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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pr 18. 2024

여행을 해야만 하는 엄마라는 죄책감

조호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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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고 싶다고, 수개월간 연달아 벌어지는 복잡하고 황당하고 어려운 상황들 속에 쭉 생각해 왔던 나는 조호바루에서도 습관처럼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 한편에서 모른척할 수 없었기에 끌어 쓴 열심과 성실함이 습관처럼 튀어나와, 쉬고자 하는 내 바람에 죄책감을 덧씌웠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매해 어려움 없이 지나와본 적은 없지만, 마치 윤달이 찾아오듯이 몇 해 걸러 한 번씩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실감 나는 해가 있다. 지난해가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는 바로 그런 해.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나는 ‘원래 그런 애’ 또는 ‘뼛속까지 여행자’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쓰고 조호바루에 쉬러 왔다. 요컨대 여전히 최전방에서 그 어려움을 대면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매일 느끼며 나는 아이와 여기서 웃고 있는 것.


 조호바루로 오던 날 남편은 말도 안 되게 바빴고, 그래서 우리를 데려다 주기 어려웠음에도 무리를 해 우릴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냥 이게 나한테 주어진 인생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 지쳐 있어 그 순간엔 말하지 못했는데 사실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내가 늘 그런 마음으로 산다고. 세상을 떠돌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매 순간마다 나는, 누군가의 뒤를 받쳐주는 인생이 내게 주어졌다는 생각으로 버틴다고 말이다. 십수 년 그 '삶'을 버티어 내며 내린 답이기 때문에 이 생각을 떠올리며 슬프지 않고 담담하다. 이 마음이 연륜인가 싶어 때론 이 문장을 얻은 게 고마울 정도.


 아닌 게 아니라 예전이라면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 욱했을지 모른다. 네 일상을 뒷받침하며 사는 아내와 네 아이를 위해 이 정도도 못하느냐면서 속에서라도 욱했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같은 상황 속에 있더라도 각자 다른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는 걸. 또한 인고의 시간을 겪는 강도와 그 끝에 닿아 상처럼 주어지는 쉼을 얻는 시기도 달라 같은 상황 속에 각각 다른 심정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아이의 수영 수업이 시작되고 선베드에 눕자마자 '쉬고 싶다' 생각하는 내 마음을 용납해 여기서 제대로 쉬어 보자고 다짐했다. 집과 아이와 꿈을 지키는 일상을 살아내야 할 내가 이 시간을 필요로 했고 어쩌면 나는 그걸 쟁취한 것이니 감사히 누리면 되리라 생각하면서. 자꾸만 치고 올라와 나의 쉼을 방해하려 드는 죄책감을 다시 누르기 위해 만들어 두는 표지판 같은 이 생각, 필요할 때마다 잘 꺼내 들어야지.


* 관련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qgSBNDbNRrE?si=q2M0u-1H-Zu6tT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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