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1단보다 중요한 것 : 포기보단 이해
딸이 태권도를 다닌 지 1년여가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권도 관장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한 만큼 승급심사를 준비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었습니다.
태권도를 1년여간 다녔으니, 1단 정도는 따야 하지 않나 하는 부모로서의 욕심이 생겼습니다. 승급심사는 앞으로 관련 분야(경찰 등)로의 취업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은 물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승급심사 수련은 강도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관장님께서 평소보다 더 엄격해지고, 수련 시간도 늘어난다고 하더군요. 지난 1년간 무탈하게 수련한 자녀라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수련 생활이 시작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 태권도 승급심사 나중에 보면 안 될까?”
저의 대답은 즉각 “NO”였습니다. 주변 엄마들이 미리 알려준 조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승급심사 도중 아이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초장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조언을 새겨듣고, 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설득했습니다.
“유나야, 너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야. 1년 동안 준비한 승급심사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되겠니? 힘들어도 참는 법, 스스로 해내는 성취감도 배워야 해. 엄마도 회사 생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니잖아.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습니다. 제가 조금 과하게 말했음을 느꼈습니다. 사실 꼰대처럼 굴고 있었던 셈이죠.
매일 자녀와의 대치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남편 : “애가 싫다는데 냅 둬. 태권도 1단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나: “아니, 당신 말 때문에 제가 더 그러는 거잖아! 뭘 하나 했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야지. 아휴, 진짜 속 터져.”
부부싸움 직전까지 갔습니다. 관장님께 전화해 자녀를 더 단단히 붙잡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이는 더욱 강하게 나왔습니다. 학원을 아예 가지 않고 방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벌써 사춘기가 온 듯했습니다.
저는 아이 마음보다 ‘본전 생각’만 했습니다.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 나중에 다시 시작하면 늦는다는 생각 등 손해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힘들다고 포기하는 딸이 한심스럽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데, 벌써 포기를 배우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었죠.
그런 냉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딸이 편지 한 통을 건넸습니다. “혼자 읽을 때 읽어봐”라며 내밀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읽고 나서,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섰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언제 이렇게 생각이 깊어졌는지 놀라웠습니다.
<딸의 편지>
엄마, 엄마가 유나를 키우면서 돈도 많이 들고 힘들었잖아.
나도 엄마가 너무 이해돼.
근데 세상에서는 참 이룰 게 많아.
나는 태권도를 포기한 게 아니고, 내가 다시 이루고 싶은 것을 직접 찾아가려고 그런거야.
엄마도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엄마도 힘든 거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지? 나는 그런 엄마 정말 좋아.
근데 나는 아직 조금 서툴고 이겨내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우리 서로 힘든 것을 배려해 주고 서로 칭찬해 주자.
네가 늘 미안한데, 엄마도 나를 조금만 배려해줘.
나도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것 많아.
우리 서로를 아끼자.
-유나가-
아이에게 ‘포기’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게 다가갔던 모양입니다. “나는 태권도를 포기한 게 아니라, 내가 다시 이루고 싶은 것을 찾아가려고 한다”는 말은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모의 입장을 강요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결국, 태권도 승급심사는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딸과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어른인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승급을 꼭 하지 않아도 되고, 시작 시점은 늦어도 된다는 것을, 세상의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 했던 제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태권도 처음부터 다시 배울까? 그때가 참 재미있었는데…”
둘 다 터놓고 웃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