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지구과학 이야기
조선시대 오형(사형/유형/도형/장형/태형) 중 하나인 유배(유형)는 죄인을 먼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거기서 살도록 하는 고독형의 하나이다. 거리를 기준으로 2,000리(800km), 2,500리, 3000리(1200km)의 등급이 있었다. 그리고 거주제한의 강도에 따라 부처, 정배, 위리안치(圍籬安置), 본향안치(本鄕安治) 그리고 가장 센 형벌인 절도안치(絶島安置)가 있다. 가까운 지역에 가족 동반이 가능한 부처에 비해 정배는 특정 주거지역에만 살도록 했고, 위리안치는 집 주위를 가시 울타리로 둘러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고, 본향안치는 고향에, 절도안치는 외딴섬이나 지역에 격리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5,000번이 넘는 유배 관련 기사가 뜨다고 하는데, 가장 많이(80번 이상) 언급된 유배지는 제주도다. 모반대역죄인이나 왕족 등 중죄인을 보낼 때 많이 이용한 '유배의 성지'였다. 조선 왕중 유배지에서 죽은 왕은 두 명인데, 그중 한 명인 광해군이 제주에서 위리안체된 상태에서 죽었다. 향년 67세였다.
그 외의 인기 지역으로는 거제도, 남해, 진도, 흑산도 등이 자주 등장했다. 강원도는 조선초에 많이 이용됐는데 이성계가 공양왕을 원주->간성->삼척으로 보낸 사례가 유명하다. 이 시절판의 왕과 산 남자는 함부열(咸傅說, 1363~1442)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알아보자.
계유정난(1453)으로 왕위를 이은지 1년 된 조카(단종, 1441~1457)에게서 왕위를 뺏은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 1417~1468, 재위 1455~1468)은 생육신, 사육신, 금성대군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자,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淸泠浦)로 유배 보내 버린다.
장항준 감독의 최신작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에 성공하였다. 얼핏 느낌으로는 부인의 지명도에 가려 지낸 음지의 세월에서 이젠 화려한 나비로 태어난 것 같다. 쨍하고 볕 들 날이 돌아왔다. 관객 수 1000만이 넘는 영화는 그 줄거리와 내용을 생략해도 편리하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없다. 그 어린 왕의 운명은 모두가 다 안다. 이젠 영화를 넘어 촬영지 영월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천애고아 단종을 그리고 도대체 영월이라는 유배지는 어떤 곳인지가 궁금해서 일 것이다.
사극의 나라에 사는 우리는 줄거리와 결말을 다 아는 내용으로 만든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혹자들은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헤어스타일이 점잖고 온전해서 그렇다고 평한다. 일본 같이 촌마게(丁髷, ちょんまげ), 중국 같이 변발을 안 해도 되니 NZ 세대에도 부담이 없고 귀족적인 느낌이 든다(박보검이 변발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 쪽머리, 상투, 망건 그리고 갓은 눈에 띄는 고급 소품 역할도 한다.
영월 청령포는 서강(평창강)과 동강이 만나는 합수부에서 서쪽으로 2.2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합수부부터 남한강이 시작된다. 남서쪽은 산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는 서강에 둘러싸여 있는 돌출부이다. 산 쪽에서 한두 명이 지키면 빠져나갈 길이 없고, 그래서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야 영월시내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물때를 잘 만나서 배를 잘 몰고 내려가면 한양까지 3~7일이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단종은 유배길 1000리를 7일 걸려 걸어왔다.
청령포를 휘돌아 흐르는 서강은 대표적인 감입곡류천(Incised Meander)이다. 산지나 고원지대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하방침식이 심한 하천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신생대 3기에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나 동쪽이 높아졌기 때문에 생겼다. 청령포 북쪽으로는 구하도(Old Channel)의 흔적(Ω 모양)이 뚜렷하다. 현재 구하로는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안쪽으로 돌아 흐르던 서강은 어느 순간 큰 물에 의해 수로가 직선화되었을 것이다. 서강은 청령포 건너 쪽이 공격사면(Cut bank)이라서 청령포쪽은 퇴적사면(slip-off slope)이 돼서 모래가 퇴적된 것이 관찰된다.
영월은 시멘트 산업의 고장이다. 영월 제조업의 85%가 시멘트 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지질학적으로 영월이 고생대에 형성된 석회암층이 잘 발달된 곳이기 때문이다. 영월 지역은 약 5억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에 따뜻한 얕은 바다 환경(대륙붕)이었다. 이런 환경은 삼엽충 서식에 우호적인 환경이고 삼엽충과 완족류 등이 풍부하게 서식했다. 이들의 사체가 겹겹이 쌓여 마차리층 같은 석회암층을 형성한 것이다.
영월은 지체구조적으로 경기지괴와 영남지괴 사이에 끼인 퇴적대인 옥천계에 속한다. 두 지괴가 만나 한반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심한 횡압력을 받았고 그래서 그 사이에 놓인 석회암, 백운암 층들이 심한 습곡작용을 받았다. 그래서 영월은 지질도를 보면 그 층서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지층배치를 보이고 있다. 남북방향의 지층 배열은 후에 신생대에 우리나라 동쪽이 융기하면서 서쪽으로 경사진 하로가 발달하면서 복잡하게 돌아드는 하천을 형성하였다. 이런 하천이 곳에 따라 한반도 지형, 청령포 등 고립된 지형을 만든 것이다.
인간은 지질을 지배할 수 없다. 적응할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지형을 찾아 유배지로 추천했고, 어느 시대에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모습지형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다. 인간은 이런저런 목적으로 장소, 지형을 쓰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고 새로운 지층이 그 위를 덮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