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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한 Oct 25. 2023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 조이슨 메이나드(Joyce Maynard)

10평 남짓한 원룸에 매트를 깔아놓고 세 식구가 살았었다.

나, 남편 그리고 돌쟁이 아들.

불과 6개월전 이야기다 .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유모차를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야했고, 새벽에 아이가 울면 소리가 새어나갈라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쓰고 품에 안아 재웠다. 크게 우는 날이면 시간과 날씨에 상관없이 아기띠를 하고 뛰쳐나가 아기가 잠들때까지 정처없이 걸었다.

 육아 필수템은 고사하고 빨랫거리 파티인 신생아 시절도 건조기없이 잘 버텨냈으며, 공간이 모자라 육아지원센터에서 장난감을 대여해 갖고놀고 반납하기를 반복했다.

 우리부부는 청약해놓은 신축아파트가 완공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원룸시절보다 5배는 큰 아파트였다.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에어드레서까지. 없는 거 없이 풀세팅을 해뒀다.

 

   "원룸에서도 이렇게 행복한데, 여유롭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면 얼마나 더 즐거울까?"


그러나 그 기대는 이사와 동시에 풍비박산이 나버린다.

 남편은 장거리출퇴근으로 일찍 집을 나서고 늦게 들어온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있을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복직을 하고나니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릴 사람이 없었다.


 6시에 칼퇴근을 해도 아기를 픽업해서 집에 도착하면 7시, 7시 반까지 아기 손발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고 어린이집가방을 정리하면 어느새 남편이 퇴근한다. 남편에게 다급하게 아기를 맡기고 저녁밥을 짓는다. 아이와 함께 밥을 겨우 먹고 나면 아기가 잘 시간이 이미 지났다. 뒷정리는 내버려둔 채 아기먼저 씻기고 우유를 먹인다. 책이라도 한권 읽어주고나서 절대 안자려는 꼬마친구와 한참 씨름하고나면 10시.


 우유병 닦기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집안일을 우선순위로 달려든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깨서 울고, 또 달래고, 찔끔 집안일을하고,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긴다.

 아기 반찬을 한개 만들어놓고 화장도 못지운채 쓰러지듯 잠들면 어느새 다음날 새벽이 되어 아기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엄마!를 외치고 있다. 남편은 눈꼽만 겨우떼고 잠도 덜깬채로 장거리 출근길에 나선다.

 이사하고 정리하지 못한 짐들이 묵은 피로처럼 창고안에 그대로 쌓여만 갔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각자가 바쁘게 자신의 과업소화해내고 있는데도, 이놈의 집구석. 좀처럼 평온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락한 집을 만드는건 비싼 식탁도, 큰 거실도, 빵빵한 가전도 아니었다. 관리할시간이 없으니 우리의 케렌시아는 점점 혼란해졌다. 내 손이 닿는 곳에 물건을 주욱 늘어놓고 살면서 팬트리에 물건을 대충 구겨넣었다. 이사 전에 그렇게도 기대했던 공간인 작은 테라스는 회색 방수페인트만 발린채로 황량하게 방치됐다. 집 어디에 누워있어도 완벽히 편안하지 않았다.


 '니가 식세기를 안돌렸네, 나만 빨래를 다섯번째 개고있네.'의 다툼끝에  베이비시터, 청소업체 등을 검색하기 시작한 어느날의 퇴근길.

결국, 나는 아예 집에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입주전엔 그렇게 들어오고싶던 집이었는데, 이젠 돌아오고싶지 않은 집이 되어버렸다.

아주 생소하고 불쾌한 감정이었다.


 원룸시절이 그리웠다. 착착 쌓아둔 수납함과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은 방바닥. 조그만 간이 식탁위에서 보글보글 끓고있는 김치찌개와 소파에 누워서 나누는 수다, 귀여운 코스터 위의 커피잔, 딱딱 맞아떨어지는 가구배치와 폭닥폭닥한 섬유유연제 냄새.


 내 취향에 꼭 맞는 그런 편안함은 돈을 주고 살수 있는게 아니었다. 나와 남편 둘중 누군가의 품은 꼭 들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만 그 짐을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돌아오고 싶은 집을 만드는 방법알면서도, 그냥 흘러가는대로 외면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바로 침대로 달려가서 남편은 게임을, 나는 유튜브 쇼츠를 틀었다. 그러면서 집에대한 불평은 더 늘어갔다.


 그런데 변화는 저절로, 시댁에서 가져온 박하화분 하나에서 시작됐다.

회색 일색인 테라스 맨바닥에 박하가 심긴 파란플라워박스 하나를 덜렁 내려놓았다. 민망했다. 그래도 그게 생명이라고, 바쁜와중에도 물은 주러 가게되었다. 기특하게 작은 관심에도 박하는 잘 자라주었다. 그 박하를 여름내내 탄산수에도 넣고, 과일화채에도 넣어먹었다.


 그러다가 남편은 새 화분을 사오고, 나는 흙을 사서 채워넣었다. 처음엔 실용적으로 파를 심었다. 곧 파 화분이 하나 더 늘어났고, 우리 부부는 마음에 드는 관상용 식물을 하나씩 더 샀다. 팬트리속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실내수경재배기도 꺼냈다.


 요즘은 거기에 로메인 상추를 키워먹는데 3일에 한번은 고기에 쌈을 싸먹을수 있을만큼 아주 쏠쏠하다. 휴식이라고는 스마트폰게임밖에 몰랐던 남편에게 식집사 본능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장거리 운전후에도 파 화분에 난 잡초를 뽑으러가고, 새벽에 자다 깨서도 수경재배기에 영양액과 물을 충실히 채워넣는다.


둘이 상추 옆에 모여서

 "상추싹이 안나는 곳은 왜그럴까?"

하고 고민을 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주변에 놓인 과자봉지도 슬쩍 버리고, 컵도 싱크대로 옮겨놓는다. 함께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지낸지 한달차, 우리집은 꽤나 많이 쾌적해졌다.

 니 일, 내 일 할것없이 그냥 당장 내가 할수있는것에만 집중하다보니 부부사이 분위기도 맑아졌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좋은 집에 살면, 좋은 가정이 될거라고 착각했던것 같다.

 들어가고 싶은 집이 있다면, 그저 그 집을 사기로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매일 힘든 일과끝에 돌아가고 싶은 집을 갖는 일은 마음먹기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화분에 흙을 채우고 물을 주어야 상추가 자라듯, 집도 쓸고 닦아야 가족이 먹고 살 행복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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