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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르바 Mar 30. 2024

그 순간, 오묘한 마음들에 대한 기억<패스트 라이브즈>

참 오랜만에 마음에 여운을 주는 영화를 봤다. OTT와 유튜브 콘텐츠가 주는 자극적인 맛에 휘둘리며 살아온 수년의 세월. 드라마 장르는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 지 오래였다. 이번 영화도 그저 <피식쇼>라는 유튜브 콘텐츠에 등장한 유태오의 페로몬(남자가 봐도 너무 섹시하다)에 이끌려 별 생각없이 보게 됐을 뿐, 그냥 적당히 유명해진 독립영화겠거니 싶었다. 심지어 제목도 <Fast Lives>라고 생각했으니 뭐...(원제 'Past Lives')


영화를 보고나온 나는 함께 관람한 여자친구에게 여러번 감탄을 내뱉으며 정말 좋은 고전소설을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시절 아주 잠시 민음사 고전명작 시리즈에 빠져 있을 때 고전을 읽던 이유는 하나였다. 시절이 다름에도 그 책들의 문장은 내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감정 혹은 잊혀졌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딱 그랬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들에 대한 공감. 그 공감들 속에 스쳐지나가는 기억 속 잔상들이 영화 보는 내내 잠시 현실을 잊고 떠다니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인연'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흘러간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맺어지는 운명과 같은 한국의 사회적 의미와 불교에서 말하는 원인과 결과라는 이념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여 주인공인 '그래타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으로 넘어간 이민자 2세대 자녀인데 아무래도 이민자 2세대로서 비주류의 삶을 사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유태오 역시 해외생활을 오래했다고 알고있는데 교포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모습이 이런 모습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이민자 2세대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화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삽입한 한국적인 모습들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마 누군가가 옆에서 코칭을 해줬을텐데 구성 상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었다.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그런 구성적인 디테일은 한국사람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니, 이 영화를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생각했는 지에 따라 평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사례로 서구권에서 이 영화가 다양한 영화제에서 많은 찬사를 받는 걸보니 우리는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서구권의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반영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 영화는 배경보다 감정 표현에 대한 디테일에 있다. 앞서 고전소설이라고 언급했듯이 감정을 불러오는 장면들의 디테일이, 뻔한 표현이지만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계속 물결이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순간과 같은 공감되는 감정들이 영화를 보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근래 본 멜로 장면 중 가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국내에 개봉한 영화관 수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영화 특성 상 많은 관심을 받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만추>와 같이 시간이 가도 꾸준히 회자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넷플릭스에 뜬다면 꼭 한 번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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