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5.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다.
하루하루는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John Ruskin-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중학교 2학년 겨울부터 이어온 습관이고, 어느덧 18년째 '기록'을 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랜 기간 행한 것이 또 있나 싶다. 없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잡생각으로 잠 못 이룬 밤이 많았다.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아! 그때 이 얘길 했어야 했는데' 혹은 '아! 이때 이렇게 행동했어야 했는데'이라는 후회가 대부분이었다. 새삼 찌질했네.
그래서 공책을 펴고, 연필을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면 하루하루 일상이 참 자세히도 적혀있다. 이때의 나는 후회를 하고, 다짐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외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 일생에서 가장 고독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아무렴 상관없다. 관심 없다.'는 태도로 살았다. 지금의 내가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봤더라면 분명 '저 아이, 사회성이 부족하네. 학교 생활 괜찮나? 친구가 있어?'라고 반응했을 것 같다.
한 손에 든 소설책 한 권과 귀에 꽂은 MP3와 함께 하는 삶이었다. 여름엔 인견 패션을, 겨울엔 털고무신 패션을 즐겼다. 당당히 버스를 타는 나를 보며 엄마가 부끄러워했지.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었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됐다. 왜냐?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다. 파워당당하게 진실을 고하는 패기 넘치는 고딩이었다.
"왜 늦었니?"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라면 먹고 왔습니다!“
"왜 쪽지시험 백지로 내냐?"
"몰라요..."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문제 답을 몰라요."
"넌 책가방 안 들고 다니냐? 근데 책은 왜 들고 다녀?"
"교과서는 여러 권인데, 읽는 책은 한 권이면 돼요. 책가방 무거워요.데헷!“
선생님들 죄송했습니다. 뭐 어쨌든, 고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면 나에게 집중된 생각과 해석이 참 자세히도 적혀있다. 이때의 나는 나를 찾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시금 세상에 섞여 살았다. 대학생이 되고 술과 함께 하는 삶은 참 즐거웠다. 그렇게 흑역사를 차곡차곡 적립해 가며,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갔다.(안녕... 잘 지내지?) 이때는 매일 일기를 쓰진 않았다. 아마 인생의 절반은 취해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한 날, 특별한 일이 있는 날에만 일기를 썼다. 이때의 나는 새롭게 만난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나의 가치관을 정리해 가고, 사회에 통용되는 태도를 갖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서른 살이 넘어간 지금도 책상에 앉아 멍하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기장에 글로 정리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덧 하고 싶은 표현은 명료히 하고, 나름대로의 취향과 가치관이 뚜렷하고, 사회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정도는 됐다. 사람 됐다. 사회생활에서 나를 만난 분? 다행이다. 하하.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유튜브 영상에 빠져 지내다, 문득 '기록'의 행위를 영상이라는 방식으로 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좋은 구실로 아이패드를 샀고, 특별한 날을 영상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을 했다. 출퇴근 시간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조금씩 하다 보니 재밌었다. 결과물이 눈으로 보인다는 것에 성취감도 있었다. 비록 세세한 감정과 생각까지 담을 수 없지만, 가공되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까지 느껴질 것 같은 생생함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다양한 기록으로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자칭 '일기 예찬론자'로서, 무슨 방식이든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시각적으로나마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잘 살아가기 위해, 잘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행복한 순간을 잘 간직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복잡하고 힘든 세상도 나를 중심으로 단순하고 건강하게 해석하게 된다. 이 공간에서 만큼은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길 바라며,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내 기록의 끝맺음을 담당하는 단어들이다.
잘 될 거다. 할 수 있다. 괜찮다. 행복이다.
현생에 지쳤다면 힘에 부딪친다면, 자신의 공간에 자신만의 단어로 머물러 보시길 권한다.
몸도, 생각도, 머물다보면 다시 채워질 것이다.
그러니, 잘 될 거다.
(야)나두? 너두!
https://youtube.com/@Pyeona?si=S_7eMAQoSyRZo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