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병사 탈출, 그런데 다시 시한부 시작
| "나를 퇴소시켰을까? 입대시켰을까?"
소대장은 나를 입대시켰다. 입대를 허락한 조건은 단 하나
입소 전에 어머니와 통화하고 오라는 거였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지금이라도 퇴소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훈련병 중 제일 먼저 어머니와
통화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화기를 들고, 어머니 번호를 누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엄마, 나 돈독이에요…
신상명세서에 솔직하게 체크했더니 입대가 어려울 수도 있다네요.
그래서 어머니랑 통화하고 오라길래 전화했어요."
어머니는 말없이 울기 시작하셨다.
"너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다 우리 부모 탓이다.
늘 돈독이가 피해를 봐서 미안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억울하고, 흔들렸다.
진심으로 퇴소를 고민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밥값 하려면,
군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 다 하니까, 평균은 맞춰야 하니까.
입대하자. 다만 하나 다짐했다. 내가 겪은 것,
부대에서는 말하지 말자.
남들처럼 평범하게 군생활 하자. 다짐 또 다짐했다.
소대장에게 어머니와의 대화를 말하며 말했다.
"무사히 군생활 마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소대장은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남들보다 세 배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결국, 우수 훈련병으로 포상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훈련소 수료식 날, 어머니는 또 한참을 우셨다.
왜 그렇게까지 우셨을까?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걸 아셨던 걸까?
아니면 본인이 2년 뒤 세상을 떠날 줄 아셨던 걸까?
행복하지만 아리송한 마음을 안고 나는 부대 배치를 받기 위해 이동했다.
그렇게 희망을 안고 간 부대에서,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정환경에 이혼만 있어도 관심병사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웃기지도 않았다.
요즘 시대에 이혼, 재혼이 TV에도 나오고 흔한 일이지만
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국 '흠'으로 취급받는다.
나는 이혼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부모가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있는 병사가 되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혼뿐 아니라,
재혼, 계모, 편모, 편부까지 포함된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으니
아마 '관심병사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낙인을 벗고 싶어서,
남들보다 세 배는 더 노력하며 군생활을 했다.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제대를 하루 앞둔 날, 나는 생각했다.
'이제 돈 벌고 공부도 하면서 어머니 호강시켜 드릴 일만 남았구나.'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어쩌면 당연하니까.
효도는 당연하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2014년 5월 19일—제대 하루 전날.
"어머니, 이제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라고 말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나는 개 같은 군생활을 끝냈고,
이제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렇게 또 살아버렸다.
『불행팔이소년: 나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버렸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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