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지질학 그리고 괴사이트

예술 속 지구과학 이야기

by 전영식

2026년 3월 22일은 괴테가 사망한 지 194년이 되는 날이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거의 띠 동갑 형이지만 동시대를 살았다. 지금이야 한두 살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그때는 거의 친구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연암 박지원(1737~1805) 역시 동시대 사람이다. 어쨌든 괴테는 연암과 다산 사이에서 살던 독일인이다.


박지원과 정약용이 그랬듯이 괴테도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거장이기도 하며 <연애의 신>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작품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이 유명하다. 또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했고 자연연구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재상시절 일메나우 은광산의 재건 책임자로 익힌 지질학과 광물학 지식은 일평생 그의 삶을 지배했다. 그의 문학 곳곳에 지질학의 영향이 물씬 느껴진다. 거의 지질학자인 괴테 이야기다.


일메나우 광산과 괴테


바이마르 일메나우 시장 광장에 위치한 괴테 기념비, 위키미디어: Christian Spannagel


바이마르(Weimar, 당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또는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 일메나우(Ilmenau) 광산은 튀링겐 숲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유서 깊은 광산이다. 튀링겐 숲(Thuringian Forest) 북쪽 경계, 일름(Ilm) 강변의 500m 고지대에 위치한다.


전성기였던 1471년부터 1626년까지는 구리와 은 채굴이 일메나우 경제의 중추였다. 1611년경 약 38톤의 구리와 188kg의 은이 생산된 기록이 있다. 하지만 1739년 광산에 물이 차오르는 수해(Ingress of water)로 인해 채굴이 중단됐다.


젊은 나이(27세)에 추밀고문관(Geheimer Rat)이 된 괴테는 다음 해인 1777년 재정난이 심했던 바이마르 공작 칼 아우구스트의 위임을 받아 폐광된 일메나우 광산을 부활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괴테는 단순히 보고만 받는 자리가 아니라 실제 광산 관리, 특히 은(銀) 광산 개발과 관련된 실무를 챙겼다. 현장을 찾아 지하 막장까지 들어가 보고, 인근 광산에도 방문해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광산학(Oryktognosy)과 지질학적 지식을 깊이 쌓았다. 이런 지식이 이후 <파우스트> 등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는 지질학적 연구와 함께 '카머베르거(Kammerberger)' 갱도를 포함한 여러 갱도를 재개하려 했으나, 기술적/경제적 한계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광산 업무에서 시작된 광물학에 대한 관심은 평생 1만 8천 점이 넘는 광물을 수집으로 이어졌다.


광산 지역은 바리스칸 조산운동(Variscan orogeny) 동안 변형된 페름기(Permian) 포르피리(porphyry)와 석영 맥(quartz veins)이 주를 이룬다. 주요 광상은 망간 산화물(Braunite, Pyrolusite), 형석(Fluorite), 그리고 구리 슬레이트(Kupferschiefer) 기반의 구리 및 은 광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석은 맥상(veins)이나 '네스트(nests, 파드)'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망간 광상은 12m 두께에 이르는 광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지질학에 대한 불타는 관심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특히 광물학(Mineralogy)과 지질학(Geology)에 깊은 열정을 가졌던 전문가 수준의 학자였다.


프라우엔플란에 있는 괴테 국립 박물관, KlassikStiftung


괴테는 유럽에서 가장 큰 개인 광물 수집가 중 한 명이었다. 바이마르(Weimar) 괴테 국립박물관(Klassik Stiftung Weimar)에서는 그의 23,000여 점의 자연과학 표본과 광물 수집 계획을 관리하고 있는데, 괴테 하우스(Frauenplan) 뒤뜰에 있는 정원 파빌리온에 광물을 보관하고 있다. 수많은 광물 샘플은 그가 단순히 취미가 아닌 체계적인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광물을 수집했음을 의미한다. 암석 샘플을 수집하고 옮겨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고 자칫 욕심을 내면 여행이 엉망이 된다. 교통편이 불편한 당시로서는 대단한 열정이다.


예나에서 실러와 함께 훔볼트 형제(알렉산더, 빌헬름)와 만나는 괴테(좌로부터), 1797년, 위키미디어: Andreas Müller, public domain

예술과 과학의 결합 (형태학적 관점): 괴테는 광물의 결정 형태(Configuration)를 통해 자연의 창조적 힘을 이해하려 했다. 1795년 박물학자인 알렉산더 훔볼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원소를 통해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지만, 나는 형태를 관찰함으로써 그렇게 한다"라고 기술하며 결정학적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괴테는 광물학이 화학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화성론(Volcanism)과 수성론(Neptunism) 사이에서 지질학적 구조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에게 광물학은 자연의 내적 질서를 규명하는 또 다른 형태의 문학이었다.


저서에 스며든 지질학


바이마르 공국의 일에 지친 괴테는 1786~1788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과정을 남긴 책인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을 보면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목에 나타나는 암석과 토양마다 전문적인 식견을 숨기지 않았다. 요즘 어떤 지질학자와 비교해도 서툴지 않다고 느껴진다. 또한 베수비오 화산 등 지역의 화산암과 지질 구조를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서재의 파우스트, 외젠 들라크루아, 1828년,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파우스트>는 괴테의 일생을 통해 쓴 역작으로 특히 2부에는 당시 지질학계의 큰 논쟁이었던 수성론(Neptunism)과 화성론(Plutonism/Volcanism) 논쟁을 담았다. 독일의 광물학자 아브라함 G.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 1749~1817)는 암석의 기원을 물이라고 수성론을 주장했고,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1726~1797)은 화산활동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고 화성론을 주장했다. 작품에서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탈레스를 수성론의 대변자로, 아낙사고라스를 화성론의 대변자로 등장시켰다. 이런 설정은 뜬금없는 상황이 아니라 괴테가 천착해 왔던 지질학에 대한 고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포일러를 이야기하자면 논쟁은 화성론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밖에도 괴테는 자신의 지질학적 연구를 정리한 대표적인 에세이 '보헤미아의 지질학' (Geology, in particular that of Bohemia, 1817)를 발표했고, 1830년 7월 16일, 게오르크 루드비히 칸크린 백작(Count G. v. Cancrin)에게 보낸 편지에서 "60년 동안 자연 과학, 특히 지질학과 광물학에 헌신하며 의미 있는 모든 것을 수집해 왔다"라고 고백했다.


괴사이트


미국 콜로라도에서 수집된 괴사이트, 위키미디어: Robert M. Lavinsky


괴테는 대문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상당한 수준의 식견을 갖춘 광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수집한 광물 표본만 23,000점이 넘었을 정도였다. 그의 이런 학문적 열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광물 '괴사이트(Goethite, 침철석 針鐵石 )'이 명명됐다.


괴사이트라는 명칭1806년 독일의 광물학자인 요한 게오르크 렌츠(Johann Georg Lenz, 1748~1832)에 의해 붙여졌다. 렌츠는 괴테가 설립에 기여한 '예나 광물학회(Jenaische Gesellschaft für die gesammte Mineralogie)'의 창립 멤버였다. 그는 평소 괴테가 광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지대한 관심을 높이 평가해 왔다. 사실 '괴사이트'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이 광물은 존재했지만, 당시에는 다른 광물(침상철광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렌츠는 독일 지겐(Siegen) 지역에서 발견된 특정 철광석 표본에 괴테의 이름을 헌정하며 학계에 소개했다.


괴테는 자신의 이름이 광물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가장 기분 좋은 불멸성"이라고 표현하며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이 광물의 특성을 연구하고 분류하는 데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괴사이트( FeO(OH) )는 철의 수산화 광물로, 대개 암갈색이나 검은색을 띠며 바늘 모양(침상)으로 결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한국어로는 침철석이라 부른다. 철이 풍부한 암석의 풍화작용으로 생성되거나 철분이 많은 지하수, 저온열수의 작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며 황철석의 산화과정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철강 산업의 주요 원료이자, 과거부터 천연 안료(황토색)로 사용되었다.


식물학자에게 식물, 천문학자에게 항성이 그렇듯 광물학자도 광물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괴테의 작품은 호모 사피언스의 기억에서 사라져도 괴사이트의 이름은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감히 이야기하면 불멸성을 갖는 데는 광물 이름이 더 쉽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괴테가 지질학자로 인식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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