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모난 마음까지 나눠본다면
“너는 밝아서 예뻐. 잘 웃어서 좋아. 너는 너무 착해. 너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람도 드물어. 너는 항상 상대를 먼저 위하는 것 같아. 너는 항상 친절하고 낙천적이잖아.”
그렇다. 나는 어딜 가나 밝은 미소와 들뜬 말투, 선한 행동으로 꽤나 쉽게 사람들의 마음에 나를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동네 골목을 다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기운찬 골목대장이었고, 학창 시절에는 늘 회장을 도맡아 하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발 벗고 나서서 돕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언제나 주위를 환하게 밝히곤 하는 발랄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때때로 가라앉은 공기까지 밝게 물들일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과연 그리 비치는 내 모습들이 나의 전부였을까. 나는 스무 살의 중턱을 지나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나라는 존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못난 마음들이 하나둘씩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동료들이 나를 항상 그리 좋게 봐줬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 마냥 좋은 사람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 숨어있던 모난 마음들은 가끔씩 예고도 없이 틈을 비집고 세상으로 나와 나 스스로를, 혹은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종종 들이닥칠 때마다 나는 자괴감의 늪에 빠져 끝도 없이 허우적거렸다.
유복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꽤나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내게도 남모를 결핍이 있었고, 사랑이 넘쳐 모자람 없이 퍼주는 연애 방식을 고집하는 내게도 때때로 애인을 괴롭게 하는 성향이 있었다. 집 밖에서는 언제나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종종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독불 장녀였다. 가끔씩 호르몬이 요동치면 평소에 지켜왔던 내 선한 모습을 모두 잃고, 주변 사람들과 심하게 투덕거리기도 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살아왔었는데, 퇴사를 하기 직전 처음으로 잘 지내는 사람들에게 나쁜 질시의 시선을 날리기도 했다. 겉으로는 늘 행복한 척했지만, 안으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채찍질하다 못해 자학하는 순간도 분명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친구들을 오랜 시간 냉랭히 등지기도 했고, 이따금씩 어떤 하나의 모습을 정해놓은 채 사람들 앞에서 괜히 더 그런 척 가식을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내 내밀하고도 비뚤어진 모습들을 한 번도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왜일까. 아마도 자라오면서 나는 늘 아름다운 사람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에 휩싸여있었던 것 같다. 망가진 모습,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왔던 것 같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정해놓은 이미지 안에서 나는 무한히 괴로운 사투를 벌여왔다.
누구든지 완벽히 반듯할 수는 없다. 하물며 AI라는 이름의 위대한 산물인 GPT와 대화를 나눌 때조차, 견고한 프레임으로 짜인 로봇의 틈새에서 결함을 발견하곤 하는데, 우리라고 그런 비뚤어진 모습이 없을까. 가끔씩 모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더 발전하려 하기에 우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모습들을 저마다 숨기기에만 급급하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불완전한 인간적 면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고 꺼리는 경향이 많다. 그렇다면, 누군가 발 벗고 나서서 본인이 얼마나 못나고 모난 사람인지 앞다투어 고백을 해보면 어떨까. 그럼 더 이상 감추기에 급급해 불안에 떨며 살아가기보다는 속 시원히 터놓은 채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텐데.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반성하고, 공감하고, 성장하며 활기를 가득 띤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먼저 그런 용감한 글을 써내고, 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 용기를 내 이 책을 적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과감할 정도로 내 안의 모든 걸 파헤치는 자기 고백적, 아니, 자기 파괴적인 에세이다.
“나는 때때로 연애할 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어. 너도 그런 적 있니?”
“나는 집에만 가면 틱틱대. 정말 안 그러고 싶은데 말이야.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자책이 심한 편이야. 너는 어떤 류의 자책을 주로 하는 편이니?”
제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밝았던 순간을 떠올리니, 역시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제주에서 2주 살이를 했던 시절이 떠올라, 신남이 가득 묻어있는 그 시절의 제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2년 같은 2주였어요.:) 밝은 모습은 제 디폴트 값이지만, 이제는 이따금씩 그렇지 않은 제 모습마저도 모두 아끼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