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가정식의 희로애락
한 해 끝자락에 있는 성탄절은 종교의식을 넘어 특별함이 더해진다. 선물을 전하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음식을 찾는다. 그래서 12월이 시작되면 매장은
성탄절 식사 예약 전화로 분주하다.
예약전화는 대부분 단골손님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손님은 20살 손님이 30살이고 되고, 50세 손님이 60세가 되고, 내 매장의 시간과 단골손님의 시간이 함께 흘러가고 있다. 손님이라는 표현이기에는 너무 친숙해져 가족이 되어 있다. 그래서 성탄절 메뉴는 이들을 위한 시간이다. 이들과 함께 한 해 동안에 일상을 보내며 희로애락을 알기에 성탄절에는 정성이 깃든 요리를 준비하려 노력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것으로 가슴까지 따듯한 요리를
하려고 가을부터 고심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면 이미 가족이 되어있다는 의미이다.
가족을 위한 식탁에서 위로와 행복을 찾아본다.
나는 요리 학교 출신의 요리사가 아니다. 요리를 직업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시작한 요리가 현재 나를 만들었다. 시댁과 함께 살면서 며느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주방이 내 삶에 일부가 되었다. 결혼 전에 주방은 엄마의 전유물이었기에 쉬워 보이는 달걀부침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엄마의 주방과 시어머니의 주방을 다르다. 엄마의 주방에는 구경꾼처럼 서 있어도 애교가 된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주방은 그럴 수 없다. 나는 교관 같은 시어머니 앞에서 매번 미션을 성공해야 하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 맛없다는 말과 실수하는 모습에 눈치가 보이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 덕분에 나는 요리책을 고시 공부하듯 끼고 살았다. 생존을 위한 요리는 미식을 위한 요리가 되고 눈물과 오기의 시집살이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시댁은 유난히 시간의 공이 많이 드는 음식들을 즐겨 먹었다. 봄에는 나물 요리, 과일 청, 여름에는 물김치, 탕 요리, 가을에는 엄청난 양의 김치와 나물을 말려 건 나물을 준비해 두고, 겨울에는 사골, 만두, 떡, 가을에 말려 둔 나물 요리로 사계절이 채워졌다. 몇 해 동안 나는 식탁 위에 사계절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결혼 전에는 즐겨 먹던 요리도 아니라서 더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생체 리듬처럼 계절이 찾아오며 그 요리를 식탁에 올렸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어도 나는 사계절을 식탁에 차린다.
내가 프랑스 요리를 선택한 이유도 이런 습관 때문이다. 찌고, 볶고, 삶고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한식과 닮아 있는 요리가 프랑스 요리인 거 같다. 내가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멘토처럼 생각한 셰프가 피에르 가니에르였다. 이 셰프는 삶처럼 다가온 요리를 거부하다가 결국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요리하는
셰프이다. 그의 요리에는 초봄 요리가 있다.
먹거리가 부족한 계절에는 정성을 들이는 레시피를 추천한다. 허브를 넣은 수프와 파스타 같은 시간의 공을 들인 요리를 소개한다. 한식의 정월대보름 나물 요리와 봄나물 같은 요리와 닮아 있다. 그의 요리에서 용기 내어 집밥 같은 프랑스 요리를 늘 도전한다.
이 도전에 가족 같은 손님과 식탁 위의 시간을 채워 나간다. 나는 유명한 세프는 아니다. 하지만 가슴을 따듯하게 할 수 있는 요리는 할 수 있는 셰프이다. 가정식이라는 챕터는 힘들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요리라서 가정 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식의 수육이나 국거리용 소고기를 프랑스 가정식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재료이다. 시간의 공을 들여야 하는 요리지만 겨울에 먹으면 가슴이 따듯해지는 요리이다.
사골국처럼 녹진한 고기와 풍미와 깊은 맛이 있는 스튜 요리이다. 와인 사태찜이라고 하면 설명이 쉬울 거 같다. 수비드를 한 사태나 목살을 레드와인에 허브와 육수와 야채 넣고 낮은 온도에서 졸이고 오븐에 넣어 뭉근하게 요리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구운 야채를 가니쉬로 곁들여 뱅쇼나 따듯한 음료와 함께 먹으면 좋다.
겨울 식탁을 따듯하게 하는 요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