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속도 아파트보다는 안전했을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
우리는 누구나 나와 비슷한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의 사는 모습이 그리 큰 차이가 없을 때에는 다들 잘 어울려 살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시간 노예제와 계급제가 가능했던 이유도 자신의 삶을 비참하다고 느낄 비교의 대상이 극소수의 권력자와 지배자 외에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그만그만한 삶을 살아가며, 당장 먹고사는 일 외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70년 대 초, 생의 첫 기억을 아파트에서 시작한 나는 당시의 아파트 문화를 돌이켜보면 정겨웠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어느 집을 가도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누구네 집을 가도 식구들이 많았고, 풍족하지 못했던 당시의 살림살이는 어디나 다 비슷했다. 모두가 똑같은 냉장고와 세탁기를 쓰고 똑같은 TV를 보며 즐거워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친밀함과 유대감을 느낀다. 그런 유대감과 동질감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의 아파트라고 하는 공동주택의 갈등이 심한 이유 중에 하나는 모두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같은 단지 내, 같은 평수의 집이라고 해도 누구는 자가, 누구는 전세, 누구는 월세라는 보이지 않게 구분되는 소득 차이와 겉으로 똑같아 보이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구분되는 다양한 살림살이와 인테리어는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는 위화감을 주게 된다. 결국 나와 다르다고 느끼는 이웃과는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팔 집 말고 살 집이 필요해.
우리 가족은 나와 아내, 그리고 올해 12살인 딸아이 이렇게 세 식구이다. 우리 세 식구가 사는데 24평 크기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33평 아파트로 이사를 온 이유는 딱하나, 아내가 내 서재를 없애고 딸아이 방을 만들겠다고 해서였다. 직장생활 10년간 마련한 2000만 원 상당의 오디오와 15년 가까이 모아 온 벽면 가득한 CD와 책이 없이는 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기 융자를 감당하면서까지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사 갈 집을 알아볼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향 후 집값이 오를 것 같은 아파트보다는 거주 환경이 좋은 아파트였다. 창문을 열고도 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아파트와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아파트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1층이 없는 2층에 집 앞 놀이터가 훤히 내다보이는 집을 선택했다. 거기에 결정적인 이유는 600세대가 넘는 한 단지가 동일 평형의 아파트였다는 것이다. 한참 자랄 아이에게 '너희 집은 몇 평이야?' 같은 구분을 지으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넌 몇 동에 살아? 너네 아빠 차는 뭐야?
요즘 유치원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젤 먼저 묻는다고 한다. "넌 몇 동에 살아?" 남자아이들의 경우 그다음으로 묻는 것이 "너네 아빠 차는 뭐야?" 이 말은 어른들의 '고향이 어디십니까?', '어느 학교를 나왔습니까?'처럼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아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이다. 같은 단지 내 아파트의 유치원에서 이와 같은 아이들의 물음은 친구와의 공통점을 찾아 친해지려는 노력인 동시에 나와 친구의 차이점도 인식을 하고 있다는 질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과 친구에게만 있는 장난감을 확인을 하는 날에는 한동안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곤 한다.
공통점이 많을수록 친해지고, 차이점이 많을수록 멀어진다.
이처럼 사람은 너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 지으며 관계를 형성해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금처럼 겉으론 똑같아 보이는 아파트지만 평수와 살림살이와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알게 모르게 구분되는 공동주택에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우리나라 정서상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므로 공동주택에서의 분쟁과 갈등을 가장 확실하게 해결하려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살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법으로,
101동 -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가족이 입주하는 아파트
102동 - 60대 이후 자녀가 없는 은퇴 노부부가 입주하는 아파트
103동 -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입주하는 아파트
104동 -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입주하는 아파트
105호 - 집에서 담배를 피우길 원하는 사람이 입주하는 아파트
이렇게 생활패턴이나 가족 구성원을 구분하여 입주를 시키면 상당 부분 공동주택에서의 분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파트에서는 어떠한 대책이 필요할까?
소통은 각자의 생각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같은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보편적 공감대를 찾아 이웃 간에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활용을 해야 하다. 가령, 큰 맘먹고 새 옷을 장만했는데 다음날 길을 가다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누군가 맛있게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저도 저거 주세요.'하기가 싶다. 왜 그럴까? 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쁜데 같은 것을 먹는 건 괜찮다고 여기는 걸까? 그건 옷이라고 하는 의복은 예로부터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차이와 구분으로 활용이 많이 된 반면, 음식은 화합이나 단합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통혼례의 의복이 궁중의복처럼 화려한 것도 특별한 날 단 하루만이라도 복장을 통해 신분상승 욕구를 해소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진짜 신분상승은 불가능하지만 결혼은 확실히 성인으로 인정받는 또 다른 신분상승의 계기이기도 하다.
예전엔 아파트에서 반상회가 이웃 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누구네 집에 모여도 살림살이가 다 비슷비슷했기에 누가와도 그리 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반상회와 같은 이웃 간 소통이 가능한 모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첫째, 똑같은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너무나 다른 살림살이가 우리는 다르다는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남편과 자식 얘기까지 나누게 되면 누군가는 속으로 '재수 없다.'라고 느낄 정도로 비호감을 갖는다.
둘째,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누구는 자가, 누구는 전세라는 차이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1~2년 후에 이사 갈 곳에 애착을 갖지 않게 한다. 그런 유랑 민적 삶은 이웃과의 관계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방관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서로를 죽음으로 모는 사회
그럼 이웃 간에 소통이 되지 않아 생기는 많은 공동주택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은 법이나 공권력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오직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 사람을 누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많은 종교인들이 일요일이면, 특별한 날이면 다 같이 모여 형제자매, 또는 한가족이라 외치면서도 막상 집에 오면 그 많은 형제자매, 가족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러기에 지금 우리의 공동주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공권력 외에 다양한 문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공동주택 갈등이나 분쟁에 대한 속 시원한 전문가가 없는 이유도 어느 한 분야의 전문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엔 구제척인 해결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