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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Dec 13. 2024

북쪽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온다면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

넷플릭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1946년 전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의 남부와 북부는 마치 다른 나라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빈부 격차가 상당히 심합니다. 주인공 소년 아메리고는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데, 이곳의 아이들에겐 신발 없이 맨발로 다니는 게 일상이고 옷도 거의 입지 않아 앙상하게 마른 몸이 다 드러납니다. 가난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이곳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또다시 굶주림과 질병으로 잃을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이탈리아의 공산당은 남부의 가난한 아이들을 북부의 부유한 집으로 보내 아이들의 영양 및 위생 상태를 호전시키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하는 '칠드런스 트레인'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아메리고의 엄마도 하나 남은 아들을 기차에 태워 북부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죠. 나폴리의 작은 마을에선 이 기차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돕니다. 아이들을 북부 이탈리아에 보내는 게 아니라 러시아로 보낸다는 둥, 아이들의 손발을 잘라 버린다는 둥, 아이들을 오븐에 넣거나 비누로 만들어버린다는 둥 무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죠.


아이들도 엄마들도 겁에 질렸지만, 그래도 가난 속에서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던 엄마들은 아이들을 기차에 태웁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탈리아 북부의 부유하고 다정한 집으로 보내져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학교에 다니며, 가난에 허덕이지 않는 따뜻한 가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밀이 싹이 날 때 북부로 간 아메리고는 밀을 수확할 때쯤 남부로 돌아옵니다. 그 몇 개월간의 시간 동안 북부의 가족에게서 받은 사랑과 관심이 아메리고를 변화시키죠. 사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혹시나 북부로 간 아이들이 나쁜 가족을 만나지는 않을지 내내 가슴을 졸였어요. 왜 꼭 이런 이야기에선 학대하는 어른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가 상상되곤 하는 걸까요. 하지만 남부의 아이들을 받은 북부의 가족들은 모두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줍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북부의 새로운 가정에 그대로 남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죠.


아메리고를 맡게 된 미혼 여성 데르나도 아이를 대할 줄 몰라 어쩔 줄 모르더니, 어느 새 아메리고와 깊이 정이 들어버립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던 아메리고도 데르나와 북부의 가족들에게 한껏 마음을 열게 되고요. 이야기는 이렇게 남부와 북부의 가족 사이에서 마음과 현실의 갈등을 겪는 아이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아메리고의 앙상하게 마른 몸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위생과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받아주는 북부 가정의 모습도, 아이를 위해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는 남부 가정의 모습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천방지축에 말썽만 부리던 아메리고는 북부 가족의 아낌없는 지원에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많이 변하게 됩니다. 이 변화의 과정을 어린 배우가 정말 잘 소화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향한 양쪽 어머니의 사랑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냅니다. 영화는 놓아주는 것도, 받아주는 것도 모두 사랑이라고 말하죠.



마치 다른 나라처럼 보이는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를 보면서 제가 속한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까운 북쪽에는 아메리고처럼 앙상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을텐데 싶었어요. '이탈리아는 하나다' 라는 슬로건 아래 아이들에게 애정과 돌봄을 베푸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정을 보면서, 나는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아주 가까운 곳에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눈이 열렸달까요.


아메리고를 처음 만났을 때 인사부터 어색해 쭈뼛쭈뼛 삐걱거리기만 했던 데르나를 떠올립니다. 한번도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지만, 혼자 남은 아메리고를 딱하게 여겨 용기를 내죠. 그 한 번의 용기가 데르나를 진짜 어머니로 변화시킵니다.


추운 연말,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들리는 시기입니다. 어렵고 어색하지만 나도 한번쯤 따뜻한 용기를 내보면 어떨지 마음 먹게 되는 영화예요. 이번 주말엔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을 추천합니다.



https://youtu.be/76Aljh0U8Hk?si=hH048OJbQIpNHm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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