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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중 Aug 29. 2024

이해가 아닌 존중이 필요하다.

갈라지는 사회 안에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같은 양극화고 나타나지만,

견해에 대한 극단화가 심해지고 있다.


정치적 성향에 대한 철저한 대립,

성소수자와 같은 부분에서도 촉각이 세워지고 있다.

서로에 대한 반감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문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해와 협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이해의 진짜 뜻조차 모른다.


깨달아 앎. 잘 알아서 받아들임.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게 이해의 진짜 의미다.


어떤가? 나와 반대되는 입장을 잘, 너그러이 받아들이는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남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

생판 모르는 남이 죽을병에 걸려도 내 감기를 걱정하는 게 인간이다.

가까운 곳에서 목숨이 오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가.

보통처럼 내 먹고살 궁리를 한다.


가까운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런 인간이 생판 모르는 남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도 나를 반대하는 누군가를.


이해라는 단어로 분쟁을 해결해 나가는 건 쉽지 않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존중을 가져야 한다.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과일을 싫어하는 상대에게 과일을 강요할 필요가 없듯,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냥 싫어하는구나. 그럴 수 있지의 태도가 바람직하다.


섞이며 융합하는 게 아닌 고유의 색으로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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