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이었던 나는 결혼 후 자식을 갖는다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10년이 되도록 자식 낳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로부터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기쁨보다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두려움이었다.
나 또한 자식에게 상처만 주는 아버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첫 아이를 갖은 기쁨에 앞서 나 자신을 한없이 두렵게 만들었고, 그 두려움은 끝내 새벽 예배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집 앞 조그만, 인적 드문 고요한 예배당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달 넘게 빠지지 않고 기도했던 것 같다. 건강한 아버지의 롤모델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고 그렇게 태어난 자식으로부터 원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없이 슬펐다.
그렇게 한 달 넘는 동안 매일매일 기도로 버티던 나는 더 이상 크게 나아지지 않는 나 자신에 좌절하며 이젠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는 순간, 난 분명하고 뚜렷하게 들었다!
왜 자식을 네가 키운다고 생각하느냐.
그 순간, 너무나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너무나 편안한 마음이 되어 비로소 진심으로 아빠가 된 것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날 내가 들었던 음성은 너무나 간절한 마음에 스스로 위안을 찾으려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또 다른 내 목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처럼 뚜렷하게 들려오던 신의 음성과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렇게 힘들게 아버지가 된 것을 받아들인 나는 어느덧 열 살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육아에 대한 어떠한 책이나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저 일을 줄이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커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뿐이다. 내가 한 일이란 그렇게 곁에 있어준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50대 초반, 중년이라고 하는 기성세대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세대는 이전 어느 세대보다도 풍족한 혜택을 받으며 자란 축복받은 세대다. 하지만 그런 세대가 자녀교육과 결혼생활에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왜일까?
우리 세대는 과외라 불리는 사교육 태동의 단계에서 투자 대비 좋은 대학을 진학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진학한 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세대다. 그래서 다들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며 아이들의 교육에 너나없이 많은 투자를 해 엄청난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결과는 어떤가? 돌아온 건 자녀와의 단절과 결혼생활의 실패다.
우리와 부모님 세대는 부모님의 한없는 희생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그런 희생으로 키운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자식이 다 큰 독립된 성인이 된 뒤에도 놓지 못해 애증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와 자녀의 관계는 독립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즉 예전처럼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녀는 자녀대로 행복한 삶을 찾아가고 부모도 자녀에게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기대와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한 노년의 삶을 찾아가야 하는 관계다.
자녀교육의 기본은 자녀와 부모는 동등한 인격적 존재라는 것.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그래서 자녀의 삶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선택은 순전히 자녀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부모는 무한 신뢰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아이의 옆에 바싹 붙어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나처럼 좋은 아버지의 롤모델이 없었던 분이나, 비싼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가난한 아빠를 위해 적어보려 한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옳다고 해서 그것이 자녀에게도 옳을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자녀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