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하려다, 나를 잃어버렸다.
어릴 적 나는 열성적으로 좋아하던 연예인이 없었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
하다못해 선생님(연예인 덕질은 안 해도 선생님 덕질을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이라도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타인에게 그렇게 관심이 생기고 애정이 생긴다는 자체가 마냥 신기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를 떠올려보자면 나는 노래를 좋아했고, 내 취향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모으다 보니 자주 마주치는 가수가 누군지 알게 되었고, 제가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입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일 수 있지만 어릴 적 나는 '나' 자체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자아성찰의 시간은 내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 10대의 나는 그런 시간들을 좋은 방향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에 대해 곱씹을수록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친구들이나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오해로 인해 다투게 되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시간들을 가져본 적이 없는 데다, 방법을 모르니 다툼에 대한 원인과 답을 항상 나 자신에게서 찾았다. 그렇게 생각해 낸 답이 정답일리는
없었고 말을 할수록 관계들이 더 악화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말하는 행위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미안하다고 하자."
그렇게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모든 상황들을 수용하는 무늬만 이타주의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인간관계 고난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