. 


모두가 불편해하지만, 성에 대한 자세를 꼭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파트너는 바뀌어도 사람들이 성에 대해 가진 기본적인 자세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파트너가 누가 되었든, 나이가 얼마나 들든 상관없이 관계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말은 가볍지만, 실상은 비극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입니다. 


성생활은 마치 식물을 기르듯이 꾸준히 가꾸어가는 영역입니다. 지속 가능한 성생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가꾸고 싶다면 느낌에 집중하는 훈련을 권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내가 지금 몸에서 느끼는 감각은 무언가?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필요 없이, 지금 느끼는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내 마음이 다른 생각을 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파트너는 이 경험에 동참하고 있는가? 지금 내 파트너가 무엇을 느끼고 있고, 나에게 소통하는 메시지는 무언가? 


느낌에 집중하는 훈련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로 의식의 부재, 습관적인 행동과 같이 ‘수행 불안 (Performance anxiety)’도 짧게나마 언급해야겠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파트너로부터 단절되는 경우지요. 당신이 파트너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어떤 신기(神技)를 터득해도 헛짓입니다. 매 순간, 당신과 파트너가 얼마나 분명하게 서로를 느끼고 소통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혼남 : 생계를 위한 도구' 


인터넷에서 찾은 ‘퐁퐁 설거지남 자가 문진표'에는 이런 문항들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성적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경제력 이외의 메리트가 없다.’
‘만약 20대 시절이었으면 현재 아내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관계를 맺은 지 일 년이 넘었다.’ 


이 결혼관에서 남자는 생계를 위한 도구일 뿐, 사랑을 받지도, 윤택한 성생활을 즐기지도 못합니다. 돈을 버는 기능이 없으면 아내가 자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요. 파트너는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항들을 읽으면서, 설거지론을 이야기하는 젊은 남성들이 연령 상으로 기러기 아빠들 아래서 자란 세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론 기러기 가족은 통계상 일부이지만, 그 세대의 경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요. 자주 만나지도,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지만 멀리서 돈만 보내는 아빠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들들은 ‘남성성'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품게 될까요?  


저는 이들이 어떤 종류의 도구화도 철저하게 거부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대의 남성들이 관계의 경험을 쌓아서 5년, 아니면 10년 후에 내 파트너는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노라고 증언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이 세대가 낳을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가 자기 절친이라고 소개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이 스스로를 도구나 숫자, 계급장 같은 지위로 환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매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자기 자신으로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의 욕망을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지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평생 동안 사랑받을 시간도 없이, 자기를 증명하는 일에만 몰두하지요. 자신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를 포장하기에 너무 바빠, 정말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거짓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Image : 영화 미나리 트레일러 영상 캡처. 수컷 병아리를 감별하는 제이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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