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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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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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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가 정말이지 쏜살같이 지나갔다. 오기 전 한 달간의 외출금지에 답답했을 아들 환기 시켜주겠다며 좋아하는 스포츠 실컷 하게 해 주리라 했는데, 그건 확실히 성공. 떠나기 전 며칠 사이 이번 여행처럼 빠르게 지나간 여행은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내 마사지까지 포기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운동을 실컷 하게 해 준 보람을 느꼈다. 


 물론 나 역시 목적 달성을 확실히 했다. 비록 마사지는 포기했지만 낮잠 따위 자지 않는 내가 몇 번이나 늘어져 자고 미뤄 두었던 글정리도 끝냈으며, 무엇보다 느긋하다 못해 게으르게 먹고 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으니. 한국에서는 다른 '이야기'에 집중할 여유가 없어 시작하지 못하는 드라마를 두 편이나 보고 몸도 한 껏 늘어져 버린 게 그 증명 같다. 너무 풀어져서 겨울의 한복판인 한국행이 갑자기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이번 겨울에도 강추위 한 번은 피했으니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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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올 겨울 초입부터 아이가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걸 지나오는 과정이 이 나라에서 학교를 보내는 것에 그렇지 않아도 회의감이 있던 내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어떤 방황이나 다름, 다양함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잔뜩 긴장되고 방어적이 되어 있는 이 나라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아이보다는 내가 더 이상 버티기 싫어진 게 사실이다. 1학년에 이어 이런 과정을 겪으며 느낀 건 가정 내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는 전혀 살펴지지 않고 실수나 행동 하나에 아이는 어떤 명패 같은 게 붙어 버린다는 거다. 


 친구가 너무 좋은 아이는 내가 중학교부터 해외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는 말만 나오면 반항아가 되는데,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나 역시 방황하게 된다. 하나는 막상 중학교 올라가서 철이 들어 이 시스템 안에서 잘 지낼 아이에게 내가 괜한 변화를 주어 혹시라도 원망의 말을 들을 수 있으리란 생각, 다른 하나는 아직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더 나은 길을 열어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거다. 언제나 그랬듯 아이도 나도 처음 겪는 현재라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니, 나는 안갯속 같은 이 현실에서 잘 궁리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길 벗어나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늘 가득 찬 나지만 사실 아이 교육을 위해 다른 나라를 간다는 건 다른 문제라 고민이 길 수밖에 없다. 아이가 4학년일 때 스스로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준 것도 그런 이유. 내가 아닌 아이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니 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한 가지 더 고민스러운 건 아이의 아빠이자 내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한 문제다. 긴 인생으로 보면 찰나일 수 있지만, 내가 십 년쯤 남편의 뒤에서 남편이 회사에서의 자리를 넓히고 견고히 해가는데 필요한 가정의 안정감을 지켜내는 동안 남편은 자기 자리를 꽤 굳건히 다져왔으므로 최소 3년에서 6년쯤 나가 산다고 큰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생의 절정기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중요시하는 '함께' 현재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을 일부 버려야 하는 게 걸린다.


 아직은 어떤 마음에 더 기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 나가고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확신에 서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새로운 학년과 선생님, 아이가 어울릴 친구들과 아이의 변화 모두 본인인 아이보다 내가 더욱 긴장되는 이 현실이 여전히 버거우면서도, 줏대 있는 엄마인척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부모의 자리가 나는 참 무겁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평생 그런 자리일 테니 지금처럼 그 무거운 자리를 지켜낼 힘을 스스로 챙겨가며 잘 지켜내는 수밖에. 그러므로 이번에도 떠나오길 잘했다. 엄마이자 아내, 무엇보다 나를 지켜낼 힘을 충전해 가니까. 


 남은 방학 아이의 삼시 세끼와 건강한 마음도 잘 챙길 수 있기를 바라며.


* 관련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r8L1GfKejU?si=7AQh1daOZI8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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