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어디서 왔고, 몸은 무엇이며, 몸은 어디로 가는가?-3
화강암을 다루는 조각가는 돌의 중심에 인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조각하고 나머지는 그냥 놓아둔다. 그럴 때 조각된 몸은 금방이라도 단단한 바위에서 걸어 나올 것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작품은 사람의 몸과 대지 사이의 거대한 차이를 느끼게 하고, 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휘트먼은 <나는 몸의 흥분을 노래하네>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만약 신성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몸이리라.
- 샤오춘레이의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중에서
2015년 개봉한 연극 <구름을 타고>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한 남성이 무대에 등장한다[1]. 그는 17살 당시 레바논 내전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배우 야세르 므루에(Yasser Mroue)다. 그의 형이자 작가 겸 연출가인 라비 므루에(Rabih Mroue)가 연출한 <구름을 타고>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야세르는 총상을 입은 후 기억과 인식에 장애가 생기고, 머릿속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즉, 실어증에 '실재(Existence)'와 '재현(Representation)'을 구분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 후 움직임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유치원 과정에 입학해 읽고 말하고 쓰는 법을 다시 배우며 죽어있던 반쪽의 뇌를 깨워간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연극 <구름을 타고>를 통해 이야기한다. 움직임은 곧 당신이다.
앞서 의식은 움직임(Movement, 운동)을 포함한다고 했다. 의학 드라마에서도 익히 보았듯이 그 사람이 의식이 있는지 여부는 눈동자나 손가락이 움직이는지를 통해서 확인한다. 의식은 곧 움직임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움직임은 생명이다(Motion is Life)."라고 말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포는 근원적 움직임을 한다고 했다. 세포는 생명이고 생명은 움직임이다.
왜 움직일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심장의 움직임이 멈추고 뇌세포의 움직임이 멈춘다면? 생각만 해도 겁난다. 다시, 왜 움직일까?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먹을 것으로부터 얻기 위해서다. 먹을 것을 구하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몸으로 들어간 음식물은 소화기관의 움직임을 통해 소화되고 배출된다. 소화는 움직임이다.
끝으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다. 움직여야 짝을 찾을 수 있다. 남녀 상호 간의 성기 움직임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생산된 정자와 난자를 배출한다. 정자는 열심히 움직이고 동시에 자궁의 수축성 움직임에 도움받아 난자에 도달한다. 수정 능력의 여부도 정자의 움직임이 좋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수정되고, 생명이 잉태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처럼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였고, 이러한 움직임은 목적과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 움직임을 위해 발달했다. 앞서 움직임 조절에 관련된 뇌의 기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을 하는 뇌의 능력보다 더 놀랍고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 뇌를 '움직임을 만드는 기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에 존재한다. 움직임은 생명이며, 생각이다.
나는 몸이고 영혼이다(Body am I, and Soul). - 차라투스트라
지금까지 얕게 쌓은 지식을 종합하면 아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는 생각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중력장 방정식에 의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속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시공’이 결합된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수치화된 공식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개인 경험을 대입해봐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몸이 사멸하면 의식도 사라지며, 의식이 사라지면 근원적 움직임도 사라진다.
역사적으로 마음에 비해 몸은 천대받아 왔다. 분리된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이러면 마음이 몸을 지배하고, 마음이 몸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을 갖기 쉽다. 자칫, 우리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삶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이런 사고의 대표적인 예가 정신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마인드이다. 정신력, 의지력의 유지는 몸의 체력이 튼튼하게 받쳐줘야 가능하다. 마음의 의지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들다.
기억해야 한다. 몸이 고통을 느끼면 마음도 고통을 느끼며, 마음이 고통을 느끼면 몸도 고통을 느낀다. 몸이 움직이면, 몸과 마음 둘 다 좋아지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 그리고 움직임은 하나이며, 이는 곧 당신이다. 몸의 움직임은 당신을 만든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당신은 활기차 보일 것이고 젊어보일 것이다.
우리는 몸 자체이며, 몸의 움직임이 곧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주, 지구, 생명체의 탄생 근원엔 폭발이 있었다. 이 폭발도 움직임이다. 우리 몸은 세포로 되어 있다. 세포는 근원적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움직임은 신경계통을 통해 뇌에 내면화된 움직임인 마음을 만든다.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둘 다 움직임을 의미한다. 움직임 역시 의식이며 의식적, 무의식적 움직임으로 나눌 수 있다.
결국 뇌를 포함한 몸, 그리고 의식인 마음, 몸의 움직임은 하나인 것이다. 몸의 움직임이 당신을 만들고, 당신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움직인다. 몸, 마음, 움직임은 당신을 이루는 전부인 것이다. 거창하게 우주와 생명의 탄생 대한 이야기부터 꺼낸 것은 그만큼 당신의 몸이 소중하며, 당신에게 있어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인 우주에서 왔고, 자연인 우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세상에 단 하나, 단 한 번만 존재하는 당신의 몸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참고 [1]: 연극 <구름을 타고> 관련 기사(문화일보 블로그)
참고 1: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샤오춘레이, 유소영 옮김, 푸른숲(2006)
참고 2: <몸, 욕망을 말하다> 키머러 라모스 지음, 홍선영 옮김, 생각의날개(2009)
참고 3: <움직임> 그레이 쿡 지음, 최하란 옮김, 대성의학사(2013)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NSCA-CPT, 스포츠영양코치, 생활스포츠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