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d 오진욱 주임연구원
이재용 대표가 올해 초 쓴 글(디자인 스튜디오의 인수합병, 디자인 에이전시의 몰락)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디자인 에이전시에게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5월, McKinsey&Company가 Lunar Design을 인수했습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와 비즈니스 컨설턴시는 어떻게 변화하는 걸까요, 또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이 시점에서 두 업계의 변화 양상을 짚어보고 향후 디자인 컨설턴시가 가질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려 합니다.
1편: 디자인 에이전시의 변화
2편: 비즈니스 컨설턴시와 디자인 컨설턴시 (발행 예정)
1편 한 줄 요약:
디자인 에이전시 입장에서 쓸만한 일을 주던 회사들은 인하우스로 돌아섰고 돌아설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일은 보다 더 저렴해졌고 저렴해질 것입니다.
1편에선 먼저 디자인 에이전시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기본적으로 머리를 빌리면 컨설턴시, 손까지 빌리면 에이전시, 스스로 해내면 인하우스입니다. 따라서 에이전시는 외부에서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주요 비즈니스 맥락이 되며 수익은 당연히 건 단위의 마진이 높을수록, 또 단위 시간 내에 더 많은 건의 일을 소화할수록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전시에게 어려운 시기라면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됩니다. 일이 줄고 있거나, 일이 저렴해지고 있거나.
기업에게 있어 디자인은 사실 당연히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만 짚어봅니다.
Identity디자인을 비교적 경영에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은 얼마 전 맥킨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광고의 시대가 끝나고, 표현의 시대가 온다'라는 자사 슬로건을 통해 그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영향이 반영된 이 슬로건은 기업 아이덴티티(Identity)에 관한 깊은 통찰 -우리는 브랜드를 하나의 총체적인 경험으로 인식한다는- 을 담고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표현의 기획과 전달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는 분야가 바로 디자인입니다.
특히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핵심은 ‘자기다움의 표현'인데, 이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는 분야를 외부에 위탁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일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지속적인 관리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기업일수록 핵심적인 결정을 내리는 '머리'에 가까운 일들은 사내에서 다루게 됩니다. 이 때 외부 에이전시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일의 성격이 '머리'에서 멀어지고 '손'에 가까워질수록 건당 마진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경쟁 업체가 없는 분야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제품 관점에서 경쟁 업체를 이겨낼 수 있는 핵심은 빠르고 지속적인 반복 개선(polishing)에 달려있습니다. 이 때 여기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UX이므로 자신의 제품을 둘러싼 UX만큼은, 조금은 서툴더라도,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스스로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특히 디자인은 UX에 깊숙이 관여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이러한 분야를 외부에 위탁한다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일입니다.
쓸만한 일이 줄고 있거나 따라서 인하우스화가 불러오는 어려움을 정확히 말하자면 ‘“쓸만한” 일이 줄고 있거나’에 가깝습니다. 프로젝트면에서 비교적 "쓸만했던" 일들은 회사 안에서 소화하고, 까다롭고 단기적인 것들을 외부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기업을 제외하면 에이전시를 찾는 고객들은 주로 디자인 역량을 스스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규모의 회사들, 혹은 단발성으로 소화하는 회사들이 되는데, 이들 역시 높은 마진을 남기지도, 꾸준한 일감을 제공하지도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디자인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회사들이 늘어날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이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디자인을 스스로 해내는데 필요한 진입장벽이 낮아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인간이 관여하는 대부분의 경쟁은 결국 성숙 및 포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각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는 가치 하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점점 더 낮은 가치에 그 일이 거래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 하락은 상하 위 그룹의 경쟁력 차이가 좁혀짐으로써 발생하는데 이는 곧 상위 그룹이 도망가는 속도가 하위 그룹이 쫓아오는 속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는 주로 시행착오 최소화와 도구의 발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행착오 최소화는 상위그룹이 달아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들을 하위그룹은 최소화하며 쫓아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디자인', 혹은 ‘잘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어느 정도 수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Dribbble.com, Behance.net만 가도 탑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금방 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른 속도로 ‘좋은’ 수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도록 psd, ai 파일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 목업이나 리소스 파일들이 공유되고 있고, 구글이나 애플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이마저도 고민의 여지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디자인 분야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행착오 최소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분야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상향평준화가 심화되기 마련입니다.
도구는 더 짧은 시간에,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러한 도구의 발전은 사람이 좌우하는 영역의 크기가 줄어들게 만들어 상하 위 그룹이 내놓는 결과물의 절대적인 차이를 좁히고, 단위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 업의 평균적인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반대로 업의 평균적인 거래 단가를 하락시킵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라이노, 캐드 등이 바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대표적인 도구들이며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눈부시게 발전 중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점점 더 짧은 시간에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2D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선 이제 단순 도구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이 하던 역할까지 확장하여 대체해내는 도구들 -Canva.com, Wix.com과 같은- 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자유도를 일부 양보하는 대신, 저렴하고 손쉽게 일정 수준 이상의 디자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들의 위협에 가장 가까운 분야는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는 프로젝트들을 수주하던 에이전시/프리랜서들입니다. 아직은 사람이 가지는 경쟁력이 조금 더 우위에 있을지 모르나, 온라인 서비스 특성상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할수록 더 빠른 속도로 기능이 개선되고,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일정 영역에선 가성비적으로 사람을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상향평준화가 불러온 업의 가치 하락과 도구의 발전에 힘입어 Wishket.com, Loud.kr과 같은 아웃소싱 중개 서비스는 생긴 이래로 꾸준히 발전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로, 이제는 초창기에 비해 이용자의 규모도 제법 커져 점점 더 비싼 프로젝트들이 제안되고,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경쟁하여 좋은 결과물이 제공되는 선순환의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사용자라면 1000만 원 내고 업체에 맡긴 스마트폰 앱 디자인와 300만 원 내고 30명의 디자이너가 경쟁해서 만든 스마트폰 앱 디자인 사이에서 점차 후자를 선택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특히 Loud와 같은 경우엔, 선택된 1개 시안뿐만 아니라 선택되지 않은 29개의 시안까지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는 강력한 장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글에 썼던 표현대로 이 모든 것은 이미 다 벌어진 일이며 이러한 변화는 언제나 역행하기 보단 심화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서로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며 전방위적으로 발전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빠르게 전통적인 디자인 에이전시업의 단위 업무 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시켜 나갈 것입니다. 탱그램 디자인연구소와 이노디자인의 경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통해 사업다각화에 노력했고 각자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던 일의 변화라기보단 새롭게 업을 추가한 것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변화 방향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디자인 에이전시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미래가 있겠지만 비즈니스 컨설턴시의 변화와 맞물려 고민한 바 중 한 가지를 2편에서 나누어 보려 합니다. 1편은 어디까지나 2편을 위한 도입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