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딸아이는 요즘 십 대들의 놀이 문화를 알려주겠다며 우리 가족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나는 기대에 부풀어 딸아이를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15분여를 달려 우리의 작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코스는 돈가스 가게였다. 아침 겸 점심으로 먹기엔 약간의 부담이 있었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에 맛있는 메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딸아이는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자, 그럼 이제 다이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응? 다이소? 나 살 거 없는데. 남편과 눈치를 보며 딸아이를 따라갔다. 동네 다이소보다 3배 정도는 큰 다이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딸아이를 따라 홀린 듯 다이소로 들어갔다. 딱히 살 것도 없는데 다이소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다이소를 나오자마자
"자, 그럼 올리브영으로 갈까요?"
응? 올리브영? 다이소 바로 옆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올리브영으로 우리는 저항 없이 들어갔다. 정말 살 게 없는데도 나는 딸아이를 따라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동안 아들과 남편은 뻘쭘하게 매장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자주 오니?"
"놀러 나오면 꼭 들리죠?"
"아, 그렇구나."
올리브영을 나온 우리를 돌아보며 딸아이는
"보드게임하러 가거나 방탈출카페에 가려면 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지금 시간에는 예약이 힘드니까... 중고 서점으로 가겠습니다."
우리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들 대신 우리 가족을 데리고 나와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여보, 나 다리 아파."
"저한테 그러시지 마시고 가이드한테 말하세요."
"아..."
알라딘서점으로 들어간 우리는 책구경을 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책을 두권이나 사서 나왔다. 책이 짐이 될 줄도 모른 채...
"저기, 아빠 다리가 좀 아픈데..."
"아! 그럼 설빙 가겠습니다."
딸아이는 설계자였다. 우리는 서점 근처 설빙에 가서 빙수를 먹었다. 나와 남편, 아들은 최대한 설빙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날은 너무 더웠고 체력은 벌써 고갈됐다. 설빙을 나오며 우리는 더 갈 곳이 있냐 물었고
"근처에 번화가 거리가 있는데 같이 구경 가볼까요?"
번화가 거리는 마치 야시장처럼 중앙 도로를 기준으로 펼쳐져 있었다. 구경할만했지만 날은 덥고 힘들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우리를 이끌고 다니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번화가 구경이 끝나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아직 남은 일정이 더 있니?"
"길 건너서 사진 찍으러 가겠습니다!."
우리는 가이드 지시에 따라 사진 스튜디오로 갔다. 사진 포즈에 대한 사전 지시를 받으며 네 컷의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는 망설임 없이 잘 나온 사진을 선택해 사진을 하나씩 비닐에 담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자, 오늘 제가 계획한 건 여기까지이고요. 지난주에 아빠가 애슐리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못 갔으니까 오늘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녁 먹기까지 시간이 좀 남으니까 쇼핑몰 가서 구경하시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쇼핑몰로 가서 너무 힘들고 지쳤다고 가이드에게 솔직히 말했다.
"아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지쳤다고요?"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늙은 우리가 십 대들의 문화를 따라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런 우리를 데리고 친구들과 같이 가던 곳을 구경시켜 준 딸아이도 재미없고 힘들었으리라.
무사히 저녁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 집에 걸어오면서 우리는 서로 티를 내며 거짓말을 했다.
"오늘 너~~ 무 재미있었어, 구경시켜 줘서 고마워."
"네, 저도 정~~ 말 재밌었어요."
그렇게 우리의 짧은 십 대 문화 체험 여행이 끝났다. 사춘기 아이와 잘 지내기 위해 부모뿐 아니라 아이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하루였다. 우리의 여행이 이제 시작이기에 다음 여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